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렇게 만들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신기해요. 엄마, 생각보다 잘 만들지 않았어요?
아무거나 군이 애완 레고 피규어와 놀기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위 영상을 만들고 아무거나 군이 스스로 놀라 저에게 자랑하듯 한 이야기입니다.
덕-질 어떤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여 그와 관련된 것들을 모으거나 파고드는 일.
덕질, 가장 먼저 제 머릿속 기억 저장고는 선뜻 아무거나 군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파고드는 일' 깊숙이 그 행위에 들어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거나 군은 여전히, 꾸준하게 파고들고 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서너 살 때 새벽같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때 아무거나 군을 잠이 없는 아이로 섣부른 단정을 하게 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눈 뜨자마자 제일 먼저 저를 찾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저 역시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자란 덕에 대부분 깨어 있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새벽형 인간정도 되겠죠.
새벽 출근하는 간단 씨의 아침을 준비하다가도 아무거나 군의 부름에는 빛의 속도로 반응했습니다. 거의 매일 똑같았습니다. 아무거나 군은 새벽에 일어나도 절대 부스스한 어린이가 아니었습니다. 이것부터 꾀죄죄한 저와 너무 달랐습니다.아무거나 군은 별을 콕콕 박아 넣은 듯한 초롱초롱하고 생기 있는 눈이 절대 방금 일어난 어린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눈으로 저를 쳐다보며 안아 달라 두 팔 벌리면 안을 밖에요. 그럼 아무거나 군을 번쩍 안아 부엌으로 나와 서둘러 간단 씨의 아침을 챙겨 출근시켰습니다. 그 시절 정말 정신없는 새벽 시간을 보냈습니다.
간단 씨도 출근했으니 아무거나 군에게 집중할 시간입니다. 아무거나 군은 지난밤 꿈보따리를 풀어헤치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어린 게 꿈이 참 다채로웠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가장 무서워했던 것이 좀비였습니다. 참, 싫다는 것은 역시나 꿈에도 반복적으로 나오나 봅니다. 꿈 대부분은 좀비가 쫓아왔거나. 도깨비방망이로 나쁜 사람들을 물리쳤거나. 뭐,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아무거나 군이 이야기를 한참 쏟아낸 후 제가 충분히 귀기우려 들었다 싶으면 다음은 하얀 종이를 찾았습니다. 하얀 종이 위에 제가 보기엔 아무렇게나 쓱쓱 그린 그림에 빨간 사인펜 또는 크레파스로 피 흘리는 듯하게 칠해진 꿈속 괴물이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그린 괴물은 점점 또렷하게 형태를 만들어갔습니다. 흐물흐물 좀비, 뿔 달린 도깨비, 눈에 붉은 불을 켠 서양 호박 귀신까지 종류도 어쩜 그리 다양하게 그릴 것이 넘쳤는지 모르겠어요. 옆에서 지켜보던 제 마음은 기괴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저 나름 혼란스러운 감정에 힘든 시기였던 그 시절을 제법 잘 지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을 활시위를 떠난 활 같다고 했던가요. 괴물 그리기에 푹 빠져 있던 어린 아무거나 군이 벌써 열한 살이 됐습니다. 요즘 아무거나 군은 그리는 괴물에서 레고와 클레이로 표현한 괴물로 장르가 넘어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레고 캐릭터 얼굴을 아세톤으로 지우고 자신이 원하는 얼굴로 표현하고 클레이로 길고 긴 혀를 만들어 괴물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만든 괴물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찍어 스톱 모션(stop motion) 형태의 동영상까지 만들었습니다. 노력이 가상합니다. 짧은 영상 하나를 만들기 위해 몇백 장의 사진과 동작을 만들어내 편집하는 수고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거나 군의 열정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습니다. 저는 이런 아무거나 군을 보며 생각합니다. 과연 제게도 이처럼 무언가에 열광한 적이 있는지 말입니다. 아쉽게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정말 뜨뜻미지근하게 살아왔습니다. 누군가가 가리키는 길로만 지나왔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도 제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는 중에 있으니 말입니다. 아무거나 군을 볼 때면 하나에 너무 집착하듯 빠진 모습에 짜증도 나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모든 열정을 쏟아내는 모습이 아름답고 부럽기도 합니다.
요즘 저는 아무거나 군을 보며 깨닫습니다. 남들이 뭐라 하던 하고 싶은 걸 하자. '내 인생을 타인의 장단에 맞춰 살 필요 없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열심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브런치 덕질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