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햇살 닮은 너에게

아들과 추억을 기록하며...

by 핑크뚱

벌써 시월의 셋째 주 토요일이다. 엄마는 주말이지만 일찍 잠에서 깼어. 점심에 너랑 함께 먹을 김밥을 준비하기 위해서지. 네가 기뻐하며 맛있게 먹을 모습이 상상되어 기분 좋아지는 아침이다. 우선 재료를 준비해볼게. 당근은 곱게 채 썰어 소량의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에 소금으로 간 해 살짝만 볶았어. 부추는 끓인 물에 5초가량 담가 건져 깨끗하게 씻고 물기 꽉 짜서 참기름, 소금, 통깨로 조물조물 맛나게 무쳤어. 햄도 얇게 채 썰어 팔팔 끓인 물을 부어 불량 엄마의 죄책감 같은 식품첨가제를 제거하고 노릇노릇하게 볶아 준비했어. 특히 어묵은 신경을 써야 해. 네가 싫어하니 더 정교하게 2mm 정도의 얇기로 채 썰어 우엉조림이라는 엄마의 하얀 거짓말이 통하게 간장으로 짭조름하게 조린다. 얼추 재료 준비가 된 것 같네. 그럼 재료보다 더 중요한 밥을 준비하자. 미리 올려 둔 가스 불 위 밥솥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은은한 탄내가 코를 노크한다. 얼른 가스 불을 꺼야 해. 이때가 고슬고슬한 밥이 되었다는 신호거든. 그럼 김밥 만들기 준비는 끝난 거 같네. 다른 엄마들은 골고루 먹지 않아 다양한 재료를 듬뿍 넣을 수 있어 김밥을 싼다고 하던데, 엄마는 뭐라 해도 네 입맛이 중요해. 네가 싫어하는 음식은 되도록 뺐어. 그래도 맛을 위해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살짝 넣어 마법 같은 둔갑술을 사용했어. 이제 정말 김밥을 싸 볼게. 갓 지은 하얀 쌀밥은 참기름과 통깨 듬뿍 넣고 소금으로 간했어. 한 주먹 가득 떠 김 위로 올려 고르게 펴. 채 썰어 볶은 당근은 당연하게 제일 먼저 밥 위에 가득 올려 붉은 융단으로 깔았어. 나머지 재료인 부추 나물, 햄 볶음, 어묵조림도 차례차례 올렸으니 동글동글 말아주면 완성이야. 이렇게 여러 개를 말았어. 김밥은 도마 위에서 옆구리 터지지 않게 조심조심 적당한 크기로 썰어. 김밥의 단면이 보이게 접시에 이쁘게 담아 먼저 너에게 건넨다. 그러면 너는 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두 눈 가득 반짝반짝함을 빛내며 ‘예뻐요’라고 해. 그리고 맛있다고 소문난 가게의 김밥도 좋아하지 않던 네가 엄마의 김밥은 인생 김밥이라며 엄지 척을 엄마 마음 위로 살포시 올려 주는 다정함을 보인다. 그럴 때면 엄마의 마음으로 행복이라는 간이 듬뿍 스미는 그것 같아. 이렇게 아침은 김밥으로 든든하고 기분 좋게 먹고, 점심 도시락도 쌌어. 이제 네 수업이 있는 도서관으로 출발이다.


