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몸에 뒤룩 뒤룩 붙은 지방은 평생의 동반자다 생각하며 잘 참아도, 집안이 난장판이거나 난잡한 물건들은 못 견딥니다. 깔끔하진 않지만 깔끔한 걸 좋아하고, 멀끔하진 않지만 멀끔하길 바랍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성격입니다.
이런 제 성격은 부지런하지 않으면서 부지런 떨게 하고, 청소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청소를 좋아한다고 마음먹게 합니다. 그 덕에 저는 나름 잘 정돈된 집처럼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또, 청소 후 멀끔한 살림에 뿌듯함도 가집니다. 이 맛에 청소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은근 중독성까지 있습니다.
간단 씨의 출근을 배웅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자 콧등으로 살짝 스쳐가는 바람이 꽤나 상쾌합니다. 이런 날은 제가 좋아하는(아마 좋아할 겁니다.) 청소를 해야 합니다. 주말 동안 거대한 가족이 만든 갖가지 먼지가 방바닥, 가구에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제 콧구멍에도 미세털에 막혀 폐까지 도달하지 못한 것들이 덩어리를 만들어 답답하게 합니다. 확 다 치워야 합니다.
이러니 월요일은 의식같이 자연스럽게 대청소를 하게 만듭니다. 지금은 아무거나 군의 방학이니 매일이 주말처럼 먼지가 쌓여 제 입맛을 만족스럽게 하는 청소는 어렵습니다. 거기다 간단 씨와 함께하는 주말이 가세하니 이건 뭐 먼지나라에서 주말을 보낸 우리 가족이라고나 할까요. 그만큼 주말을 지난 우리 집은 먼지 천국인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월요일은 대청소가 필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날입니다.
가장 먼저 청소를 위해 모든 창문을 개방합니다. 다음으로 아무거나 군을 자신 방으로 밀어 넣고 방문을 닫게 합니다. 주말 동안에도 햇볕은 좋았지만 바람이 얄미울 정도로 쌀쌀맞았는데 금세 쌀쌀맞은 얼굴을 숨기고 산뜻하고 포근함을 드러냅니다. 이날은 유난히 방충망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더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습니다.
먼저 거실에 깔려있는 매트 먼지를 털어내고 세탁기에 넣어 돌립니다. 추운 겨울 바닥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으로 매트만 한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먼지를 만들어내는 공장이기도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세탁하는 것에 스스로 위안을 삼습니다. 싱크대와 욕실 앞 매트도 세탁기에 함께 넣었습니다. 이렇게 이들도 일주일에 한 번의 미지근한 탕목욕을 끝내고 따뜻한 햇볕 샤워를 하며 기분을 냅니다.
그다음은 무선청소기를 돌립니다. 무선청소기는 이곳저곳 자유롭게 이동해 청소할 수 있어 좋습니다. 하지만 유선보다 흡입력이 떨어져 살짝 아쉽습니다. 세상에 제 마음에 백 프로 맞는 게 있을까요. 저 역시 제 마음에 안 들 때가 많은데요. 이방 저 방 열심히 돌아다니며 흡입한 먼지는 먼지통에 고스란히 쌓입니다. '우와, 저걸 내가 다 마시고 있단 말이야!'라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하는 먼지통입니다. 끔찍합니다.
이제 제일 중요한 물걸레 청소입니다. 저는 최근까지 무릎 꿇고 하는 걸레질을 선호했습니다. 밀대로 미는 걸레질은 성에 차지 않았거든요. 왠지 청소 후에도 먼지가 방바닥에 그대로 붙어 있는 것 같은 찝찝함이 저의 두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변에서는 몸 아끼라는 말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귀등으로 흘렸습니다. 깔끔하게 닦인 바닥에 취해 그 말은 어느 별나라에서 하는 말처럼 멀어 잘 들리지 않았거든요.
