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나를 담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핑크뚱 Mar 08. 2024

힘을 가진 자 누구인가!

알았으니 변화하면 된다.

착각이었다. 완전히 나 혼자만의 착각.


가스불위에 냄비를 올려 밥을 짓고, 미역국을 끓였다. 다음으로 냉장고에 있는 밑반찬 몇 가지를 나눔 접시에 담았다. 오전 7시가 되어간다. 아들의 방문을 열어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살짝 열었다.  며칠째 내린 비 뒤 이날 아침의 창 틈으로 보이는 하늘은 하얀 구름 속에 파란색이 간간이 보이는 꽤 괜찮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도 오후에는 잔뜩 흐려져 우중충해져  마치 지금내 마음 같았다.


드디어 아들이 개학을 했다. 길고도 긴 겨울방학을 끝내며 아들은 대놓고 서운해했고 나는 내심 기뻐했다.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긴장감이 고조되는 아들이라 어김없이 학교 가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하지만 4년을 지켜보며 이도 잠시 곧 학급에 적응하고 아이들과 선생님을 사랑할 거란 믿음이 있어 덜 걱정됐다.


개학 첫날부터 흐릿한 날씨라 조금 섭섭했지만, 하교하는 아들 얼굴에 밝은 미소가 섭섭했던 마음을 깨끗하게 씻겨줬다. 그렇게 등교 사흘째가 됐다. 하교하는 아들을 위해 미리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 내밀었더니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받아 들어 맛있게 먹으며 이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조잘조잘했다.


개학 첫날 어김없이 콜렉터콜로 전화가 걸려왔었다. 대뜸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 중 어떤 것부터 듣고 싶은지 먼저 물었고 나쁜 소식이 4학년 때 아들을 괴롭혔던 아이와 같은 반이 된 거라 했다. 이날도 학교 생활에 힘든 점을 써내라는 설문에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아들의  이야기를 들자니 안일했던 나를 자책했다. 4학년 때 담임선생님에게 그 아이의 괴롭힘으로 힘들어하는 아들에 대한 상담을 여러 차례 진행해 당연히 다른 반이 될 거란 희망 회로를 돌렸나 보다. 하지만 내 마음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분리시켜 달라는 요구가 없어 같은 반으로 배정이 됐다. 그래서 나에게 화가 났고 한심하게 느껴졌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광고 카피처럼 당연히 내 마음을 알 거란 착각이 불러온 사태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이 예전 같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제 제법 학교 생활에 요령이 생겼다 믿기 때문이다. 다음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엄마, 학교에서 고민을 써내라고 해서 자주 싸우는 엄마, 아빠가 걱정이라고 적었어요.


아들은 자신이 현재하고 있는 고민을 적어내라는 설문에 '우리 가족'이라고 썼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엄마와 아빠가 자주 다퉈 언제 이혼하게 될지 두렵다고 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아찔했다. 정신을 차리고 엄마랑 아빠가 많이 싸우는 것 같은지 다시 물었다. 그랬더니 엄마 목소리가 크니 싸우는 것 맞지 않냐며 반문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목소리가 커 항상 주변으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수다 떨기를 좋아했고 내 감정이 고조되면 함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솔직히 애초에 수더분한 남편과는 싸움이 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내 감정에 취해 목소리 톤을 높이는 내가 존재할 뿐이다. 나는 언제나 우리 집에서 힘을 가진 사람은 남편과 아들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내가 아무리 마음 깊이 그렇다고 생각해도 나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 감정대로 마구잡이로 휘두르고 있었던 거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늘 피해자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렇게 느끼고 있으니 당연히 목소리라도 높여야 겨우 이야기라도 들어줄 거라고 믿었다. 그뿐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걱정하는 아들의 같은 반 친구보다 오히려 내가 문제라는 걸 알겠. 소란한 가정에서 매일 불안의 마음이 자라기까지 여린 아들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알 것도 같다. 그런 아들이 자신과는 사뭇 다른 많은 아이들과 함께 부대끼며 생활해야 하는 학교가 안전하다 느끼기도 힘들었을 테다.


그동안 나만큼 아들을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은 없다 믿었다. 그러니 오늘 아들의 말이 이렇게나 때리는 아픔으로 다가왔나 보다. 그나마 다행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달라지면 된다. 노력하면 된다. 다시 가정에서 곁에서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요리가 즐거웠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