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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연 May 18. 2022

아버지의 돌담

- <반쪽짜리>집은 아버지의 유일한 집이었다 -

 와르르~ 쿵~ 소리에 잠에서 깼다. 꿈이었다. 꿈속에서 아버지가 무너져 내린 돌담위로 돌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쿵~ 돌들이 다시 무너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다리를 절뚝대며 계속 돌을 쌓고 또 쌓아나갔다.     

 

 여름비가 쏟아지던 밤, 오랜만에 놀러 와보니 아버지가 쓰러져 계시더라는 친구 분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 온 세상이 까맣던 새벽, 아버지의 집 둘레를 감싸고 있던 돌담이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며 나를 맞았다. 아버지는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업혀 나오면서도 문설주를 움켜쥐었다. 집을 떠나지 않으려. 돌담 집을 떠나지 않으려….      


  돌담 집은 마을 한가운데 있는 다 쓰러져가는 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른 배꼽높이의 돌담에 서서 혀를 끌끌 차며 동정을 한가득 담아 우리 집을 들여다보곤 했다. 할머니와 홀아비가 삼남매를 키우는 딱한 집이기 때문이었다. 난 불쌍한 집보다 ‘돌담 집’으로 불리는 게 훨씬 더 좋았다. 마을에서 제일 가난한 집이 바로 우리 집, ‘돌담 집’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찢어지게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늦둥이였던 난 한참 후에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학교선생님이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난 적잖이 놀랐다. 내가 자라면서 본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절며 남의 집 농사일을 돕거나, 노동일을 하거나, 줄담배를 피워대며 돈 걱정을 하는 모습이 전부였었다. 그런 절름발이 시골 잡부인 아버지가 학교 선생님이었다니. 그러고 보니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며 책을 얻어다 주거나, 이웃집 오빠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는 모습들을 본 것 같기도 했다. 


  6.25 당시 큰 아버지가 사상적인 문제로 월북하게 되면서 아버진 교직을 잃었다. 그 후 신문사에서도 연좌제 때문에 해고당하고 말았다.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아버지는 다 쓰러져가는 충청도 시골 집 곁방에 터를 잡았다. 경험 없는 노동일에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아버지는 늘 ‘가난’했다. 다행히 맘 좋은 집주인 덕분에 허름한 문간방에서 계속 살 수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갖게 된 건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급히 시내로 이사하게 된 주인집 배려와, 친척들의 도움, 농협대출금 덕분이었다. 피사의 사탑처럼 금방 쓰러질 듯 낡았고, 문중 땅이라 1년에 한번 씩 땅 임대료를 계산해야 하는 <반쪽짜리>집이었지만, 생애 첫 번째 아버지의 집이었다.     


  집주인이 된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담을 쌓는 일이었다. 원래 있던 흙담이 허물어져 길과 마당의 구분이 없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노동일 틈틈이 돌을 구해오느라 담장은 쉽게 완성되질 않았다. 동네사람들이 흙을 개어서 중간 중간 돌을 박아 넣거나, 시멘트를 채워주면 빠르고 튼튼하다고 조언했지만, 아버진 오로지 돌만을 고집했다. 200여 평이나 되는 집 전체를 돌담으로 쌓아가는 덴 꽤 많은 돌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도 아버진 서두르지 않고, 일이 없는 날이면 어김없이 담벼락에 앉아 돌을 쌓아갔다. 


  그러는 동안 동네 아이들이 수시로 돌담을 부수어 버렸고, 눈이 녹는 초봄쯤엔 돌담이 더 자주 무너져 내렸다. 와르르~~ 쿵~ 말 그대로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흙을 개어서 조금이라도 넣어주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진 않을 텐데 아버진 순수한 돌담만을 계속 고집했다. 난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하얗게 센 머리로 절뚝대며 돌을 쌓는 모습이 미련스러워보였고 창피했다. 가끔 괜히 심통이 나서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일부러 돌담을 밀어뜨려버렸다. 그럴 때마다 아버진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늦둥이 딸을 보기만 할뿐 혼내진 않았다. 가끔씩 나는 돌담을 부쉈고, 아버진 다시 쌓았다.      


