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문화와 덕후들에게 보내는 찬사와 위로.
나는 한 때 속칭 “겜X” 이었다.
굳이 변명하자면 이것도 전부 영화 때문인데, 워크래프트를 재밌게 보고 와우를 손댔다가 그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고 말았다. 세상 게임이라고는 메이플스토리와 쿠키런밖에 모르던 순진무구함은 빠르게 타락해서 감히 누구도 “플레이” 하지 않고, 잠시 게임으로부터 휴식을 취하기만 할 뿐이라는 RPG계의 레전드에 빠진 이후 나는 잠자고 먹는 시간도 아껴가며 게임을 했다. 그러다 레벨 999의 토끼곤듀님이 되어 할 게 없어지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스팀에까지 손대다 보니 진정 게임의 참된 재미를 알아버렸고… 안 그래도 독서, 음악, 영화감상 따위의 정적인 취미밖에 없는 나는 결국 게임마저 취미 중에 하나로 만들고 말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그런 게이머들에게 꿈같은 공간이다. 샌드박스, RPG, FPS, 레이싱,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 속에 직접 들어가 놀 수 있고, 심지어 디스코드를 안 쓰고 친구와 만나서 대화할 수 있다. 게임 속에서 내 마음대로 외모를 바꾸고, 아이디를 설정하고, 우정을 나누고 생활도 할 수 있다니 누구라도 (적어도 게임을 사랑한다면) 빠져들지 않고 견딜 수 없을 듯싶다. 이게 무슨 천국인가. 솔직히 마인크래프트, 스타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 속에 들어갈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
영화는 주인공이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한 세계를 창조한 대중문화와 덕후가 남긴 게임 속 이스터에그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순수한 노력과 열정으로 빚어지는 게임 세계를 현질 지갑 전사로 도배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내용이다. 스토리는 깔끔한데 그 안에 녹아든 대중문화들이 무척 많아 덕후의 가슴을 뻐렁치게 한다. 디씨 코믹스, 아이언 자이언트, 헬로키티, 춘리가 걸어 다니고 영화광들의 열광적 찬사를 받는 샤이닝이 추리 스릴러 게임의 배경이 되고, 대사와 장면마다 듀란듀란이니, 닌자 거북이니, 스타트렉, 오버워치… 아무튼 요즘 세대가 좋아하는 건 다 들어있는 종합 과자 선물 세트 같다. 먹는 일, 즉 스토리가 흥미롭다기 보단 그 안에 들어있는 알록달록한 면면을 살피는 재미가 충만하다. 나는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만 세 번을 넘게 보았고 지금까지도 주기적으로 VOD로 즐겨 보는데 그럴 때마다 새로운 캐릭터 찾는 재미에 푹 빠진다.
사실 스토리는 단순하고 결말은 허접하다. 엔딩에서 웨이드 왓츠가 요일별로 오아시스 운영제를 만들어서 강제 셧다운 하는 장면은 갑자기 공익방송으로 변질되는 기분을 주고 감동을 산산이 깨뜨리며 감독이 얼마나 게임 알못인가를 보여준다. -스필버그에겐 미안하지만, 덕후로서 이런 엔딩은 결코 참아줄 수 없다. 셧다운이라니, 웨이드 왓츠는 게임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던 놈이든가, 돈에 눈이 멀어버린 게 분명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구멍과 단점이 여실히 드러나는 영화다. 여전히 게임을 제한해야 할 대상, 현실보다 모자란 가짜 세상으로 보는 기성세대의 시선이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그럼에도 이 영화를 분기별로 계속 보는 이유는 결국 하나다. 나 같은 게임 덕후의 영원한 꿈이 이곳에 담겨있는 동시에, 내게는 이 영화가 너무도 큰 위로였기 때문이다.
나는 대놓고 대중문화를 무시하는 곳에서 공부해 왔다. 대중문화와 상업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교수님은 현장에서 영화 제작하시는 교수님 한 분뿐이셨고, 나머지 이론 교수들은 대중문화를 거의 경멸하다시피 했다. 현실을 담은 네오리얼리즘 영화만이 진정한 영화이며 지금의 영화는 그 의미를 상실했다나, 뭐라나. 거기에 교수님 따라 영화 예술병에 걸린 놈들은 상대를 안 했고, 나머지 친구들은 영화의 ㅇ자도 보기 싫다며 말조차 꺼내기 싫어했으니 나는 그렇게 취향을 있는 대로 무시당하는 곳에서 더럽고 치사해도 참으면서 서럽게 살아야 했다. 솔직히 다들 은밀하게 마블은 좋아했을 법도 한데.
