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 사랑해! 안녕! 안녕!" -
‘벌써 21년이나 지났다고?’
뉴욕 월드 트레이드 센터 9.11추모공원 앞에서 나는 잠시 멍 해졌다. 테러로 무너져버린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자리에 지어진 추모공원은 9,11테러 10주년인 2011년 9월 11일에 개장했다. 두개의 네모난 풀(Pool)은 인명의 손실과 물리적 공백의 상징이며, 1분당 11,400리터의 양으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테러로 인해 유가족과 미국인들이 흘린 눈물의 상징이었다.
네모난 모양으로 깊게 파인 풀 안엔 물이 한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 가운데 또 다른 구멍 안으로 물줄기들이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풀 외곽 난간에 빙 둘러져 있는 비스듬한 테두리 돌판 위로 누군가의 이름들이 빽빽하게 새겨져 있었다. 당시 테러 희생자와 복구로 순직한 2,977(테러범19명 제외)명의 이름들이었다. 피부색이 각기 다른 관광객들이 다들 풀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희생자들이 토해내는 울음 같았다. 누군가 놓고 간 빨간 장미 한 송이가 늦은 오후 햇살을 받아 더 쓸쓸해보였다.
귀국 후 여행 사진을 정리 하던 중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침묵하는 주위 관광객들 눈치를 보며 급히 찍었던 유일한 사진이었다. 그 날 들었던 폭포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 했다. 사진을 확대 해 찬찬히 보았다. ADAM KEITH RUHALTER, BRIAN JOHN TERRENZI…. 몇 개의 이름이 직사각형 프레임 속에서 읽혔다. 그리고 사진 찍을 때 폼 잡느라 의미 없이 짚었던 손 위쪽으로 ROBERT MICHAEL MURACH란 이름이 유난히 뚜렷하게 보였다. 순간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왔다.
그동안 로버트 마이클이라는 사람이 지구상에 있는지조차도 모르고 살아왔었다. 그 또한 죽기 전까지 나라는 사람을 알지 못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우리가 사진 속에서 죽은 사람과 살아 숨 쉬는 자로 만나게 된 것이다. 사진 속에서 우리는 돌 판에 각인된 이름과 여행객으로 서로를 알게 된 것이다. 갑자기 그가 궁금해져 이곳저곳, 구석구석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9.11 테러 희생자명단으로 이름이 올려 져 있을 뿐 그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는 찾을 수 없었다.
2001년 9월 11일 아침, 로버트 마이클은 평소와 같이 잠에서 깨어 모닝커피를 마시고, 늘 그랬듯 월드 트레이드 센터 건물로 출근했을 것이다. 어쩌면 빌딩 110층 식당에서 생애 마지막 아침을 먹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는 못 보게 될 날이라는 걸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을까? 무슨 영화를 좋아하고, 무슨 색깔 옷을 즐겨 입었을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들은 몇 살쯤이었을까? 죽어가면서 가장 보고 싶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건물이 불에 휩싸였어! 벽으로 연기가 막 들어오고 있어.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어. 엄마 사랑해! 안녕! 안녕!” 이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죽어갔던 28살의 베로니크 바워처럼 그도 혹시 자신의 엄마와 마지막 통화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아들을 떠나보낸 엄마는 남겨진 앨범 속에서 애기였던, 학생이었던, 청년이었던 로버트의 생전 모습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을까? 로버트 마이클에 대한 수많은 궁금증과 안타까움이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사진 속에 찍힌 이름에게나마 추모의 마음을 전하는 일이 전부였다.
매년 9월11일이 되면 그날의 테러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추모의 불빛’이 공원 하늘 전역에 밝혀진다. 공원 풀(pool) 안에 물줄기도 21년이 넘는 세월동안 쉼 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지구촌 곳곳에서 크고 작은 테러들이 자행되어지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테러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어 가고,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