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성운 Oct 27. 2021

[할로윈 (2018)] 세상 끝까지 너를 쫓아갈게.

난도질 된 역사의 재립






 즉처의 화신, 마이클 마이어스.


 마이클은 영화 <할로윈>이 아니라 데드 바이 데드라이트라는 게임에서 먼저 만났다. 오싹한 테마송과 함께 생존자에게 집착을 걸어 쫓아다니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사람 심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살인마로 등장하는데, 능력도 재밌는데다 많이 뭉그러져 있던(…) 살인마들과 다르게 건장하고 듬직한 체격과 외모까지 어우러져 게임 내에서 확고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간이 콩알만하다보니 게임 플레이 영상만 찾아보곤 했지만 그러다가 어느새 마이클의 매력에 빠져버렸고, 나중엔 에버랜드 할로윈 축제에서 발견한 마이클과 사진을 찍기도 했다. 슬금슬금 다가가서 사진찍고 나서 돌아보니까 정면을 보고 있던 마이클이 날 쳐다봐서 소리지르면서 도망가긴 했지만…






 그런 마이클이 나온다니 안볼  없어 2018 <할로윈> 틀었을  엄청난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오프닝부터 비틀린 화면 구도, 밝은 배경의 정신 병원에서 어떠한 말도 하지 않고, 단지  존재만으로도 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이클을 보고 도저히 설렘을 숨길 방도가 없었다.



정신과 의사 50명이 마이클을 보고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았어요. 오직 루미스 박사님만이 마이클을 묶지 않은 채로 마주하셨죠.

그리고 놈은 그냥
순수 악(惡)이라는 결론을 내셨습니다.




 이 대사를 보고 어떻게 설레지 않을  있을까. 술주정뱅이 아빠와 스트리퍼 엄마, 학대당하고 무시당해서 어쩔  없이 악당이 되어버린 시대가 만든 악마 따위가 아닌, 사연도 없고 이유도 없는 진정한 살인마의 전설이 돌아왔다.


 슬래셔 장르에 충실하게 마이클은 영화 내내 그냥 경찰 죽이고, 주유소 직원 죽이고, 화장실에서 죽이고, 마을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죽이고… 그냥 킬링 머신이다. 죽이는데 사연도 없고 이유도 없다. 산이 거기에 있어서 올랐듯 사람이 거기에 있어서 죽이면서 자신의 최후 목표인 로리 스트로드를 찾으러 간다.


 




 마이클은 슬래셔물의 시초이자 교과서인만큼 클래식한 매력이 가득한 살인마다. 결코 뛰지 않고, 전기톱이나 총기를 사용하는 법도 없다. 마이클은 조용하고 담담하게 희생자들을 추적해 오로지 식칼 하나로만 살인을 저지른다. 새하얀 가면 아래의 표정을  수도 없고 웃거나 말을 하지도 않는다. 인간적인 반응이라곤 조금도 없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예측할  없도 없고, 알  없어서  공포스럽다.


 2018 <할로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리메이크가 아님에도 중간에 있던 할로윈 시리즈의 설정은 거의 폐기했다. 사실 그 과정에서 마이클이 상당히 망가지게 된다. 불행한 과거나 남매 설정 등 끝없이 4절 5절까지 하며 마이클 마이어스의 명성과 캐릭터성이 모두 난도질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2018 버전은 과거 시리즈에 나온 를 깔끔히 버리고, 마이클은 불행한 과거나 가족에 대한 집착 때문에 살인을 저지르는 소위 말하는 불쌍한 악당이 아니라 그냥 이유없이 사람 죽이고 다니는 순수 일 뿐이라며 그 정체를 확고히 했다.

 

 아빠가 술먹고  학대해서엄마는 스트리퍼고 여자가  버려서따위의 사연을 다시 들고 나왔으면 진부함에 진저리를 쳤을텐데 2018 <할로윈> 쓸모없는 과거와 감정은 과감히 버리고 마이클의 악의  자체만 조명하며 마이클의 매력과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 한다.