  시간과 함께 돌담이 완성되자 낡은 집도 제법 그럴 듯 해 보였다. 초록 이끼 낀 돌담위로 감꽃이 떨어져 내렸고, 돌담 아래로 채송화가 옹기종기 피었으며, 나팔꽃이 돌담을 타고 감나무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대출금상환압박은 아버지를 계속 따라다녔다. 절뚝대는 다리로 날품팔이를 하며 꿋꿋이 집을 지켜갔지만, 버는 돈은 한계가 있었다. 결국 빨강색 법원 압류딱지가 붙던 날 밤이었다. 와르르~쿵~ 돌 무너지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무너져 쌓여있는 돌무더기 앞에 아버지가 서 있었다. 돌담도, 감나무도, 아버지도 달빛 아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평소엔 “아버지~” 부르며 달려 나갔을 텐데 그날만큼은 선뜻 불러지질 않았다. 멀리서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도, 개구리 울음소리도 그날따라 유난히 구슬펐다. 졸음을 쫓으려 눈을 부릅뜨고 아버질 지켜보았다. 한참동안 꼼짝 않고 있던 아버지가 돌무더기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큼직한 돌 하나를 놓더니 두 발로 단단하게 밟았다. 그런 다음 다시 한 칸 한 칸 돌을 쌓아나갔다. 돌 한 개를 들고 이렇게 놓았다, 저렇게 놓았다 정성을 다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다 나는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눈을 떠보니 돌담이 무너진 채 그대로였다. 새벽에 반쯤 쌓여가는 걸 분명히 보고 잤었는데 이상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꿈을 꾼 거였나? 아니었다. 와르르~ 쿵~소리에 잠이 깼었고, 분명 아버지였었다. 그날 오후 말쑥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선 아버진 이틀 뒤 급전을 구해 왔다. 그리고 아끼던 고서적들을 내다 팔았다. 빚이 다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빨간 딱지가 해결되던 날, 아버지는 노래를 흥얼대며 무너졌던 돌담을 다시 쌓았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수시로 무너져 내리는 돌담을 쌓고 다시 쌓는 일을 반복하며 집을, 삼남매를 지켜냈다.  


  심한 뇌졸중으로 요양병원에서 지내게 된 아버진 매일매일 집에 가야 된다고 마비되어 어눌해진 말투로 말씀하시곤 했다. 가끔 아버질 모시고 시골집을 찾을 때마다 집은 점점 더 기울어져갔고, 갖은 야채들과 꽃들이 만발하던 마당은 잡초들만 무성해져갔다. 허물어져 내린 돌담과, 지팡이 없인 한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아버지는 서로 닮아가고 있었다. 무너진 돌담들 사이로 온갖 쓰레기까지 쌓여가며 집이 점점 흉하게 변해갔다.    

  

  그러던 중 땅을 정리한단 문중의 연락을 받았고, 다시 집을 찾았을 땐 시커먼 집 대신 그림 같은 하얀색 집이 들어서 있었다. 돌담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철조망 펜스가 둘러 있었다. 차창 밖으로 그나마 남아있던 감나무를 하염없이 보던 아버지가 갑자기 차에서 내려 절뚝대며 펜스 쪽으로 갔다. 그리고 이끼 낀 작은 돌무더기에서 돌 하나를 집어 들더니 한참동안 집 쪽을 바라보았다. 몇 개월 후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가을이 되면 아버지는 사방이 꽉 막힌 납골당에서 탁 트인 집으로 가게 된다. 수목장이다. 이사를 하면 아버지가 숨 쉬는 나무주변으로 튼튼한 돌담을 만들 예정이다. 진흙을 단단하게 개어 돌을 박아 쌓은 다음, 그 사이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들이 마구 자라도록 내버려 둘 작정이다. 그리고 힘들 때면 쪼르르 달려가 작은 돌담에 걸터앉아 조잘조잘 비밀스러운 얘기들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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