이날 도서관으로 향하는 우리의 놀이터 같은 자동차 안은 흥분으로 소란스러웠잖아. 너와 내가 쏟아내는 말들은 불꽃보다 더 화려한 꽃이 되어 팡팡 터져 자동차 안은 금세 축제 현장이 되었지. 달리는 차 창으로 보이는 깨끗하고 맑은 하늘과 뽀얀 얼굴의 새색시가 부끄러워하듯 알록달록 물든 산을 보고서 말이야. 너는 빨간색 신호에 자동차가 멈추면 창문을 내려 핸드폰으로 풍경을 담는다고 정신없었지. 파란 바탕에 하양 물감을 흩뿌린 듯 다양한 모양의 구름이 신기했고, 하얀 물감에 자연스럽게 그러데이션이 표현된 듯한 파란 하늘은 황홀경에 빠지기에 충분했어. 그 순간 너와 나의 감성 배터리는 백 프로로 충전되는 충만한 시간을 달리는 기분이었어. 이날 운전하며 든 마음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너와 함께하는 모든 여정에 기쁨과 신기한 일들이 가득가득 따라오니 말이야. 참 감사해지는 순간이었어.


너는 뭐든 새롭게 배우는 걸 싫어하잖아. 엄마는 괜찮은 척은 하지만 시간이 너를 초등학생으로 만들고부터는 조금씩 조바심에 가속도가 붙는 것 같아. 그러다 덜컥 너와 의논 없이 엄마 마음보다 손가락이 먼저 도서관 수업 신청 버튼을 누르고 있더라. 그렇게 신청한 수업에 생각보다 강한 너의 거부 의사에 당황스러웠어. 급기야 엄마는 몇 날 며칠 “한 번만!”을 노래처럼 읊었잖아. 그런 내가 조금은 안쓰러웠을까? 아니면 동의를 구하는 듯 협박으로 느껴서일까? 솔직히 후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드디어 받아낸 너의 승낙에 엄마는 정말 기뻤어. 이렇게 한 번이라도 수업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세상의 근심, 걱정은 흩어져 사라지는 연기가 되더라. 그렇게 너의 한 번은 2년이라는 시간까지 꼬리물기를 하고 있잖아. 그래서 더 고맙다. 얼마 전 엄마가 한 질문에 너는 허락 없이 내 마음대로 신청한 수업에 화가 많이 났었다고 답했잖아. 순간 심장으로 걱정이 예고 없이 찾아왔어. 하지만 곧바로 따라온 선생님이 재미있어 화가 풀렸다는 너의 대답에 안도했어. 그러나 너와 나의 관계에 방향점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어. 엄마는 뭐든 ‘다 너를 위한 행동이야!’라는 정당화를 만들어 너를 억지로 그 안으로 끌어 오려고만 했나 하는 반성이 되더라고. 엄마는 뭐든 네 위주로, 네가 원하는 대로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나 스스로 방어하기 위한 핑계일 수 있었겠다 싶었어.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수업에 참여하는 걸 좋아하고 재미있어해 함께 다니는 주말 도서관 나들이는 엄마에게도 큰 산소통 하나 선물 받은 기분이야.


엄마는 너와 계절의 변화를 함께 느끼고, 서로의 소소한 이야기를 깔깔 웃으며 나누는 자동차 안에서의 시간이 포근하고 수다스러워 좋아. 이런 내 마음을 너에게 이야기하면 너는 어김없이 운전하는 엄마 품으로 살포시 몸을 기울이잖아. 그러면 엄마는 너의 반들반들 폭신한 볼살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며 귀엽다고 하지. 너는 또 그게 좋아 더 “엄마~엄마~”하며 머리를 들이민다. 그러다 너는 자연스럽게 내 뱃살을 만지작만지작하며 보들보들 폭신한 아이클레이 같다며 좋아하지. 참 웃기게도 포동포동한 엄마 뱃살이 너무 좋다면서도 뚱뚱한 엄마는 부끄럽다는 너를 볼 때면 당황스러운 게 사실이야. 그래도 뭐 너의 마음이니 존중할게.


눈부신 가을 햇살 닮은 너의 깨끗한 얼굴은 엄마 마음도 뽀송뽀송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앞으로도 우리 서로의 마음에 습기 같은 오해가 생기지 않게 이야기하고 지지하며 응원하자. 귀엽고 귀한 네가 엄마와 아빠 아들로 찾아와 마음 부자로 만들어줘 감사하고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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