과거의 로리
현재의 로리



 로리 스트로드의 캐릭터도 매력적으로 풀어낸다. 로리는 과거 유일한 생존자인데, 과거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나 경계심으로 인해 남편과 이혼하고 가족과 갈등을 겪기도 하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등 힘겨워 하지만 동시에 가련한 피해자로만 남아있지 않는다. 로리는 마이클이 다시 올 것임을 확신했고, 반평생동안 다시 싸울 준비를 해왔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슬래셔 무비의 주인공, Final girl이 늘 “착하고 아무 것도 모르고 성경험도 없는 10대 여성” 이었던 것과 다르게 리부트의 로리는 준비성 철저하고 노련한 중년 여성으로 등장해 당당히 마이클과 맞서 싸운다. 거기에 더해진 로리 스트로드의 대사 또한 인상깊다.


 “마이클이 탈출하길 매일 바랐어. 그래야  손으로 그를 끝낼  있으니까.”


 로리는 이제 슬래셔물의 착하고 불쌍한 어린 여자가 아니다. 자칫 1978버전과 너무 똑같이 흘러갈 수 있는 얘기에 강한 존재로 변모한 로리의 캐릭터가 변곡점을 준다.




 그러면서도 2018 <할로윈> 1978버전이 그랬듯 장르 문법에는 상당히 충실한 영화다. 쓸모없는 곁가지나 설정은 삭제하고 적확한 장소에 명확하게 관객이 원하는 포인트 골라 배치했다. 뚜벅이, 무차별 살인, 착하게도 어린 아이와 동물은 학대하지 않음(?), 적재적소에 들어간 살인 장면과 완급조절 등등. 더불어 최근 유행한 믹스장르처럼 코미디나 좀비 장르를 믹스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가지고 끝까지 달려간다. 덕택에 장르적 쾌감이 극대화 되니 슬래셔를 좋아하는 관객은 그저 기쁠 수밖에. 게다가 중간중간 짧게 드러나는 묘한 개그 포인트는 슬래셔 특유의 무섭지만 가벼운, 팝콘 영화 분위기를 려낸다.


 영화가 크게 잔인하지 않다는 점도 좋은 점이었다. 사람 찔러 죽이긴 해도 어디까지나 찌르는 행위만이 보여질  장기가 쏟아져 튀어나온다거나 뼈가 박살나고 피부가 벗겨지고 하여간 이러쿵 저러쿵 보기 힘든 고통스러운 장면을 자세히 조명하지 않는다. 고문 영화인 <쏘우> 크게 히트하며 이후 쏟아진 고문 포르노 스타일의 슬래셔물 모두 과도히 잔인하고 보기 힘든 묘사를 이어왔던 것과는 달리 <할로윈> 정말 깔끔하게 죽이고 간다. 이는 “죽인다 행위에나 의미를 두는 싸이코인거지, “피해자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죽어가는 것을 즐기는변태는 아니라는 캐릭터성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번 <할로윈> 고문 포르노가 아니라 슬래셔 팬들이 그토록 바라 마지 않았던 심플하고 클래식한 전설의 부활임을 확고히 한다.






멋져

 



 몰락과 쇠퇴를 반복하다 이제는 거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직전인 슬래셔물이지만, 1978 <할로윈>  슬래셔의 장대한 시작을 열었듯 이번에도 마이클 마이어스가 다시 정통 슬래셔의 부흥을 불러올거라고 믿어 본다. 불쌍한 과거를 안고 미쳐버린 후에 약자만 골라 살해하는 빌런은 지루하니, 이제 순수한 악의로 무장했지만 아이와 동물은 죽이지 않는 선의의 악당 마이클이 다시 나설 차례가 아닐까.


 다음에 예정된 할로윈 시리즈에서 마이클이 다시 전성기를 맞기를 기대하며 이번 할로윈에는 집에서 마이클과 집콕 데이트나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중독] 나를 죽여야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이었기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