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 돌아온 주말, 점심으로 김치 덮밥을 만들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배가 불러도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끝까지 김치 한 조각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비우며 하던 말이었습니다.
주중에 다녀온 서울에서 과연 우리가 먹은 게 뭐가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하다 과거의 제가 소환됐습니다.
옛날 옛적 호랑이가 담배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스무리한 것을 피우던 그때. 제가 결혼도 하기 전. 직장 다닐 때 친한 동료와 야간 당직을 맞춰 오프 때마다 맛집 투어를 했습니다. 운 좋으면 한 달에 두세 번 아니면 한두 번 정도였습니다. 야간 당직 업무 중 한가한 시간에 모여 다음 날 갈 곳을 찾으며 일하는 시간도 행복이라는 걸 알게 한 그 시절이었습니다. 그만큼 먹는 것은 저에게 행복과 힐링의 시간을 선물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간단 씨나 아무거나 군도 저와 별 다르지 않을 거라 확신하며 기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서너 살 아무거나 군이 바닷가 모래놀이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부모인 우리는 무작정 해안도로를 따라 모래놀이 하는 아무거나 군 옆에서 종일 수평선을 바라보며 멍하게 앉아 있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도 근처 횟집이나 대개 전문점에 들러 먹어 보지 못했습니다. 바닷가 비린내를 질색팔색하는 간단 씨는 아무거나 군을 위해 딱! 바닷가. 거기까지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은 집에서 준비한 도시락이나 우리 지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국밥집이 최선의 선택인 참 궁상맞은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은 아무거나 군도 제법 컸고, 도통 안 먹던 어린 시절을 지나 이제는 제법 잘 먹는 어린이가 되었으므로 기대가 있었습니다. 이런 기대와 맞닿아 종종거리며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저의 기대까지 보태져 더하기에 더하기를 한 한껏 부푼 여행이었습니다. 하지만 부풀 대로 부푼 기대는 점심시간을 훌쩍 지나 도착한 서울에서 점심 겸 저녁으로 감자튀김을 선택한 아무거나 군에 의해 순식간에 터져버렸습니다.
간단 씨의 입맛을 쏙 빼닮은 아무거나 군은 국밥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본인도 멀리 서울까지 왔어 국밥은 좀 그렇다며 이튿날 아침으로 선택한 것이 곰탕입니다. 감기에 걸려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며 저 스스로 다독여봅니다. 그러나 너무 섣부른 위로였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끼니때마다 서로에게 날선상태가 되었습니다.
"엄마는 왜 자꾸 먹는 이야기만 해요?"
아무거나 군은 이런 말로 저를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끝내 화만 내는 나쁜 엄마가 됐습니다.
마지막날 덕수궁에서 해설사님의 맛깔스러운 입담에 행복했고 역사적 사실에 가슴 아픈 시간을 보낸 후 늦은 아침을 먹으러 갔습니다. 날이 꾸물꾸물했고 쌀쌀해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습니다. 많은 음식점 중 아무거나 군이 분식집을 골랐거든요. 국물(라면과 국수)도 있고 (김)밥도 있는 곳이니깐요. 라면을 선택한 아무거나 군은 온전히 라면만 끓여야 먹습니다. 아무거나 군을 너무 잘 아는 제가 주문하며 계란은 빼달라고 수줍게 부탁드렸고 기분 좋게 알겠다고 했습니다. 테이블로 주문한 음식이 하나 둘 차려지는데 라면의 국물이 탁했습니다. 떡하니 계란을 힘차게 풀어 넣었더라고요. 그래서 이야기했더니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눈으로 그냥 먹으라 강요하는 듯했습니다. 앞 글에서도 언급했던 저는 겁(소심)이 많습니다.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거나 군은 겁쟁이 엄마의 태도에 라면 먹기 거부로 행동했습니다. 그렇게 이날도 아무거나 군은 김밥 속에 들어간 계란을 쏙 빼고 네다섯 개만 먹고 배를 툭툭 치며 부르다고 합니다. 정말 이번 여행에서 먹는 힐링의 순간은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엄마의 힐링 포인트를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아무거나 군. (뭐라 해도 네가 잘못했어!)
서울에서 우리는 곰탕 세끼, 감자튀김 두 끼, 분식 그리고 엄마 욕심에 주문한 생선 정식에서 사이드 반찬으로 나온 멸치로만 한 그릇을 먹은 상당히 소심했고 입맛보다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식사였습니다.
여행 내내 배 고프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았던 아무거나 군입니다. 그런 그가 아이러니하게도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제일 먼저 한 말이 배가 고프답니다. 그러며 집에서 무얼 먹을지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