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남짓한 타지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퇴근 후면 반복되던 자잘한 짐 정리와 생활의 쓸모들을 갈무리하던 날, 이상하게도 격한 허기가 몰려왔다. 몹시, 배가 아플 지경으로 배가 고팠다.
무얼 먹을까 궁리하며 배달앱을 한참 뒤적거려 보았지만 먹음직스럽게 내보인 수많은 음식들과 연중 고개를 끄덕이는 엄지의 긍정에도 나는 오래 내 맛을 찾지 못했다.
동, 동, 동동, 동동동, 동동동동... 초조해져.
포기하고 타협하려던 찰나의 아!이가 소환한 건-
여름이면 더운 대로 땀을 삐질거리며, 겨울이면 추운 대로 언 뺨을 문지르며 찾아가던, 학창 시절 떡볶이의 맛이었다.
삼천 원 같은 떡볶이 한 접시 이천 원.
튀김 4개 이천 원.
매콤한 고추장에 간한 길쭉하고 말랑말랑한 밀떡, 가끔 씹히는 아삭한 콩나물과 향긋한 냉이, 초록 초록한 대파 몇 쪽을 버무려 먹던 맛. 김말이나 야채튀김을 국물에 콕- 찍어먹던, 그러다 목이라도 막힐라 치면 오래 끓인 어묵 국물을 후후- 불어 넘기던 그 맛.
고등학생이던 내 눈에 시장에서 유독 얼굴이 고우셨던 젊은 아주머니는, 교복 입은 학생들을 반기며 정량보다 듬뿍 담아주셨더랬다.
농협 앞 떡볶이는 시장으로 통하는 네 개의 길 중 버스가 서는 신한은행 옆 길목에서 제일 가까웠다. 배스킨라빈스까지 간 후, 왼쪽으로 돌아 곧장 걷다가, 다시 왼쪽 농협 건물 앞에 천막을 치고 있던 곳.
그 길을 더듬어 간다. 아직 거기 있을까. 사회복을 입은 내가 땀을 삐질거리며 여전한 허기를 부여잡고 익숙한 맛을 찾으러 간다.
보자마자 알았다. 아주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서 떡볶이를 만들고 튀김을 튀기고 어묵을 끓이고 계셨다. 새롭고 낡은 것은 천 원씩 오른 가격표와 천막 한편에 붙은 시간을 박제한 사진들 뿐.
한쪽 구석에 앉아 내가 찾던 맛들을 천천히 씹고, 핥고, 삼키며 알은 채 없는 얼굴로 살짝살짝 아주머니를 올려보았다.
간간히 오가는 단골손님들과 말을 나누고, 옆 가게에서 나눠주는 음식에 가진 것으로 답할 때, 작은 실랑이와 흥정의 순간에도 눈가의 주름이 정겹게 휘었다.
15분이 채 걸리지 않던 식사가 20분이 걸렸다.
아주머니는 아실까.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당신의 반복적인 매일 덕분에 누군가는 채워지지 않던 허기를 달랬고, 심심한 위로를 받았다는 걸.
의자를 제자리에 채워 밀며 구겼던 몸을 편다. 든든해진 배를 쓸며 내딘 생각에 힘을 준다.
우리가, 모두의 반복적인 매일 덕분에, 위로받고 있음을 기억할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