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곳곳에 조용히 가라앉은 주말의 먼지를 오전 내 벗겨낸 월요일이었다. 청소 후 아들과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동네 작은 도서관을 찾았다. 중년의 여성 두 분이 휴가 중인 사서님을 대신한다고 했다. 서툴러서 미안하다는 인사도 먼저 건네셨다. 처음은 누구에게 다 서툰 법이니 대수롭지 않게 고갯짓만 까닥하고 돌아서 아들과 나는 각자의 읽을거리를 골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잠시 후 소란스럽다. 자원봉사 중이라는 두 중년 여성의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용자가 우리 둘 뿐이어서 그랬을까 웃음소리도 호탕했고 고민 이야기도 끊이지 않았다. 이십여 분을 앉아 버티다 아들에게 시끄러워 도저히 책을 읽을 수 없다며 집으로 가자고 했다.
“엄마, 그냥 눈으로 담아요. 저처럼요.”
작은 소리로 나에게 이런다. 어이없다.
“너는 만화책이지만 엄마는 눈 대신 머리에 담아야 하는 책이거든.”
“킥킥킥, 그렇네요. 그럼 천천히 담아 보세요.”
아들과 이야기에 얼마 전 도서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백색과 흑색의 건반이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깊은 울림이 심연을 유영하듯 웅장했고, 그러다 수면으로 올라 숨 고르기 하듯 잔잔해졌다. 두 명이 함께한 연탄 연주로 건반 위 네 개의 손이 문어의 다리를 닮아 흐느적흐느적 자유롭게 건반을 활보하다 전자 악보도 눈 깜박할 사이에 넘겼다. 흰색과 검은색은 연주자들의 손가락이 닿자 알록달록 무지개가 됐고, 방긋 웃는 만개한 꽃이 됐다.
방학이 벌써 시작된 학교가 있나 보다. 평일 오전치고 도서관의 이용자가 많았다. 피아노 소리가 울리자 곳곳에 퍼져있던 사람이 피아노 주위로 모여 열기는 금세 뜨거워졌다. 도서관에서 쉽게 느끼기 힘든 흥분과 열기가 합쳐져 순식간에 뜨겁게 달궈졌다.
내 어릴 적 도서관은 가느다란 줄에 버거워 보이는 아크릴판이 ‘정숙’이란 글자를 품고 힘겹게 매달려 열어 둔 창으로 살짝 불어오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다. 근엄하고 나이 지긋한 사서 선생님은 바람에 살랑 흔들리는 표지판 정숙의 지조 없는 소리에도 조용히 하라며 제지했다. 그만큼 내 기억 속 도서관은 두렵도록 조용하고 경직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세월의 꿈틀거림에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지금의 도서관은 뻣뻣함을 과감히 벗어나고 있다. 예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어 급변하는 세대의 요구에 앞다퉈가며 발맞추고 있다. 아이를 기다리며 책을 읽는 이곳도 얼마 전에 새롭게 미래형 도서관으로 탈바꿈한 곳이다. 그만큼 도서관은 대형화됐다. 그러나 일하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부족한 사람을 대신해 무인 시스템이 늘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로봇들이 자신을 이용하라는 안내 멘트를 하며 구석구석 돌아다닌다. 이날 연주되고 있는 피아노도 한 자리를 차지해 공연이 없는 날에는 자동 연주가 되게 프로그램되어 잔잔한 음악이 책 읽기를 한층 더 풍성하게 해 준다. 그래서인지 부쩍 젊은 층의 수요가 늘었다. 그에 반해 나이 든 연령층에는 빠르고 급하게 변해, 뜸 들이기가 부족해 설익은 밥 같이 어우러지지 못하는 느낌이 있다. 나 역시 준비 없이 닥친 미래 시대의 도서관이라 몸과 마음을 각각 딴 세상으로 데려다 놓은 듯해 언짢아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세월을 붙잡아 완벽히 이해할 때까지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다시 시작할 방법은 없다. 그래서 때로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버거울 때가 잦으나 꾸역꾸역 뒤 처지지 않기 위해 쫓고 있다.
피아노 연탄 공연은 최신의 가요를 연주했다. BTS를 선율에 태워 관중의 심장으로 예리하게 꽂혔다. 공연의 장소는 작았으나 파장은 어느 공연장보다 컸다. 이용자 모두 들뜬 마음으로 숨죽이며 들었고 큰 박수로 화답해 마침내 서로가 연결되는 힘을 느껴졌다. 나도 쫄깃쫄깃, 두근두근 심장의 변화를 느끼며 공연을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난데없는 소란이 흥겨운 공연을 싹둑 가위질로 사람들의 눈을 흩어지게 했다.
머리 희끗희끗한 노년기에 접어든 어르신이다. 아직 과거의 조용했던 도서관에서 머물러 계신, 나에게도 익숙한 분이었다. 벌써 여러 번 큰 소리로 불만을 제기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이분의 불만으로 로봇의 안내 멘트도 조용히 사라졌고, 자동 연주되던 피아노도 멈췄다. 그러니 이날의 공연도 거슬렸을 테다. 경쾌하고 신나는 피아노 연주도 그냥 독서에 방해되는 소음일 테다. 사서님들이 급하게 진정시키려 공연장에서 최대한 멀리 모시고 가 이해시키는 듯했다. 그러나 이미 끊어진 열기는 다시 이어 붙여도 뭔가 뜨뜻미지근했다. 이렇게 그날의 공연은 아쉽고 안타까운 듯 내 기억에 남았다.
아들의 '눈으로 담으세요'와 불만 하나하나를 바로바로 꺼내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던 어르신의 모습에서 과연 어른이란 어떤 얼굴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무작정 세월에 몸을 싫고 흘러가는 시간을 더하기로만 보태진 나이가 어른을 만드는 것일까? 아닌 것 같다.
내가 어릴 적 상상한 어른은 뭐든 다 알 것 같고, 잘 참을 것 같았으며, 이해도 어린 나보다 1000배 정도 잘하는 멋진 모습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보니 어른이 된다는 건 생각만큼 멋지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어떨 때는 떼쟁이 어린아이 같기도 하고, 이해심은 가뭄에 마른 땅바닥 같이 버석버석하기도 했다. 지금의 나 역시 조금의 소란스러움도 견디지 못하는 몸만 큰 어른이 된 것 같아 씁쓸해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