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화톳불이 사그라들듯 순간순간 여름의 끄트머리로 선선함이 묻어온다. 그렇게 아들의 뜨겁고 짧은 방학도 끝이 났다.
내 어릴 적에 비하면 지금의 아들은 숙제랄 것도 없다. 미루고 미뤄둔 숙제는 방학이 끝나는 날 밤, 아들에게 쉽게 어둠으로 숨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숙제는 양의 무게와 상관없이 마음의 무게는 그때의 나와 지금의 아들이 별반 다르지 않나 보다.
방학 과제는 일기 쓰기, 독서하고 기록장 작성하기, 운동하기 등의 필수 과제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선택 과제가 있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유독 좋아했다. 스스로 그리지 못하던 시기에는 엄마인 나에게 자주 그려주기를 부탁했다. 그 덕에 나는 보고 그리는 게 나쁘지 않은 실력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그도 잠시 아들의 손에 힘이 생기며 필압이 높아지자 부탁이 잦아들고 스스로 그리기 시작했다. 종일 그린 종이가 나의 눈으로 차곡차곡 쌓였다. 매일 그린 아들은 10살이 된 지금은 실력이 향상된 것을 스스로도 인정한다. 이번 여름방학 성적표에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난 미술 실력”이라는 문구가 나와 아들만의 착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 주는 듯해 뿌듯했다.
역시 아들은 그림 그리기를 선택했다. 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지만 일단 숙제라는 타이틀을 달면 하기 싫어지는 게 학생의 숙명인가 보다. 온몸으로 싫다는 아우라를 뿜어냈다.
내가 아들 키우는 동안 가장 부러웠던 것이 그림 그릴 때 지우개의 사용이 거의 없고 거침없는 것이다. 역시 거침없이 순식간에 스케치를 끝냈다. 그도 잠시 아들은 정지 버튼이 눌러진 듯 진척이 없다. 항상 스케치는 너무 재미있고, 색칠하기는 너무 싫다고 하던 아들이다. 그러나 재촉하면 안 된다. 아들을 키워온 9년의 세월이 나에게 그렇게 가르쳤다. 정지 버튼 앞에 나도 가만히 그림을 들여야 본다. 조금씩 서로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며 그림에만 관심을 보였다. 나의 관심에 달팽이 같은 속도로 아들도 느리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꽤 긴 시간 뒤 조금조금 색칠하는 아들이 보였다.
“아들, 색깔이 입혀지니 그림이 점점 더 멋져지고 있어!”
얼굴 가득 꽃 같은 웃음으로 아들은 나에게 조잘조잘 답한다.
“엄마, 바다는 파란색으로 칠할 거고, 그러데이션도 넣어 줄 거예요.”
“오우~ 좋은 생각인데, 엄마는 그림 그리는 너를 보면 참 부럽다!”
“뭐 가요?”
“엄마는 보고 따라 그리는 건 어찌하겠는데, 너처럼 머릿속의 상상을 그릴 자신은 없거든.”
“엄마, 그럼 저처럼 매일매일 연습해 보세요. 언젠가는 멋지게 그릴 수 있어요!”
“풋, 아…. 그래요.”
‘얼마 전까지 나한테 그려달라고 떼쓰더니 언제 이렇게 자란 거야! “
이글이글 태양의 차고 넘치는 사랑을 받아 반들반들 윤기를 잔뜩 머금고 쑥쑥 자라나는 새순처럼 내 아이도 실하게 자라고 있었구나. 엄마인 나만 더디게 알아챈다. 바짝 내 그늘 밑에 두고 있었구나. 조만간 다가올 독립의 시간을 준비하자. 멀지 않은 곧 그 시간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