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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May 11. 2022

버버리 언니

 - 버버리 언니는 버버리를 입어 본 적이 없다 -

  


  버버리 언니는 명품 버버리를 입어 본 적이 없다. 말을 못해서 버버리(벙어리)가 된 은이라는 고향 언니이다. 언니는 평생 하나의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어~어~”만을 말하며 살았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네 살 무렵 잠을 안자고 보채며 우는 언니의 등을 할머니가 시끄럽다며 후려쳤고, 컥 소리와 함께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하나뿐인 손녀딸 치료를 위해 집 한 채 값을 썼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죄책감에 시달리다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은이 언니는 어린 시절 나의 유일한 친구였다. 유난히 말이 없었던 나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질 못했다. 나보다 최소 열 살은 위였을 언니는 말하는 건 거의 알아들었지만, 학교를 다녀보지 않아 글은 몰랐다. 햇살 따스한 담벼락에 앉아 소꿉놀이를 할 때도 우린 서로 조용했다. 흙바닥에 나뭇가지로 ‘은이’라고 이름을 쓰고, 언니라고 가리키면 “어~ 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 아~ 해봐! 이렇게~” 입을 크게 벌리면 언니는 멋쩍은 미소만 지었다. 그래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한 단어로, 나는 수많은 단어로! 가끔 언니가 나를 업고 둑길에 서서 지는 해를 보곤 했는데, 언니의 등은 유난히 넓고 포근했다.


   동네사람들은 은이 언니를 버버리라고 불렀다. 170cm에 가까울 정도로 키가 컸던 언니는 둥그런 큰 눈에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살집이 두둑했다. 그래서인지 장정들이 하는 농사일도 척척 해냈다. 언니가 논, 밭으로 일 나가는 게 잦아지면서, 나도 또래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밭일을 하거나, 동네허드렛일을 하는 언니를 보면, 나만 학교에 다니는 게 괜히 미안했다. 한편으론 친구들 앞에서 언니가 아는 척 할까 괜히 긴장되기도 했다. 그런 날 밤엔 미안한 마음에 꼭 언니네 집으로 가 그림을 그리며 놀다 왔다. 내가 또래들과 어울리며 청산유수가 되어가는 동안, 언니의 언어세계는“어~ 어~”에서 그대로 정체되었다.   

   



같이 가자~

  


   고향을 떠나게 된 후 가끔 친구모임 때나 은이 언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단둘이 살던 엄마가 많이 노쇠해서 언니 혼자 동네일을 다닌다거나, 옆 동네 남자가 언니를 건드려 임신을 시켰는데 밭일을 하다 유산되었다거나,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썰렁한 장례식장에서 영정 사진을 보며 “어~ 어~” 소리치며 울었다는, 그리고 언니가 동네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려 빈 집만 남게 됐다는 마음 아픈 이야기뿐이었다. 먼 친척이 데려 갔다거나, 구청에서 장애인 시설로 보냈을 거란 소문들만 무성하게 남겨놓고 귀신처럼 떠나버렸다는 것이다.  

     

  언니를 마지막으로 본 건 2년여 전이었다. 오랜만에 시골어르신을 찾아뵈러 간 길이었다. 기차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고향 집터를 둘러보는데 “어~ 어~” 소리가 들렸다. 근처 밭쪽에서 은이 언니가 날 알아보고 달려오는 중이었다. 하얗게 센 헝클어진 커트 머리, 시커멓게 튼 얼굴, 흙이 잔뜩 묻은 풍덩한 솜바지, 보풀 일어난 갈색 스웨터가 언니를 한층 더 늙어보이게 했다. 언니는 좋아서 어쩔 줄 모르며 “어~ 어~” 외쳐댔다. 그리고 까맣게 흙 때가 낀 손으로 나를 덥석 안았다. 언니의 격한 포옹이 당황스러웠지만 반갑기는 했다. 회색 재킷에 언니의 손자국이 마구 찍혔다. 거친 손으로 나를 연신 쓰다듬으며 환히 웃는 언니의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다.      


  초췌하게 변해버린 언니의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왔다.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집터를 가리키며 계속 “어~ 어~” 를 외쳤다. “언니~~ 다음에 올께 응? 기차 놓쳐~ 다음에 응?” 울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다급한 척 시계를 보자 언니가 “어~ 어~”하며 빨리 가라고 나를 밀었다. 그렁그렁 맺혀오는 눈물을 언니가 볼까 도망치듯 다급히 되돌아섰다. 골목 끝에서 돌아보니 언니는 그대로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석양을 등지고 선 언니의 모습이 한겨울 들판에 서있는 고목처럼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주저앉아 한참을 소리죽여 울었다. 그 후로 다음에 간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그게 내가 본 은이 언니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만 따라 와~



    은이 언니가 표현할 수 있는 언어는 내가 추임새 정도로만 사용하는 “어~ 어~”하나 뿐이었다. 그럴듯한 말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을 언니는 오롯이 그 한 단어만으로, 자기만의 언어에 주인으로 살아온 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언니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살았던 나는 언어의 노예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두 개의 귀보다 한 개의 입이 더 바빴던 결과였다. 인간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말의 용량이 정해져 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랬더라면 아껴가며 신중히 사용하지 않았을까?      


  문득 오감(五感)을 이용해 헬렌 켈러에게 언어를 인지시켜 줬던 앤 셜리번 같은 선생님이 언니 옆에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그때 단 5분이라도 언니와 함께 대화를 나눴었더라면! 언니의 유일한 언어인 “어~어~”란 기표(記表)에, “잘 지냈어?” “반갑다 정화야” “고향 생각나서 온 거야?”등 여러 기의(記意)들을 대입해보았더라면! 그리고 거기에 맞춰 조근 조근 대답해줬더라면! 그랬더라면 언니가 얼마나 좋아했을까? 내 유년시절의 친구 버버리 언니가 어디에서든 편안하게 나이 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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