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들은 우리와는 전혀 달라 - <사바나의 개미 언덕>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33번.

by 이태연


치누아 아체베의 <사바나의 개미 언덕>은 '황량한 초원 위에 서서 지켜보는 기록처럼 남아 있는 이야기'를 상징합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아프리카의 가상 국가인 캉안입니다. 세 남자가 국가를 위해 영국으로 가 함께 공부합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대통령, 신문사 편집장, 공보처 장관이 되죠. 각자의 위치에서 문제들이 난제되어 있는 캉안의 미래를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결국 모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 이켐 오소디의 시선 >> - 신문사 편집장입니다. 그러나 친구였던 샘 대통령의 눈에서 벗어나 편집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대학생들에게 했던 강연 때문에 누명을 쓰고 군인들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 귀하신 몸들이 서늘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에도 언제나 좋은 것들에 대한 풍성한 몫이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건 대단한 일 아니겠는가? 불쌍한 사람들은 빈약한 부스러기나마 얻어 보겠다고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마구 밀쳐 대면서 햇빛에 타 들어가고 있는데 말이다.

* 있잖아, 저들은 우리와는 전혀 달라. 저들은 당신이나 나한테는 꼭 있어야 하는 사치품들이 필요하지도 않고 또 있어도 사용할 줄 모른다니까. 그러니까 저들에게는 동물처럼 사육시키는 고통을 참아 낼 수 있는 능력들이 있어. 바로 이건 한창때에 주인이던 백인들이 흑인 전체에 대하여 했던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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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재자를 숭배하는 건 상당한 골칫거리이다. 그게 단순히 머리를 아래로 물구나무 서서 춤추는 일이라면 그다지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거라면 누구든지 연습을 통해 습득할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매일매일 시시각각 어느 게 위고 어느 게 아래인지 알 길이 없다는 점이다.

* 모순은 제대로 이해되고 세심하게 관리만 된다면 발명의 불을 지필 수 있다. 우파든 좌파든 간에 통설은 창조력의 무덤이다.

<< 크리스토퍼 오리코의 말 >> - 공보처 장관입니다. 이켐의 죽음 이후 내란 동조죄로 체포령이 떨어지자 북부 지역으로 피신하던 중, 소녀를 겁탈하려는 술취한 병사를 저지하려다 총에 맞고 맙니다.

* 우리를 갈라놓은 건 내용이 아니라 형식이에요. 절대적으로 연결 방법이 없는. 이상하지 않아요? (···)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어요. 그러니까 당신과 내가 오렌지 한 개를 놓고 다툰다면 오렌지를 반씩 나누든지, 둘 중 한 사람이 그걸 갖든지, 제 3자에게 그걸 주든지, 아니면 그걸 그냥 내버리면 문제가 해결되겠죠. 하지만 우리의 싸움이 난 오렌지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당신은 그걸 몹시 싫어하는 거라면, 그 문제를 당신은 어떻게 해결할 건가요? 당신은 언제나 오렌지를 싫어할 테고 나는 언제나 그걸 좋아할 텐데,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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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로의 말 >> - 캉안의 토착민 노인입니다.

* 사람은 모두 자기 몫이 있지요! 부시파울이라는 새는 그가 할 일이 있고 농부는 자기 일이 있는 겁니다.

* 나이가 들면서 보니 오른손에 뭔가가 생기는가 싶으면 왼손에 있던 다른 게 없어지더군요. 폭포수같이 쏟아지던 노인의 오줌 줄기가 예전과 달리 한 발 떨어진 길가의 나무줄기조차 명중시키지 못하고 여자들처럼 자기 발아래로 떨어지기도 해요. 하지만 그 대신 그는 마음의 눈에 날개가 생겨 자기 집 주변의 낯익은 풍경 너머로 멀리까지 날아갈 수 있답니다…. 그러니까 무엇 때문에 이야기가 그의 친구들 중에서 최고라고 말하는 걸까요?  (···)오로지 이야기만이 전쟁과 용사를 능가하여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전쟁의 북소리와 용감한 투사들의 위업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게 이야기 아닙니까.

* 이야기는 우리의 호위병이지요. 그게 없으면 우리는 장님이에요. 장님에게 호위병이 있나요? 없지요. 우리 또한 이야기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야기가 우리의 주인이 되어 우리를 인도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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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고 경험이 없을 때에는 우리 모두 이 땅의 이야기가 쉽고 우리들 중 누구라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야기 조각들이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이야기는 멍청한 수목 관리인이 나무의 몸통으로 착각하고는 코담배라도 피울 요량으로 자리 잡고 앉은 거대한 보아 뱀의 가운데 부분과도 같아요…. 그래요. 무서운 눈과 활기찬 혀를 놀려 우리는 자그마한 이야기로 빠져듭니다.

* 부자가 아프면 거지가 그를 찾아가 유감이라고 말하겠지요. 그렇지만 거지가 아프면 그는 낫기를 기다렸다가 부자를 찾아가 그동안 아팠다고 말합니다.

* 옛날에 오랜 기간 거북이를 잡으려고 노력하던 표범이 마침내 한적한 길에서 거북이와 우연히 마추졌지요. … 거북이가 날 죽이기 전에 한 가지 청을 들어주실래요? 하고 애원했답니다. …마음을 가다듬게 몇 분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거북이가 말했어요. …표범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거북이는 …미친 듯이 두 손 두 발로 땅을 긁어 대며 모래를 사방으로 뿌려 댔답니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거지? 당황한 표범이 물었죠. 거북이는 내가 죽은 후라도 여길 지나가는 누군가가 '그래. 어떤 친구가 여기서 상대편과 격렬한 투쟁을 벌였구나.' 라고 말해 주기를 바라서요 하고 답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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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트리스의 시선 >> - 크리스의 연인이며 이켐과도 친구사이입니다. '예언자'란 별명처럼 통찰력이 뛰어나죠. 죽은 이켐의 여자친구인 엘레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돌봐줍니다. 그리고 그의 아이에게 캉안의 살아있는 미래가 담긴 '빛나는 이켐의 길'이라는 희망에 찬 이름을 지어줍니다.

* 이 새들이 오늘 아침 새롭게 나타난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그들은 여기서 항상 잠잤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 어째서 예전엔 새들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강해지는 것뿐이에요. 그래야 정말로 싸워야 할 때 제대로 싸울 수 있잖아요.

* 쓰라린 역사를 진정시키려면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해야 할까요?

* 생각은 사람을 벗어나서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 크리스가 우리에게 전하려던 말은 마지막 녹색이었어요. 그 말은 우리끼리 하던 농담인데 마지막 녹색 병(The last green bottle)이라는 말이었죠. 그건 끔찍하게 신랄한 농담이었어요. (···) 크리스는 비로소 그 신랄한 농담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 시작한 거였어요. 담 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인 병들이 건방지게 거기서 세상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거예요. 크리스는 우리에게 정신 차리라는 메시지를 보내려던 거였어요. 어떤 소규모의 정당 위원회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로 구성되었다고 해도 이 세상은 그 위원회가 아니라 이 세상 사람들의 것이라는 것을요….

<페이지 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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