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성운 Oct 21. 2021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상처를 채우는 달콤함

설탕만큼의 무게로 다뤄진 소수자의 삶




 중학생 시절, 친구가 진짜 너무 재밌는 영화가 있다며 이 영화들 들고 왔다. 당시 절친이던 여중생 4명은 크리스마스 저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케이크를 퍼먹으며 이 영화를 봤고, 모두의 취향을 저격했다. 잘생긴 남자가 4명은 나오니 그중에 취향 하나는 있었던 것이다. 크리스마스와 잘생긴 남자, 그리고 케이크와 절친한 친구라니. 그토록 완벽한 크리스마스도 없었을 것 같다.




 <서양골양과자점 앤티크> 제목의 감성만큼이나 알록달록하고 달달하다. 뮤지컬과 만화적 연출을 뒤섞은데다 소품은 하나하나 아기자기하고 귀엽고,  많은 부잣집 도련님이 타는 차는 마치 장난감 같아서 성인 남자 둘이 타면  터질  같은 앙증맞음을 자랑한다. 어쩌면 상당히 무거운 소재와 대치되는데, 오히려 이런 베이커리 특유의 꿈과 설탕의 조합이 극의 분위기를 살렸다.  그래도 사연 무거운 남자 넷이 고깃집을 차려서 일했으면 주방에서 칼부림이 날까 가슴을 졸여야 했을 듯싶다.



 이렇게 귀여운 <앤티크>는 머랭처럼 가볍고 케이크처럼 포근하고 달콤해 보이는 겉과 다르게 의외로 그 안의 스토리는 퍽 우울하고 무겁다. 게이로 살아온 사회의 소수자 파티시에 선우, 어린 시절 납치당한 충격으로 기억을 잃은 사장 진혁, 몸이 망가져 사랑하는 권투를 포기해야 했던 전직 권투선수 기범, 부모님의 이혼과 폭력에 시달렸던 보디가드 수영까지. 저마다 어두운 과거 하나 씩을 안고 이 과자점에 모인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나름대로, 저마다 상처를 이겨내는 방법을 배운다. 누군가는 다른 꿈을 찾고, 누군가는 과거를 이겨내고, 누군가는 공포를 극복한다. 유달리 무거워지지 않으면서 신파적 감성도 없다. 그들이 이겨내는 과정을 길고 섬세하게 다루면서 캐릭터를 필요 이상으로 학대하는 법도 없다.

 

  나는 이런 영화가 좋다. 굳이 인물의 고통과 과거를 거름망없이 재현하면서 후추 뿌리고 강제로 울리지 않는 영화. 과거의 상처를 그대로 재현하는 영화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예컨대 <한공주> 범죄 장면이 “액기스편집되어 돌아다니는 상황을 마주할 , 범죄 피해자들에 대해 찍으며 전지적 가해자 시점으로 울고 거부하는 피해자의 얼굴을 가학적으로 담아내는 영화들을   그렇다. 누군가에게 트라우마가  장면을 여과 없이 자극적으로 스크린 안에 옮겨놓는 건 불행 포르노의  편일 뿐, 사람을 위로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까닭이다.




 

 앤티크에서 다루는 상처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같이 단편적으로 드러나 유추할 부분을 남기고,  채워진 부분은 그렇게 내버려 둔다. 진혁은 영화처럼 몇십 년 전에 자신을 납치했던 “진짜범인을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거나 잡지 못했고, 선우도 연인으로부터 상처 받지만 다시 운명의 사랑을 만나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는다. 여전히 사회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적 시선이 파다하다. 양기범이 기적적으로 치료되어 권투를 다시 하게 되지도 않았으며, 수영이 폭력을 저지른 아버지를 찾아가 용서하거나 복수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처음과 그대로다. 그런데 원인을 고치지 못했음에도, 그들은 무너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치유라는 건 근본을 찾아 고치고 없애는 것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견디는 일이라고. 치유란 건 나를 넘어뜨려 상처 입게 만든 돌부리를 찾아 때려 부수는 게 아니라, 과거를 뒤로하고 현재의 사람을 만나 서로 아픔을 돌보고 쓰다듬는 과정이라고.


온건하고, 따뜻하다.



 상처 입은 이들을 이렇게 그린 영화는 처음이었다. 과거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들은 언제나 동정해야  존재,  과거를 “극복하고 성공해야만 비로소 치유받는 존재로만 그려지고는 했다. 반드시 인생의 장애를 딛고 일어나 사회의 인정과 온건한 하나로 거듭나는 게 내가 보아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이었다. 그러나 앤티크의 상처 입은 인물을 다루면서도 인물들의 삶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평범하고, 가끔은 엉망이다. 여자 좋아하고, 마성의 게이고, 주방보조고, 건들건들한 사장 보디가드다. 그들은 영화 속에서 기적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계속하여 소수자로 남아있고, 처음과 같이 여전히 앤티크의 사장과 직원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회적 인정이나 극복이 아닌, 서로의 존재를 통해 끌어안으며 함께 나아간다. 마치 온전한 홀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 케이크들을 4개를 모아 온전한 하나의 케이크를 만드는 것처럼.




 이 영화는 영화제에서 어마어마하게 상을 휩쓴, 단 하나의 단점도 없는 완벽한 영화가 아니다. 영화의 인물들처럼 때로는 과하고, 때로는 유치 찬란하다. 그러나 나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이 영화가 사람을 끌어안는 방식이 무척이나 사랑스럽지 그지없어서 영화가 가진 단점마저 사랑해 마지않는다. 마치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제과점 케이크보다 어린 시절 동네 제과점에서 팔던 빨간 시럽 체리가 올라간 케이크가 좋을 때가 있는 것처럼,  촌스러움마저도 사랑한다.


 아끼고 사랑하는 영화가 모두가 인정하고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영화일 필요는 없다. 이런 사소함과 따뜻한 시선을 가진 영화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래서 매 해 크리스마스마다 생각난다면, 그래서 나를 웃게 한다면.

 나는 앤티크의 마법에 걸려 사랑에 빠졌다.

작가의 이전글 [버즈 오브 프레이] 원한 것은 토스트 한 입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