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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나라의개짱이 Apr 07. 2024

네가 지금 힘든 건, 삶의 전환점이기 때문이다



 사는 건 참 쉽지 않다. 더 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삶의 전환점은 찾아온다. 문제는 그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알 수가 없다는 거다. 심지어는 내 인생을 바꿔줄 기회라는 걸 당시엔 결코 알아챌 수 없다는 거다. 헤밍웨이는 말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교차로에는 신호등이 없다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내 경우 교차로는 군대 안의 작은 도서관이었다. 거기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범선이 방향을 바꾸듯 내 삶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 내리는 내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달까.




 사실 군대란 곳은 아직도 생각하면 몸서리처질만큼 끔찍한 곳이었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허락을 받아야 했고, 지금은 흔하디 흔한 치킨이나 맥주가 그리도 눈물나게 먹고팠다. 일찍 자면 일찍 잔다고, 늦게 자면 늦게 잔다고, 말이 많으며 많다고, 적으면 적다고 혼이 났다. 보고싶은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는 것도 힘들었다. 지금은 부모님께 전화 한 번 드리는 것도 숙제처럼 하면서 그땐 그렇게 가슴 절절한 효자가 따로 없었다. 처참히 실패했던 짝사랑들은 애틋한 드라마로 미화됐다.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참을 수 없을만큼 그리워지던 순간이었다. 심지어 휴가를 나가면 지하철 타기같은 하찮은 일상조차도 못견디게 즐거웠을 정도니 말이다.


 그럼에도 만약 내가 20대 초반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또 만약 내게 입대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진다면, 나는 손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입대 신청서에 기어이 서명을 할 것 같다. 지금 다시 생각하기에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기 떄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군대 자체가 아니라, 거기서 작디 작은 도서관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취사병이었다. 매일 600명의 세끼를 책임졌다. 여러 명의 끼니를 책임진다는 건 참 지난한 일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일이 다가 아니었다. 요리 뿐만 아니라 식자재를 나르는 일이나 전처리, 청소, 음식물 버리기 등까지 일이 끊이질 않았다. 대신 몸이 고되지만 일을 빨리 끝내고 나면 내게 남는 시간이 많았다. 

 매일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밥을 안쳤다. 혈기왕성한 장병들에게 점심을 먹이고 나면 오전조인 나의 일은 끝이었다. 이후 뒤에 남는 시간은 모두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었다. 남들처럼 종일 뻗어 자거나, 하릴 없이 TV 채널을 돌려대며 낄낄거리고 시간을 죽이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어디에 쓰일지도 알 수 없는 자격증을 따겠답시고 가뜩이나 지친 몸을 더 혹사시키기도 싫었다.


 일단 책이나 읽자 싶었다. 책은 좋은 거니까, 책을 많이 읽으면 좋다니까, 뭐라도 남는다니까. 그렇게 시작했다. 부대 내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부대가 상당히 넓었기 때문에 그곳까지 가려면 내 근무지겸 숙소였던 식당 앞에서 버스를 타야만 했다. 먼 거리였지만 일주일에 한 번 책을 빌리러 가는 그 길이 고된 일상의 낙이 된 건 금방이었다. 쉴 때도, 심심할 때도 책을 읽었다. 재미삼아 내가 몇 권을 읽는지 헤아려 볼 심산으로 읽은 책의 개수와 내용들을 기록하는 일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곧 읽을 책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작았기 때문에 보관 중인 장서가 많지 않았던 탓도 있고, 내가 원래부터 흥미위주의 소설책이 아니면 잘 보지 않아서기도 했다. 이미 독서에 관성이 붙어 있던 참이었다. 그래, 이 참에 한 번 다른 분야의 책을 읽어보자, 어차피 여기 아니면 평생 다시는 볼 일이 없지 않을까, 뭐라도 새롭게 배우게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문학' 옆 칸으로 한 걸음 옮겼다. 그곳엔 '심리학' 코너가 있었다. 그 다음 주엔 한 걸음 걸어 '경영,경제' 칸에서 책을 골랐다. 그 다음 주엔 한 걸음 더 걸어 '철학'까지. 어느새 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라 생각했던 자연과학, 통계, 미술, 음악, 인문학 고전으로까지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눈을 뜨면 책을 들었다. 슬프거나 화가나면 책을 펼쳤다. 심심하면 책을 읽었다. 쉴 때는 책에 빠져들었다. 그야말로 먹고 자고 일하고 읽기만 했다. 당시엔 책이 내 스마트폰이었던 셈이다. 한 권, 두권, 책을 읽을 때마다 연습장에 기록했다. 몇권을 읽었는지 훈장처럼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책에서 기억해둘만하다 싶은 부분들이나 새로 알게된 훌륭한 지식들도 모두 연습장에 적었다. 책에서 크게 감명 받았던 내용이나 삶에 도움이 될 거 같다 여겼던 지식들이 돌아서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도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록했던 연습장에서 책은 전역할 때쯤 281권을 가리키고 있었다. 한 달에 거의 12권, 이삼일마다 책 한권을 뚝딱 해치운 셈이다. 비록 좁은 군대 침상 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하고 폭 넓게 세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군대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도서관이 그렇게 작지 않았다면 결코 해내지 못했을 거다. 독서말곤 할 게 없었던 환경, 아무 책이나 읽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 오히려 나를 분야를 가리지 않는 다독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다면 책을 많이 읽는 것과 내 인생이 바뀐 게 어떤 연관이 있었다는 말일까.  물론 책을 많이 읽었다고 내 삶에 뭔가 극적인 변화가 갑작스레 찾아오진 않았다. 그러나 아주 많은 것이, 점진적으로, 확실하게 바뀌었다. 