그러다 덜컥 탈이 났습니다. 작년 11월에 류마티스 관절염을 진단받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무릎 꿇고 걸레질을 하면 안 된다는 선고를 받은 날이기도 했습니다. 참 슬펐습니다. 세월 앞에 저의 한낱 나약한 몸이 무릎 꿇는 것 같기도 했고, 더러워질 방바닥이 걱정되기도 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미련 곰탱이 같습니다. 그깟 청소가 뭐라고! 그러나 일단 그때는 청소가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sns에서 핫한 유명인이 광고하는 스팀 청소기를 발견하고 바로 구매했습니다. '그래 이거다. 이거면 더 이상 방바닥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생각할 수 록 참 별스럽습니다.
sns에서 바로 구매를 누르며 기쁜 마음으로 배송을 기다렸습니다. 며칠 후 몇 겹의 포장에 에워싸여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먼저 포장된 상태를 보고 지구 환경이 걱정됐지만 제 아픈 무릎에 죄책감도 쉽게 사그라들었습니다. 나와는 사뭇 다른 날렵하게 생긴 청소기도 제법 마음에 들었고요. 기능이 많았지만 뭐, 그건 그냥 신경 안 씁니다. 뜨거운 스팀이 찌든 때만 잘 닦아주면 되니깐요.
먼저 물통에 물을 채우고 코드를 꽂아 잠시 기다렸습니다. 방정맞게 깜박깜박하는 LED빛의 예열 전 신호가 멈췄습니다. 깜박불이 멈췄다는 것은 '예열이 끝났으니 나를 어서 사용하시오.'가 되겠습니다. 이제 뜨거운 스팀을 '슉슉' 내뿜으며 방방마다 밀대처럼 밀어주면 됩니다. 뜨거운 스팀이니 몇 달간 눌어붙어 자기 집인 양 거주하고 있는 찌든 때를 깔끔하게 퇴출시키기 충분할 겁니다. 오우, 기대감이 천장을 뚫을 기세입니다. 얼마 만에 이런 기분을 느껴보는지 정말 막막 설렜습니다.
아뿔싸!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꼼꼼하지 못한 제 성격 탓과 마음에 쏙 든 제품이라는 열망에 제품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지 않았습니다. 제품 광고의 기능에만 홀라당 넘어가 스팀이 나오는 방식에 대해서는 무관심했습니다. 사용해 보려니 문제점이 발견됐고 대두됩니다. 이 제품은 트리거 버튼으로 되어 있어 손가락으로 당길 때만 스팀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제가 지금 류마티스 관절염 때문에 이 청소기를 주문했습니다.
류마티스 관절염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으로 외부 자극을 받으면 인체 내 면역체계가 자신의 몸을 비정상적으로 공격하여 발생. 특히 손마디가 붓고 통증이 느껴져 손을 쓸 수 없다고 호소하는 환자가 많음.
꾸준히 약을 복용하고 있어 상태의 호전이 보이지만 스팀 청소기를 사용할 때마다 손가락이 아파 힘든 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자주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말을 지난 월요일만은 꼭 사용해줘야 합니다. 뜨거운 스팀으로 방바닥을 닦아내면 하얀 솜털 구름 같은 걸레가 금세 먹구름으로 변하는 게 보입니다. 이 맛에 청소가 즐거울 밖에요. 그리고 주말 동안 잔뜩 낀 먹구름 같은 제 마음을 빠르고 깨끗하게 거두어 주중의 활력을 충전하는 기분이 들게도 합니다.
드디어 청소가 끝이 났습니다. 따뜻한 차를 한 잔 가지고 식탁에 앉았습니다. 싱크대 위도 멀끔하고 걸레질한 가구 위도 제 눈에는 반짝반짝 빛을 뿜는 것 같습니다. 깔끔함과 함께 찾아온 여유로운 티타임. 주부로서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몸이 조금은 느슨함을 원합니다. 제 몸과 마음이 조금씩 타협점을 찾아 나름의 청소력을 찾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