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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운 Oct 20. 2021

[브로크백 마운틴]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오랜 사랑에 대한 맹세


 누가 나에게 가장 싫어하는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귀신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고 로맨스 영화라고 대답할 것이다.


 로맨스는 내게 있어 갑각류 알러지 새우와 같다. 쓸데없이 여기저기 많이 들어가서 빼고먹어도 나오고 걸러먹었더니 눈에 안보이게 갈아서 들어가고 다져서 들어가고 온갖 곳에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오는, 한마디로 상당히 성가신 존재라고 하겠다.


 나는 무성애자가 아니고, 사랑을 모르는 것도 아니지만 로맨스라는 장르 자체를 상당히 좋아하지 않는다. 로맨스 영화에서 드러나는 남녀의 권력관계가 내게는 불편하고, 진짜 있지도 않은 사랑을 쓸데없이 거창하게 포장하는 것도 별로다. 호빗이랑 고블린이 나와서 칼을 휘두르며 간달프가 유 쉘 낫 패스! 하고 지팡이로 돌멩이를 쪼개는건 현실적이고 재밌어도 사랑은 한없이 지루하고 있지도 않은 판타지를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내가 감성이 메마른게 아니라, 진짜 그렇다니까. 영화처럼 영원불멸하거나 평생 가슴에 남는 사랑을 한 사람이 대체 몇이나 되겠느냐는 말이다. 확률상 호그와트 입학서를 받는게 더 가능성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나는 알러지다. 로맨스 알러지.





거의 발작하듯 로맨스를 싫어하며 거르고 걸러 안보려고 애쓰는 내가 정말 유일하게 5점을 준 사랑 영화가 단 한 편 있다. 그 유명한 <브로크백 마운틴>.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두 남자가 우연히 만나 산에서 일을 하다가 서로 사랑한다는걸 깨닫게 됐지만 현실에 의해 헤어지게 됐고, 여자를 만나 살다가도 상대를 잊지 못해 그리워 하다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로 영원히 헤어지게 된다는 스토리다.


 음악이 엄청난 것도 아니고, 화면이 어마어마하게 화려한 것도 아니다. 거대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선 두 남자는 한없이 담담하다. 과묵한 남자 둘 사이엔 별다른 달달한 대화가 오가지도 않는다. 가끔은 툭툭 치고 어깨에 기대기도 하지만 꿀이 뚝뚝 떨어지는 사이는 못된다. 둘은 사랑했지만 별다른 이별의 말도 없이 헤어진다.잭은 계속 에니스를 기다리지만 에니스는 가정을 꾸린 후로 잭을 밀어내고, 잭은 10시간이 넘게 운전해서 에니스를 만나러 가도 에니스는 아이들과 있어야 한다며 잭을 만나주지도 않는다. 잭은 결국 울면서 돌아가고, 다른 남자를 만나보기도 하지만 달라지는건 아무 것도 없다. 시간은 흐르고 우정이란 이름 아래서 허락된 두 사람의 시간은 너무도 짧다. 1년에 한 번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만남, 그게 전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흐른 어느 날, 잭이 말한다.


“ I wish I knew how to quit you.”

“너를 끝내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어.”


 잭은 사랑이나 이 관계를 끝내고 싶다고 하지 않는다. “너”를 끝내고 싶다고 한다. 잭은 굳이 사랑이란 단어를 꺼낼 필요조차 없다. 에니스의 존재가 잭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 그 자체였고, 그 외의 것은 없었으니까. 인생에 사랑이 단 하나뿐이어서, 너를 끝내고 싶다고 말하는 그 감정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다. 끝내잔 것도 아니고 끝내는 법을 알고 싶다니. 얼마나 사랑하면 끝내는 법을 몰라서 끝내는 법을 알고 싶다고 애원할까. 그리고 어떻게 그 긴 세월 한 사람만 바라보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결국 그 깊고 처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잭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고, 에니스는 슬픔에 젖어 잭의 집을 찾아간다. 그리고 잭의 옷장 가장 깊숙한 곳, 잭이 숨겨둔 셔츠를 발견한다. 처음 만났을 때 잭에게 벗어주었던 에니스의 셔츠. 그 위를 잭의 셔츠가 겹쳐져 있었다. 잭은 그렇게 에니스를 사랑했다. 십 몇년 전의 셔츠 한 장을 버리지 못하고 제 옷으로 겹쳐 지켰다. 그렇게 하나가 되기를 희망했다. 그런 사랑이었다. 에니스는 잭의 셔츠를 가져와 이제는 반대로 제 셔츠로 위를 덮어두고는 중얼거린다.



