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아들

소중한 너에게 감사하며...

by 핑크뚱

“아빠를 총으로 쏴 죽일 거야!”

짙은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은 아파트 주차장이다. 고래고래 울부짖는 소리로 악다구니를 뱉어내는 아이가 있다. 두려움이라 표현하기보다 넋을 놓아 버렸다고 해야 어울릴 듯한 내가 그 옆에 어정쩡하게 서 있다. 4살이 된 아들 입에서 이렇게 어마어마한 말이 뱉어질 거란 상상은 한순간도 한 적 없다. 그 순간 내 마음에 무거운 어둠이 빠르게 내려앉았다.


아장아장 아이의 걷는 걸음이 무척이나 바쁘다. 앞서가는 엄마를 따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한 번쯤 뒤돌아 아이의 걸음걸이를 지켜보며 기다려줄 만한데 뭐가 바쁜지 잰걸음의 뒷모습이 야속을 넘어 매정하게 보인다.

아들은 유독 예민했다. 아니, 내 일방적인 시선이 그랬다. 영유아기는 세상 모두로부터 관대한 시선을 받아야 할 시기이나 아들은 그러지 못했다. 항상 예민한 엄마 시선이 부담스럽게 따라붙었다. 지금도 가장 후회하며 불쑥불쑥 가슴 밑에서 꿈틀대는 반성의 순간은 따뜻한 엄마로 품어 주는 양육자이기보다, 냉철한 이성적 판단을 앞세운 감독자 같았다.


매일 밤 편안하게 잠들지 못했다. 베갯잇은 항상 눅진한 습기와 함께였다. 매일 ‘살아내다 ‘란 표현이 맞을 정도의 생활이었다. 행복을 꿈꾸며 결혼했고, 예쁜 아이도 낳았는데 누구에게도 행복한 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잘못되고 있다는 자각이 느껴졌다. 이때부터 열심히 부모교육에 참여했다. 개인 상담, 집단 상담도 받았다. 상담사님의 “잘하고 있다” 피드백이 힘이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변하고 있었다. 자주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아들과 내 행복만 생각했다. 지금 그 아들이 10살이 되었다.


“우와, 어떤 화가 그림이에요. 혹시 엄마 화가?”

주위에서도 인정한 사람 녹이는 미소로 나를 빤히 보며 이야기한다.

“그렇게 생각해.”

“네. 정말 멋져요. 액자 하나 사 주세요. 제 방 벽에 걸어 두고 매일 보고 싶어요.”

아들의 열열한 반응에 내 어깨는 한껏 곧추선다. 어쩜 이리도 이쁜 말을 할까. 누구에게 배워 가능한 걸까.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은 무뚝뚝한 아빠는 확실히 아니다.

아들이 학교 다니면서 나도 조금씩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그중 오일파스텔 수업에서 그린 그림이다. 처음이라 낯설고 어색했으며 서툰 그림이다. 그러나 아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들은 그림 그리기를 사랑한다. 영유아기 불안했던 애착 관계에 변화를 위해 뭐든 아이와 함께했다. 그 덕에 자주 함께 그렸다. 엄마랑 그리기 놀이할 때 가장 행복하다며 웃을 때 얼굴은 밤하늘의 반짝반짝한 별들을 옮겨 놓은 듯하다.


책 읽는 게 재미있다는 아들과 하교 후 매일 도서관으로 간다. 차 안에서 학교생활 이야기도 하고, 함께 노래 부르고, 깔깔 웃는 시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영유아기 아들과 힘든 시간이 나를 좀 더 단단한 엄마로 만들었다. 함께 이야기 나누고, 들으며 지금 우리는 누구보다 더 돈독한 절친이 되었다.

언젠가 엄마 품보다 또래 친구와의 어울림이 더 자연스러워질 나이가 되면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관계가 될 것이다.

가끔 힘들고, 지칠 때 항상 옆에서 어깨 빌려줄 수 있는 엄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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