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질수록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안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래 기억이 남을 것 같은 사람이다.
그 분과 그 곳은 사라졌지만, 온기는 아직도 가득하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유난히 춥게 느껴진 초겨울,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근처에 있는 키즈카페에 가고있던 날이었다.
몸은 옷가지로 중무장을 했으나, 아기를 케어하느라 장갑을 끼지 못한 채 유모차 손잡이를 잡은 손 끝이 빨개져왔다.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유모차를 끌고 빨리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옆에 작은 옷가게 하나가 보였다.
‘OPEN’
천장이 낮고 어두웠지만 열려있다는 팻말을 보고 손잡이를 잡았다.
‘끼익-‘
“어서오세요. 어머나 아기, 안녕?”
하얗고 체구가 작은 주인아주머니가 맞아주셨다.
“안녕하세요. 혹시 장갑 있을까요? 손이시렵네요.”
“어머나, 어째, 우리가 장갑은 없어. 머플러는 있는데, 저런, 아기엄마 손이 얼었잖아. 기다려봐.”
멋쩍게 웃어보였고, 아주머니가 이내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주셨다.
“손이라도 녹이고 가요. 여기 앉아. 아유 어쩜좋아.”
반말과 존댓말이 섞여있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엄마같은 푸근함에 손도 마음도 따뜻하게 녹았다. 건네받은 커피처럼. 사람의 온기가 오랜만이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이런 저런 말을 건네셨다.
온종일 아기랑만 있다보니, 오랜만에 나누는 어른과의 대화가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다.
짧은 대화 끝에, 보채는 아기를 데리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며칠 후, 아침에 배송 온 예쁜 사과를 몇 개 챙겨 다시 옷가게를 찾았다. 현관 백열등 아래 가장 예쁜 놈들로 골랐다.
아주머니는 기뻐하셨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들렀고, 아주머니는 늘 커피를, 아기를 위해 작은 과자를 내어주셨다. 아기도 웃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옷가게 근처를 또 지나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가 인사를 드렸다.
며칠 전에 문이 닫혀있어 궁금했었다는 말에 일이 좀 있었다고 대답하셨다.
곤란해보여서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커피를 주셨고, 나는 할인 표시가 되어 있는 후드티를 한 장 골라 구매했다.
“옷이 참 좋네요. 예뻐요.”
라는 말에 아주머니는 빙긋 웃으셨다.
아기는 아주머니를 보며 애교를 부려댔고, 아주머니는 다시 소리없이 빙긋, 그러나 활짝 웃으셨다. 그 웃음이 난 참 좋았다.
집에 가려는데, 아주머니가 나즈막히 말씀하셨다.
“이번 달까지만 해. 자주 들러.”
그제야 눈에 들어온 매장의 풍경. 곳곳에 쌓인 박스들, 정리 중인 옷가지들, SALE 표지…
생각해보니 손님이 있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가게를 그만두는 이유가 건강상의 이유인지, 재정적 어려움인지, 아니면 이사인지, 어떤 말이든 건네보려 했지만,
실례일 것 같아 한 발자국 물러났다.
대신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을 만큼, 나는 육아에 잠겨 있었다.
아주머니가 내 표정을 읽으신 듯, 말씀하셨다.
“옆에 대형마트가 들어왔잖아. 그 이후로 손님이 없네. 버티려고 했는데 더이상은 힘들 것 같아.”
이어지는 설명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해 미안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이 생겨난다.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옛 것들은 자리를 잃어간다.
대형마트는 크고, 다양한 제품들이 있을 것이고, 쇼핑하기 편할 것이고, 가격도 더 저렴할 수도 있겠지.
오래된 것들이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것들이 환영을 받는다.
옷가게 아주머니는 어디에 설 것이며,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모르는 어르신들이 갈 가게가 점점 없어져간다.
오래된 것들의 설 자리를 보전해주고 싶다. 그 온기와 마음을 간직하고 싶다. 세상의 낮은 곳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
며칠 후, 가게의 문이 닫혔다.
‘Closed’
그 날 뿐 아니라, 영영 닫혀버렸다. 어느 날은 가게에 상자만 가득했고, 다음 날은 상자마저 없어져 텅 비어버렸다.
그리고 며칠 후에는 간판마저 사라졌다.
어디로 가시냐고, 연락처라도 물어 볼 걸.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높은 곳보다 낮은 곳들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따뜻한 온기를 품은 곳이 하나쯤은 더 남아 있어도 되지 않을까.
주황빛의 노을이 깔리는 그 길을 지나는데 오늘따라 그 길이 낯설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