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예수가 꼽추였다면 - <양철북2>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33번.

by 이태연


난쟁이 오스카는 아버지의 무덤에 북을 던져 넣으며, 성장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러자 94센티미터였던 키가 1미터 23센티까지 자라게 됩니다. 꼽추의 몸으로 석공, 누드 모델 등을 전전하다 양철북 연주가로 성공하게 되지만 결국 정신병원에 감금됩니다.



* 내가 쿠르트의 두번째 생일에 참석했더라면 아들의 귀에다 대고 <기다려라, 잠시만. 너도 곧 북을 치게 된다!>라고 속삭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 17년 전 너의 세 살 생일 이후로 네가 지켜왔던 94센티미터의 신장을 이 아이는 벌써 2 내지 4센티미터 초과해 버렸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늦지 않게 이 애를 양철북지기로 만들 때다. 이 지나치게 빠른 성장에 대해서 큰소리로 <이제 그만!> 이라고 불러 세워야 한다.







* 그의 소망은 단 하나였다. 즉, 북 치는 아버지 곁에다 북 치는 자식을 두고, 둘이서 함께 북을 두들기며 밑에서 어른들을 관찰하고, 영원히 지속하는 북치기의 왕조를 확립하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붉은빛과 흰빛으로 래커칠한 양철을 두들기는 일을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가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나에게 주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 수년 전과 마찬가지로 내 배에서 북을 벗겨내어 예수에게 시험해 보았다. (···) 자, 쳐보게, 사랑스런 예수님! (···) 주변의 모든 것이 꼼짝도 안 하고 있는 가운데 그는 왼손 오른손 차례대로, 그리고 양쪽 북채를 교차시키면서 북을 쳤다. (···) "예수, 약속과 다르잖아. 내 북을 즉시 돌려다오. 너에게는 십자가가 있으니 그것으로 되잖아!"


* 의심하는 자가 믿는 자이며, 믿지 않는 자가 가장 오래 믿는다는 말이 있듯이···.


* 나에게는 아직 이 있었다.







* 너는 결국은 자라야 한다. (···) 오스카가 목에 건 양철을 벗겼다. 그리고 이제는 <자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아니라 <자라야 한다!>라고 말하면서 관 위에다 북을 던졌다. 거기에는 이미 모래가 충분히 덮여 있어서 덜커덩 소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북채도 잇따라서 던졌다. (···) 계속해서 모래가 쏟아졌다. 내 북 위에는 모래가 불어나고 쌓이고 성장했다 ---- 그러자 나도 성장하기 시작했다. 심하게 코피가 나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 나는 북을 몸에서 끌러, 북채와 함께 마체라트의 무덤 안에다 던져버리고는 성장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 순간 귓가에서 윙 하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호도만한 크기의 자갈이 내 뒤통수를 때렸다. 내 아들인 쿠르트가 네 살반의 힘으로 던진 것이었다. (···) 나는 마체라트의 무덤 안의 내 북이 있는 데로 추락했다.


* 오스카의 키는 오늘부터 1미터 23센티미터이다. (···) 그는 말을 하게 되었고, 서툴긴 하지만 쓸 수도 있게 되었으며, 유창하게 읽을 수도 있고, 꼽추이기는 하나 다른 점에서는 꽤나 건강한 젊은이가 되어 뒤셀도르프 시립 병원을 퇴원했던 것이다.






* 모든 것들이 지난 일이 된 오늘날 나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전후의 열광이란 결국 열광에 지나지 않으며,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가 생생하고도 잔인하게 자행했던 그 모든 행위와 범죄들을 끊임없는 야옹 소리와 함께 역사로 돌려버리는 고양이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 어떠한 회의도 행복에의 욕구를 잠재울 수는 없었다. 아무런 막힘도 없이 행복해지고 싶었다.


* 어쩌면 행복은 대용품으로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행복이란 언제나 행복의 대용품이다. 행복이란 온통 주위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 새로운 행복이든 묵은 행복이든 여하튼 나는 행복했다.







* 갑자기 나의 머리에서부터 등의 혹까지 무언가가 번개같이 지나갔다. 그것은 내가 두들겨서 못쓰게 만든 낡은 북 전체에 대한 최후의 심판과도 같았다. 내가 고철 더미로 만들어버린 천 개도 넘는 양철북, 그리고 자스페 묘지에 파묻혀 있는 그 하나의 양철북, 이것들 모두가 전부 일어나서 새로이 소생하여, 완전한 부활을 축하하고 소리를 울리면서 나의 몸을 가득 채웠다.


* 오스카는 이미 결심을 굳히고 있었다. 석공 코르네프 곁에서 글자를 새기는 그의 직업뿐만 아니라, 뮤즈 울라와 함께 하는 모델업까지도 다 버리고 재즈 밴드의 드럼 치는 사나이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 나의 양철북은 금광이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다. (···) 그들은 나를 숭배하면서 나와 내 북에 치료 효과가 있음을 선언하였다. 기억력 감퇴도 물리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오스카니즘>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였으며 이것이 곧 유행어가 될 운명이었다.


* 나는 누구인가? 오스카인가 아니면 나인가? 나는 경건하지만 오스카는 산만하다. (···) 나는 차고 뜨겁고 따뜻하다.






* 지금 나는 30살이지만 나의 혹은 더 젊다. (···) 만일 예수가 꼽추였다면 그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 너는 어디에서 오는가? 너는 어디로 가는가? 너는 누구인가? 너의 이름은 무엇인가? 너는 무엇을 원하는가?


* 오늘 사람들은 나를 못박아 고정시키려고 하면서 말한다. 너는 서른이 되었다.


* 형사들이 자기 이름을 밝히고 또 그를 마체라트라고 부르자 나는 에스컬레이터 위에서 공상하던 대로 처음에는 독일어로 "나는 예수다!" 라고 말했고, 그러고 나서는 상대가 국제 경찰임을 감안하여 불어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영어로 "나는 예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오스카 마체라트로서 체포되었다.







<< 랑케스의 말 >> - 화가입니다. 벙커를 만드는 콘크리트 작업 중에도 입구에 새로운 양식의 장식을 만들어 넣고, 자신의 이름과 제목을 붙입니다.


* 저의 그림은 오늘날의 사고 방식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습니다. ···모던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저 사람들이 콘크리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동떨어져 있는 것은 모던하다고 보는 한 시기가 있었습니다. (···) 어디에서든 빠져나갈 구명은 있는 법이지요. 진정한 예술가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 이번 전쟁이 끝나면 ··· 벙커는 남아 있게 됩니다. 다른 모든 것이 망가진다 해도 벙커만은 남아 있을 테니까요. 그리하여 새 시대가 도래하는 것입니다! 여러 세기가 오겠지요. (···) 수세기가 아무 일도 없는 듯이 이 위로 왔다가는 또 지나가겠지요. 하지만 벙커는 계속 남아 있을 겁니다. 마치 저 피라밋이 이제까지 계속해서 남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고는 이후 어느 맑게 갠 날, 소위 고대 연구가란 사람이 찾아와서 혼자 생각하겠지요. 제1차 대전과 제7차 세계대전 사이의 그 당시는 정말 예술의 빈곤 시대였군. (···)그런데 이 작품에도 이름은 있겠지? (···) 헤어베르트 랑케스. 서기 1944년. 제목 - 신비적·야만적 권태.















<페이지 생략><귄터 그라스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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