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인간

by fingerfree

심호흡을 한다. 뭉친 얼굴 근육을 푼 후, 눈은 가능한 해사하게, 마스크에 감춰진 입꼬리일 망정 도레'미'로 끌어올려 사람 좋은 인상을 가장한다. 가슴을 들어 어깨를 편 후 살짝 턱을 넣고 시선을 정면에 둔다. 자칫 부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는 손동작과 걸음걸이를 점검하고 손잡이를 돌린다.


들어서는 순간, 빠르게 주위를 훑는다. 방적 돌기의 실샘에서 실을 뽑아내는 거미처럼 '심'샘으로부터 촘촘히 얽은 그물로 관계의 망을 이은 후 앉을자리를 물색한다. 먼저 온 점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사고와 감정의 소모가 최소화된 가장 보통의 화제로 언어를 섞는다.


잰걸음으로 매끄러운 세로줄과 끈적이는 가로줄을 수시로 왕복하며 쾌활한 말투와 적당한 스킨십, 웃음과 호응으로 사교적 먹잇감을 포획한다. 줄을 치는 일은 상당한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만, 한정된 인원과 공간 속에서 6시간을 버텨야 하는 일정이므로 '나'를 무안하게 하는 노골적인 시선을 피해 '우리'와 '무리' 완성했다는 것에 안도한다.


일의 진행이 더딜수록 무너지는 긴장과 무뎌지는 줄의 감각. 간신히 서로의 망에 매달린 채 또는 한쪽 구석에서 새로운 타깃을 주시하며 웅크려있다.


마침내 약속한 시간에 종착하고 목적이 소멸하는 순간의 파동이 줄끝의 포식자들에게 전해질 때, 견고하다 믿었던 '망'은 쉬이 풀어져버리고 각자에게 소화되지 못하고 점으로 돌아간 이들은 급한 인사도 없이 황망히 자리를 뜬다.


엘리베이터 안의 밀착은 초점 없는 눈으로 무마하고 바퀴 달린 고치에 안착해서야 헐거워진 신경, 느슨한 호흡, 여과 없는 동작으로 여분의 실을 짜낸 후 가장 프라이빗한 표정으로 다음을 기약하는 그물을 친다.


"오늘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덕분에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