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지배하는 자

손바닥 위 시간을 갖고 노는 능력자.

by 핑크뚱

주말, 손꼽아 기다리던 강연이 있어 도서관으로 향하는 중이다. 차창으로 어둡고 두꺼운 구름이 빠르게 흘러든다. 연일 강력한 태풍 힌남노의 위력에 대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아직 가시적 영향권은 아니라 다소 잠잠한 주말이다. 창 밖을 흐르는 구름들은 뽀송뽀송 하얀 솜털에 먹물을 쏟아부은 듯 흠뻑 물 먹은 짙은 먹색으로 자신들을 뽐내고 있다.

태풍 소식도 있고 주말이라 남편에게 아들의 오후를 부탁하고 싶었으나 엄마와 함께 하고 싶다는 아들과 움직인다. 도서관으로 가는 차 안, 평소 뒷좌석에서 조잘조잘 이야기 구슬이 여럿 꿰어져야 하나 이날만큼은 혼잣말 몇 마디 외에는 조용하다. 좌석에 깊숙이 허리를 묻고 게임 삼매경에 빠져있다.


아들은 초등 3학년이다. 다양한 디지털 기계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소위 미디어 세대다. 그렇다 보니 핸드폰과 컴퓨터, 태블릿 등을 가지고 놀 기회만 호시탐탐 엿본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아들의 배경지식 대부분은 책을 통해 만들어졌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대부분도 만화책과 도감을 통해 알아갔다. 그러다 보니 캐릭터 분석, 능력, 관계 구도를 더 꼼꼼히 파악했다.

아들이 한때 열광했던 애니메이션이 런닝맨이다.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동물을 의인화했다. 그중 좋아하고, 귀여워하는 캐릭터가 펭귄 포포다. 포포는 카드 마법사다. 가진 능력 중 하나인 “시간을 지배하는 자”를 외치며 카드로 시간을 되돌린다.

우리 집에도 스스로 포포만큼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인정하며 제법 시간을 손바닥 위 떡 주무르 듯하는 아들이 있다. 이번 이야기는 그 아들이 지배하는 시간에 관해 소개하려 한다.

아들의 학교는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다. 그러다 보니 등하교는 개인 차량으로 이동한다. 매일 학교 앞으로 아이를 모셔다 주고 모시러 가는 의도치 않게 극성스러운 엄마가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학생들 모습을 관찰을 하게 됐다.

하교하는 교문 주위에는 거의 매일 비슷한 상황이 목격된다. 길바닥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 주위로 몰려든 새까만 개미떼처럼 여럿 무리의 아이들은 우글우글 고개만 들이밀어 게임하는 아이 주위로 모여있다. 내 주변 엄마들은 그렇게 모여있는 아이 중 그들의 아이는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다소 꼴사납게 비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삶에 핸드폰 게임은 그만큼 피할 수 없는 문화가 되었다.

이렇게 세대 간의 문화적 차이는 부모와 아이들 사이에 갈등을 유발한다. 그렇다고 핸드폰의 완전 차단은 힘들다. 나 역시도 그 노출로부터 최대한 방어하며 최선의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할 뿐이다.


우리 부부와 아들의 합의된 핸드폰 사용시간은 토요일 70분이다. 공식적으로 허락된 시간은 게임의 실력만 늘린 게 아니다. 여럿 해 주말은 게임 능력에 물리적으로 차곡차곡 먹은 나이가 보태져 다양한 번외 능력인 꼼수도 만들었다.

토요일 평소보다 빠른 기상 시간. 이른 아침부터 아들은 생각보다 긴 시간 핸드폰 사용 계획을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준비한다. 드디어 핸드폰 사용시간이 되었다. 우선 알람을 10분 단위로 맞춘다. 대체로 시작은 유튜브로 영상 시청이다. 보고 있는 중간에 요란한 알람이 울린다. 동시에 아들은 나에게 애절한 눈빛과 애달픈 목소리로 허락을 구한다.

“엄마~ 보던 것만 다 볼게요.”

어이없는 얼굴로 아들을 빤히 보며 마지못해 답한다.

"그래."

알람이 울린 시간은 꽤 지났으나 영상은 좀처럼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허락의 시간은 야금야금 소폭 행보를 한다. 다음 순서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접속한다. 게임이라는 게 혼자 하는 플레이가 아니다 보니 시간을 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알람은 어김없이 10분이다. 유튜브를 볼 때랑 같은 방법으로 엄마의 허락은 요식행위에 그친다.

이런 황당한 요구는 차곡차곡 아들의 시간에 딴 주머니를 만들었다. 공식적인 70분의 시간은 어느새 120분까지 가락엿 늘리듯 쭉쭉 늘어났다.


나는 이날 차의 뒷좌석에서 허리를 깊숙이 묻고 침묵하는 시간을 계기로 어디까지 허용이 가능한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모습에 실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다정한 이야기가 넘치는 우리들의 공간이 핸드폰에 빼앗긴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다. 조만간 아들과 머리 맞대고 좋은 대안을 마련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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