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교육 중...

나 역시도 넘어지고 깨지며 아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by 핑크뚱

현재 부모교육을 듣고 있다. 자녀의 성장 과정에 지극히 부모 중심으로 형성되는 양육 방식에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한 부모 교육에는 대략 강연 듣기, 집단 상담, 개인 상담이 있다. 이번 교육은 집단 상담으로 소수로 그룹을 만들어 서로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경청하며, 상대의 감정을 읽어 공감하는 방법이다. 이야기 나누기와 공감을 통해 서로 치유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간이다. 이를 통해 관습적으로 받아 온 경직된 양육에서 유연한 양육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는 교육을 통해 단편적인 생각의 틀을 입체적으로 변화 가능하게 하는 시간이됐다.


상담에서는 구성원의 친밀감 형성이 중요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공유할지? 말지? 간 보기(라포형성)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첫 시간의 간 보기를 지나 두 번째 시간을 맞았다. 확실히 경직된 첫 시간보다 조금은 보드라운 시간이었다. 서로의 힘든 이야기에 경청하고 공감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아마도 비슷한 고민 속의 우리는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통해 제법 치유 효과를 볼것이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힘든 시간의 경험을 이야기 했다.

"참..., 육아를 책으로만 배우신 것 같네요."란 말에 순간 내 눈동자는 사시나무 떨듯 흔들린다. 머릿속은 '뭐지? 뭐지?' 빨간불이 요란하게 울렸다.

나의 생각과는 무관하게 구성원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경험담이 너무 교과서적으로 정답을 나열하는 것 같은데요."

'아닌데, 아닌데. 나도 넘어지고 깨지며 아무는 시간을 견디며 이곳에 있는데.....' 이야기는 끝내 입 밖으로 뱉어지지 못했다. 그러면서 막 코로나가 대 유행의 시작점에 힘든 육아로 고민하던 내가 불쑥 나타났다.


공원으로 운동을 나온 오후 시간이다. 물놀이가 끝난 뒤 조그마한 물웅덩이가 몇 개 남았다. 그곳에 할아버지, 할머니와 3살쯤 된듯한 아이가 찰방찰방 물놀이하며 까르륵 웃고 있다. 어쩌다 아이 얼굴로 물이 튀면 할아버지는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 주신다. '참 이쁘다. 아이는 많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들의 첫 상담사분이 아이에게 부모사랑이 가장 좋지만 여건이 안되면 할아버지, 할머니 등 다른 가족으로부터 충분히 사랑받고 자란다면 밝은 아이로 자랄 수 있다고 한 게 생각났다. 그러니 물놀이하며 밝게 웃는 아이는 세상 어느 꽃보다 화사하구나! 싶었다.

자연스럽게 물놀이하는 아이를 지나자 나를 앞서 혼자 트랙을 돌고 있는 7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보였다. '어려도 잘 걷는구나!' 하는 기특해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지나쳐 한 바퀴를 돌아 그 자리에 왔다.

처음에는 함께 온 어른보다 늦어졌거나 앞선 거라 생각했다. 트랙을 도는 동안 그럴만한 어른이 없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아이는 얼마나 걸었는지 온몸이 땀에 젖었고, 얼굴은 발갛게 익어 공원 한구석에 홀로 서 있는 모습에 순간 울컥했다. 상상을 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았다. 쉽게 어린이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게 힘들다. 혹시, 생길 오해가 두렵다는 핑계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외면했다.

그렇게 상반된 두 아이를 보며 내 아들의 생각으로 옮겨갔다. 다정한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다. 오직 부모만이 전부로 자랐다. 특히 엄마에게만 의존했고, 하고 있다. 아빠에 대해서는 스스로 거리를 둔다. 항상 대답은 부끄러워서란다. 아이에게 부끄럽다는 의미가 무서워! 어려워!라는 걸 알고 난 뒤로는 마음이 더 무겁다. 세상에 믿을 사람은 오직 엄마인 아들이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충분히 느끼지는 못했다. 아들을 항상 힘들어하고, 버겁게 생각했다. 이런 내 마음을 고스란히 느낀 아들은 더 강한 집착을 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었다. 그러니 이런 마음의 뒤는 항상 미안함과 후회로 스스로 더 힘들게 하는 나다. 홀로 공원을 걷던 그 아이에게서 아들이 겹쳐 보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버거움에 외면하고 아파했나 보다.


그때의 나는 매일매일 다른 아이들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찾고 있었다. 세상 모든 문제가 아들로 귀결되는 시기였다. 두려웠다. 이 마음이 몇 년간 부모 교육에 쫓아 다니 게 했다. 아이 마음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교육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와 아들의 문제를 분리했다. 솔직히 이 과정도 만만치 않게 힘든 시간이었다. 지금은 이런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통합의 과정에 서 있다.

웃고 있어도 내면은 절망의 낭떠러지 앞 일지 모른다. 내 경험이 타인에게 정답이 될 수 없다. 그러니 타인의 삶의 과정을 단정적인 어투로 이야기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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