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 <나자>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85번.

by 이태연




암호문을 판독하듯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초현실주의 소설입니다. 앙드레 브르통은 매혹적인 여성 '나자'를 만난 자신의 실제 경험에, 환상과 꿈, 사랑에 대한 관찰을 더해 스토리를 전개해갑니다. 그리고 문학과 삶의 자유로운 소통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여닫이 문'처럼 열려있는 능동적인 독서를 권합니다. 다음은 작가의 말입니다. "환상의 세계와 현실이 만나는 곳 '초현실'이야말로 모든 상상력의 원천이다."


<< 작가의 시선 >> - 소설의 화자입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나자'라는 여자를 통해 일상과 꿈, 현실과 환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그러나 만남은 계속 이어지지 못하고 그녀가 정신 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이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영혼에 사로잡혀 있는가?' 대답없는 질문을 하며 삶에 대해 물음표를 던집니다.

* '사로 잡혀 있다' 라는 말은, 어떤 존재들과 나 사이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특이하고 더 필연적이고 더 불안하게 만드는 관계를 맺게 한다는 점에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고백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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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옷차림이 매우 초라한 한 젊은 여자가 내 쪽으로 한 열 걸음쯤 떨어진 지점에서 오고 있는 것을 보았고, 그녀 또한 나를 보고 있거나 이미 본 듯했다. 그녀는 지나가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는 달리 머리를 높이 쳐들고 걷는 모습이었다. (···) 화장을 끝마칠 시간이 없었던 사람처럼, 금발머리에는 어울리지 않게 특이하게도 눈가를 아주 검게 칠한 화장을 하고 있었다.

* 갑자기 내가 그녀에게서밖에 볼 수 없었던 경쾌함이 느껴졌는데, 그것은 아마 정확히 말하면 자유로움이었을 것이다.

*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당신의 정체는 무엇인가요?" 그러자 그녀는,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나는 방황하는 영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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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오늘 오후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앞으로 더이상 그녀를 만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은 모르겠다. (···) 틀린 징조, 일시적인 영감, 영혼의 위험한 함정, 심연, 찬란하게 슬픈 예언의 새가 몸을 던지는 심연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다. 6시쯤에 우리가 전에 만난 적이 있는 그 바에 가 보는 일 외에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가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는 없다.

* 나는 나자를 만난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어떤 주술적인 힘에 일시적으로 붙들려 있었을 수는 있지만 내 영혼만은 어느 것에도 예속될 수는 없는 바람의 정령들처럼 자유로웠다.

* 나는, 금지된 시간에 희미한 전등으로 한 여인의 초상화를 비추면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도록 미술관에 밤새도록 틀어박혀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아주 좋아한다. 그러고 나면 초상화 속의 여인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될 수밖에 없으리라. 인생은 암호문처럼 해독될 필요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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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어쩌면 그녀가 제시한 높이에 이를 만한 사람이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나에게 제시한 모습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사랑이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만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의 사랑만이 이 세상에서 기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나는 책을 쓰는 일처럼 어떤 일을 계획적으로 준비할 시간이 있는 사람, 일을 다 끝내고 나서는 자기가 한 일이 어떤 운명이 되고 또한, 나중에 그 일이 자신에게 어떤 운명을 초래하는지 하는 문제에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 (···) 불가사의한 존재,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적어도 내 믿음이 바뀌지는 않았을 불가사의, 그것과 함께 뿌리를 내리고 자란 이름,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그 이름은 계속 내 귓가에서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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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이제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 내가 이 책이 "문처럼 열고 닫히는" 것이 되기를 원했고,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을 볼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신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나에게 일깨워 주기 위한 어떤 역할을 했습니다. 물론 그 문을 통해 들어오고 나가는 이는 당신뿐입니다.

* 사랑이 아주 신비스러우면서도 아주 무정하게 정지해 버린다고 해도 나는 그것을 이의 없이 받아들이겠습니다.

* 아름다움은 발작적인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운 것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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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자의 말 >> - 정신 장애를 겪고 있지만 매혹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존재로 현실에 갇혀 있지 않은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입니다. 사실적인 모습과 초현실적인 모습을 동시에 보여 줍니다.

* 그렇게 오랫동안 한 사람과 같이 지내고, 그 사람을 관찰할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이 있었고, 신체뿐 아니라 다른 부분의 가장 사소한 특징들까지도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늘 서로 붙어 있었는데도, 결국 그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렇게 눈에 띄는 특징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니!

* 정말 별 하나가, 당신이 그쪽을 향해 가고 있는 별 하나가 있군요. 당신은 반드시 그 별에 도달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이 말하는 걸 들으면서 그 길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나도 막을 수 없지요. ······당신이 그 별을 결코 내가 보는 식으로 볼 수는 없겠지요. 당신은 이해하지 못해요. 그 별은 마치 마음이 없는 꽃의 마음과 같지요.

* 시간은 여유가 없게 굴어. 시간은 여유가 없다니까. 왜냐하면 모든 일이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야만 하니까.













<페이지 생략><본문의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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