“Jack, I swear….”


  말은 버석하게 메마른 가슴에 서러운 불을 지폈다. 무엇을 맹세한다는 건지는 나오지 않지만 짐작해보건대, 그건 사랑이 아닐까. 이제는 내가 너를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맹세.


 마을 남자가 맞아 죽은 사건을 보고 공포에 질려 사랑을 밀어내고 두려워하고 숨기만 했던 에니스는 없다. 에니스는 더이상 사랑하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고, 상처 받고 두렵더라도 잭이 그러했듯 사랑을 감싸안을 테였다. 잭의 깊고  사랑이 한평생 비겁자로 살아온 에니스를 바꾸었다. 비록 상대가 죽은 후에야 맞닿아 이루어진 사랑이지만 누가 사랑이 이루어짐을 하나의 형태로 정의할  있겠는가. 에니스는 잭의 사랑을 발견했고, 그를 사랑한다는 걸 깨달았기에 끝내  길고  세월을 돌아 사랑을 완성시켰다. 때문에 딸의 결혼식에 가겠다고 약속하고, 옷장 문을 열어보는 에니스는 잭으로 인하여 비로소 온전한 존재가 된다. 그러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존재.






 나는 살면서 사랑을 끝내는데 주저한 적 없었다. 사랑한 적도 많지 않지만 애초에 변치않는 고결한 사랑의 존재도 믿지 않았고, 누군가의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관계도 성가셨다. 물론 대다수는 상당한 파국을 맞았기에 헤어지는 게 어렵지 않기도 했지만 애초에 나는 상대방의 단점까지 끌어안으며 사랑할 인재가 못됐다. 쉽게 질렸고, 언제나 불신했으며, 때로는 욕망 그 자체가 역했다. 그러니까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는 매우 이기적이고 미성숙한 인간이라고 하면 적절할 듯싶다. 그런데 그렇게 비뚤어진 감성을 내가 잭의 사랑의 흔적, 셔츠를 보았을 때 느낀 것은 “저런 사랑이 존재는 하는가”라는 비뚤어진 의구심이 아니라 그저 한없는 애절함이었다. 그냥 널 사랑해, 네가 없으면 죽을 거야, 하는 사랑이 아니라 에니스의 비겁함마저 끌어안는 그 진심. 세상에 그런 게 어딨어?라고 의문하기에는 잭의 셔츠가 사랑의 존재를 증명했다.


 대체 어떻게 단 두장의 셔츠로 평생을 불신한 사랑이 증명되는진 모르겠지만 그 순간 나는 에니스를 사랑하길 멈추지 못했던 잭을 이해했고, 에니스가 느낄 상실에 가슴 어딘가가 쓰라려 차마 눈물도 나지 않았다. 이루어질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데 벗어날 수도 없는 감정의 늪에 빠졌다. 해본 적도 없는 사랑을 영영 잃은 기분이었다. 본 영화를 보고 또 보는 성격임에도 이 영화는 절대 다시 보지 않았고 앞으로도 다시는 돌려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보면 시작부터 너무 슬퍼서 무너질 것만 같다. 내게는 그만큼의 파장이었다.

 

 아주 오래 전 새벽   즈음에  영화임에도 <브로크백 마운틴> 생각할 때마다, 여전히 브로크백 마운틴의 전경만큼 쓸쓸해진다. 세상에 정말 에니스가 존재할  같고,  너머에는 잭의 무덤이 있을  같다는 생각을 지울  없다. 사람과 사람이 사랑하는  이토록 슬플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저민다. 나는 아직도 사랑이 뭔지 명확히 몰라도, 에니스를 향한 잭의 감정이 사랑임은 확신한다. 그건 차마 놓을  없는 거다. 울면서도 옷자락 끝이라도 붙잡고 싶은, 비참해져도, 그래도 그를 보는   기쁜 감정.


나는 <브로크백 마운틴> 보고 이해했다.

세상엔 이런 사랑이 있다.  




“결국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겠지.

언제 끝날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오래, 끝이 보일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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