하여간 진실이 어쨌든 간에 그렇게 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다가 보게 된 <레디 플레이어 원> 은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고 사막의 오아시스일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무시 못할 거장인 스필버그가 대놓고 “대중문화”에 대한 존경과 찬사를 보낸 것 아닌가. 그것도 가장 멸시당하는 문화 중에 하나인 게임을 배경으로. 스필버그가 인용한 캐릭터들과 애니메이션, 코믹스, 게임들은 하나같이 내가 사랑해마지 않는 것들이었고, 그게 스필버그 공인으로 영화에 등장했다. 교수님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지 어쩐지는 알 바 아니나 적어도 내게는 말도 못 하게 큰 위안이었다. 내 취향이 틀리지 않았음을 (!) 증명받는 기분이었다고 할까.
덕후들이 요일제 셧다운이라는 허접한 엔딩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미친 듯 열광했던건 이런 이유도 컸으리라 생각한다. 대중문화는 말 그대로 많은 사람, 대중이 사랑해서 대중문화가 됐지만 때로는 그렇기 때문에 쉽게 폄하당한다. 홍대 병과 예술 병자에게 축구공처럼 차이는 건 예삿일이고, 뭐하러 그런 영화나 게임에 집중하냐, 젊은 게 연애나 하라는 현실 인간과 어른들의 일침 아닌 꼰대질 속에서 살아남기가 참으로 어렵다. 아이돌이나 록 밴드 좋아하면 철없고 한심 한 거고 뮤지컬이랑 오페라 보러 다니면 고상한 거고. 애니메이션은 7세 아동이나 보는거라고 하고, 게임하면 나가서 연애나 하라고 하고…. 뭐 대충 그런 세상 아닌가. (애인은 헤어지면 텅 빈 가슴만 남지만 게임은 접어도 업적이랑 탈것이 남는데 진짜 뭘 모른다.) 그렇게 있는대로 무시를 받으며 가슴이 사무쳤던 덕후와 너드들에게 스필버그가 확성기 들고 소리친거다. “너드들아, 기죽지 마라. 너네가 좋아하는 건 다 가치가 있다.” 하고.
스필버그의 덕후에 대한 존중은 ioi직원들을 통해서도 보이는데, 마지막 대결 장면에서 모든 직원이 웨이드를 응원하며 손에 땀을 쥐다가 웨이드가 성공하자 소리지르고 즐거워하는 게 너무도 웃기고 즐거웠다. 자신의 이득과 상관없이 누군가 이 문화를, 게임을 사랑하고 알아준다면 그걸로 기쁜 순수한 덕후의 모습이었다. 덕후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해준 영화가 또 어디있단 말인가. 사실 누가 뭐라든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지만 주변에서 자꾸 욕하면 위축되는 게 사람인데, 스필버그가 시원하게 한 마디 해주며 그들에게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주었기에 디씨 마블 톨킨 영화 게임 만화 덕후는 울컥했다.
특히 오아시스를 지키기 위해 모든 유저들이 모여 총공격을 하는 걸 보고 게임 속 필드 전쟁을 (와우는 선택한 진영에 따라 상대 진영을 죽이거나 팀을 모아 전쟁, 토벌을 벌일 수 있다. 아무 것도 안주지만 자신의 진영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생각하며 소름이 쭈뼛 돋기도 했다. 게임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덕후의 위대함이란.
지금이야 교수와 홍대병의 그늘 아래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덕후의 삶을 살고 있으나, 사실 여전히 처음 만나는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걸 드러내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여자/남자가 그런 거 좋아해? 네 나이에 그런 거 좋아해? 네가 그런 걸 좋아해? 헐… 특이하다. 예대 나오지 않았어? 너넨 다 예술 영화 좋아할 줄 ㅎㅎ 따위의 반응과 평가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그래서 한 때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하고 취향을 무시당하지 않을 만한 고급 영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고, 고양이 밥 주는 게임이랑 쿠키들이 오븐 탈출하는 게임만 하는 체하며, 애니메이션이라곤 원피스밖에 모르는 척하기도 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더이상 나를 숨기고 고상한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으로 포장하려 들지 않는다. 내가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를 보면서 눈물 콧물 짜고, 에이스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으며, 아이언맨부터 엔드게임까지 미쳐서 5번씩 보고,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헤비 유저일 수도 있지. 뭐. 왜.
대중문화는 누구나 가볍게 소비할 수 있는 유치하고 값싼 취향이 아니다. 오히려 그토록 많은 사람을 매료시킬 수 있는 놀라운 매력을 가졌고, 그 팬들이 모여 또 다른 문화를 형성하게 만든 가치 있는 역사로 존재한다. 누구도 나의, 혹은 당신의 취향을 함부로 폄하할 수 없다. 사랑하는 게 허상이면 어떤가. 내가 사랑하는 순간 그건 현실에 존재하는 진심이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그러니 우리 덕후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며 가슴을 펴고 살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