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레시피

간장 한 박구의 새우찜

by 식탁 아래

자취를 시작하기 전, 외할머니 댁에 살았던 적이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이 아파트에 사셨는데, 남는 방에 들어가서 지냈었다.



두 분은 적적했던 차에 손주가 와서 지낸다고 좋아하셨고, 나 또한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것이 좋았다.

그렇지만 좋았던 것도 잠시, 지내보니 불편한 부분들이 생겼다.



두 분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셨고, 아침 일찍 아침식사를 차려드셨는데, 자고있는 나를 꼭 깨워 함께 밥을 드셨다.

아침밥정도야 챙겨먹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괜스레 짜증이 났다.

새벽까지 과제를 하고 늦게 잠이 들었는데,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밥을 먹는 건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여느 어르신 댁의 식사가 그렇듯, 늘 구수한 찌개를 끓이셨는데, 된장찌개나 청국장처럼 냄새가 진한 음식들이 많았다. 온 집안이 구수한 냄새로 가득 찼고, 매일 그 냄새를 머금고 등교했다.


나는 여대생이었고, 학교에 갈 때면 청국장 냄새가 진하게 밴 옷이 신경쓰여, 페브리즈를 잔뜩 뿌리고는 했다.



할머니는 전라도 분이셨고, 내가 평소에 먹지 못했던 반찬들을 내어주시곤 했다.

거의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이 많았다.

장아찌류, 각종 김치류들로 가득찬 밥상, 보통은 계란후라이가 함께 했고, 가끔 호사스러울 때면 생선구이가 올라왔다.


나에게 몸통의 살을 내어주시고 할머니는 머리와 뼈에 붙은 살을 발라드셨다. 그게 입에 맞는다고 하셨다.


키가 150이 안 되는 왜소한 할머니는 지하철을 타고 두 시간을 달려 소래포구에 다녀오시곤 했다.


할머니의 배낭이 할머니의 몸보다 커져서 돌아오셨는데, 나는 가끔 저 배낭 때문에 할머니 허리가 더 굽는 건 아닌지 걱정하곤 했다.



그럴 때면 작은 게로 게장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고, 갯가재 찜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는데, 그게 참 맛있었다.

뜨겁고 딱딱한 껍질을 까느라 손가락이 아팠지만 맛이 너무 좋아 아픈 것도 잊어버리곤 했다.


뼈와 가죽밖에 안 남은 듯한 할머니의 손가락이 걱정돼서 나는 껍질을 열심히 벗겨 할머니 입속에 넣어드리곤 했다.

역설적이게도 일흔 살의 할머니가 귀엽고 가엾게 보였다.



오래오래 할머니의 입에 갯가재를 까서 넣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할머니는 내가 처음 본 반찬들을 종종 만들어주시곤 했다.



그 중 좋아하던 반찬은 건새우찜이었다.

마늘쫑과 채소와 건새우가 들어있는 간장조림 형태였는데,

건새우의 맛이 진하게 나며 밥 한공기를 뚝딱 할 수 있는 반찬이었다.



할머니는 냄비 대신 늘 양은 그릇을 직접 가스불에 올려서 만들어주시곤 했다.

불에 달군 그릇을 그대로 손으로 들고 오시곤 했는데, 할머니 손이 익어버리진 않을까 염려되었었다.



열기가 펄펄 나는 양은 그릇을 행주도 없이 덥석 집어 올리시던 할머니의 두꺼운 손바닥 굳은살은 마치 할머니의 삶의 훈장 같았다.



“할머니, 이거 어떻게 만들어?”


“응, 마늘쫑 쫑쫑썰어 넣고, 새우 한주먹 넣고, 간장 한 박구 돌리고, 물엿 쬐까, 설탕 쬐까 넣고 마늘 넣고 물도넣고 해가지고 끓이면된다”


“어려워. 할머니가 만들어 줘”


“그려”



십 년이 훌 쩍 지났는데도 여전히 할머니의 레시피는 온전히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고, 아기를 키우면서도 한 번씩 기억나는 맛이라 기억을 더듬어 만들어보지만 그 맛이 아니다. 할머니의 손맛, 그리운 그 맛.


제대로 레시피라도 물어 둘 걸.



이제는 할머니는 내 나이도 기억 못하신다.

갈 때마다 “시집은 갔냐”고 물어보시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아들 낳았냐”고 물어보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셨는데, 나이가 아흔이 넘은 할머니는 알츠하이머가 왔다.

오랜만에 할머니 댁에 가면, 예전보다 키는 더 작아졌고, 살은 더 빠졌고, 여전히 머리카락은 풍성하지만 하얗게 세버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십여 년 전 모습 그대로, 소파에 앉아 묵주기도를 드리고 계시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왔냐” 하며 웃으시는데, 그 웃음이 너무 십 여년 전과 똑같아 코끝이 찡하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손녀를 맞았던 그 웃음과 똑같다.



“할머니, 나 새우찜 해줘”

라는 말에



“새우찜?아가 밥 안먹었어?”

서른 다섯의 나.

나는 여전히 할머니의 아가고, 할머니는 다 잊어버려도 나랑 새우찜은 기억하시나 보다.


이제 할머니의 레시피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제대로 물어두지 못한 그 짧은 레시피가, 이제는 할머니에게 전하지 못한 긴 편지가 되어 나를 울린다.



할머니, 이제는 제가 그 투박한 양은 그릇을 대신 들어드릴게요.

사랑한다는 말 대신, 할머니 입속에 갯가재 살을 발라 넣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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