 먼저 생각하는 힘이 생겼다. 여러 분야에 걸친 지식이나 책을 읽으며 길러진 사고력은 이후 내가 하는 모든 일에 활용되었다. 일상의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의사결정을 할 때부터 사람을 대하거나 업무를 할 때 글을 쓸때도 여러 전문적인 지식들이 떠올랐다. 매순간의 의사결정과 선택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결정을 반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덕에 현재의 나는 군대에서 때의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걸 이뤄냈다.   


다음으로 마음에 단단한 근력이 생겼다. 그전까지 나는 쉽게 우울했고, 자주 외로웠고, 타인의 말과 행동에 쉽게 흔들렸다.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도 떨어졌다. 그러나 숱하게읽었던 철학책, 심리학책, 고전 문학과 같은 것들은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 지를 알려줬다. 외부의 세계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다.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건 우리의 마음 뿐이다. 내 마음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자유로워지는 것, 좀 더 평온하고 행복해진다는 거다.  

 결국 인간의 모든 행동의 목적이 본질적으로는 나의 삶을 유지하고 행복하게 하기 위함이라면 인생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능력이 뭐가 더 있을까. 이런 능력을 기를 수 있게 해주는 건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 뿐이다.책을 읽기 전과 후의 나를 비교하면 지금의 내가 훨씬 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더 자주 행복하다.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는 용기와 유연한 사고방식도 가지게 됐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전혀 관심도 지식도 없는 분야의 책을 끝까지 완독해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난 그런 일을 수없이 반복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길 주저하는 내 태도를 많이 버리게 됐다. 또 세상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도 많은 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런 유연함은 사람을 대하는데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는데도 큰 도움이 됐다. 


마지막으로 그 무엇보다도 가장 강력한 무기인 '독서하는 습관'을 얻었다. 책은 너무 흔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간과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책을 쓰는 사람들은 대개 특정 분야에서 큰 성과를 달성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평생에 걸쳐 연구한 지식을, 혹은 긴 시간동안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체득한 것을 정제된 언어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정리한 게 책이다. 즉 좋은 책을 읽는다는 건, 위대한 이들의 정수에 다가간다는 것, 스스로를 위대함의 길 위로 올려놓는다는 것과 같다. 




괴로웠던 군대였다.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던 것이 독서 밖에 없던 시간이었다. 심지어 읽을 수 있는 책조차 많이 없던 장소였다. 덕분에 내가 그렇게 클 수 있었다. 정말 선물 같던 순간들이 아닌가. 삶의 전환점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곳에서 찾아온다. 이제 나는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거나, 어렵고 힘들 때, 제한된 상황에서 견뎌내야만 할 때, 스스로를 다독이며 늘 이렇게 말한다. "오히려 좋아. 평소에 못하던 걸 해 볼 수 있겠어. 자, 이걸 어떻게 활용하지?"

그래서 오프라윈프리의 말도 참 와닿는다.

"지금 이 상황이 내게 가르치려 하는 것이 무엇일까?"
 

무료하다면, 고통스럽다면, 한 번만 주위를 둘러보자. 이 순간이 내 삶에 어떤 선물을 줄 수 있을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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