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함께 거론되는 대표적인 성장소설입니다. 한 소년이 다양한 지적 체험을 통해 청년으로 성장해가며 예술가의 길을 찾아하는 과정을 그려낸 이야기인데요. 작가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다음은 버지니아 울프의 말입니다. "조이스는 삶을 보다 면밀하게 살피는 한편, 소설가들이 일반적으로 존중해 온 인습을 버리고 자신에게 흥미와 감동을 주는 것들을 더욱 진지하게, 더욱 정확하게 보존하려고 한다."
<< 작가의 시선 >> - 3인칭 시점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의식의 흐름'에 따라 주인공의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 누군가가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면서 Dieu라고 한다면 하느님께선 그 기도자가 프랑스인이라는 것을 대번에 알테지.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여러 가지 언어에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이름들이 따로 있을 것이고 또 하느님께선 기도자들이 각기 다른 말로 기도하는 내용을 다 알고 계시겠지만, God는 늘 같은 God으로 남아 있고 그래서 God의 진짜 이름은 God인 거야.
쿠스코의 하늘
* 이따금 그는 그 명예로운 자리에서 일어나서 모든 애들 앞에 자신의 자격 없음을 고백하고 채플을 떠나고 싶다는 충동을 받기도 했지만 애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그런 충동을 억제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신중함이 없는 열정은 표류하는 배와 같다.
* 그는 행동이나 생각으로 저질렀던 모든 죄악을 진심으로 고백하려 했지만 학교 동료들 사이에서 고백하고 싶지는 않았다.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어떤 어두운 곳에서 수치스러운 죄를 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학교 채플에서 고백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이 자기에게 화를 내지 않도록 겸허하게 하느님께 빌었다.
* 그의 영혼은 다시 한번 맑고 경건해졌다. 경건하고 행복했다. (···) 뭐니뭐니 해도 삶이란 순박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그 모든 삶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쿠스코의 햇살
* '나는 내 삶을 개선했다. 그렇지 않은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 예수회 소속 신부 스티븐 디덜러스. 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 자신의 이름 글자들이 눈앞에 튀어 올랐고 뒤이어 확실한 윤곽도 없는 얼굴과 얼굴 색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 그 얼굴에는 눈이 없었고, 씁쓸하고 경건한 표정에 분노를 억누르고 있듯 홍조가 감돌기도 했다.
* 이 세상의 함정이란 죄를 짓는 길이었다. 그 함정에 빠져보리라. 아직은 빠지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말없이 빠지리라.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는 닥쳐올 어느 순간에 자기 영혼이 겪게 될 말없는 타락을 감지하고 있었다. 영혼은 점점 그 함정으로 빠지고 있으나 아직은 빠지지 않았고, 아직 빠지지 않았으나 막 빠지려 하고 있었다.
쿠스코의 풍경
* 이제 그의 소년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 제 운명을 피해 뒷걸음치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상처에 대한 수치심을 혼자서 곰곰이 되씹으며 오욕과 발뺌의 집에서 퇴색한 수의와 건드리면 시들어버릴 화관을 걸치고서도 제왕처럼 행세하려 했던 그의 영혼이 아니었던가? (···) 아니, 그 자신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 새들은 저물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어둡게 날면서 그 집의 튀어 나온 견각 위로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내며 돌아왔다. 무슨 새일까? 그는 그 새들이 남쪽 나라에서 돌아온 제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새들은 오락가락하면서 인가의 처마 밑에 임시로 집을 지었다가 자기가 지은 집을 버리고 날아가기도 하니까, 그도 떠날 예정이었다.
쿠스코의 구름
<< 학감의 말 >> - 스티븐에게 미학에 대한 조언을 해 줍니다.
* 예술가의 목표는 아름다운 것을 창조하는 일이라고. 무엇이 아름다우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고.
* 미학 문제에 대한 자네의 의견을 언제쯤이나 듣게 되겠나? (···) 이런 문제들은 아주 심오해서 마치 모허 절벽에서 깊은 바닷속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네. 많은 사람들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지만 다시 떠오르지 못하고 있어. 오직 숙련된 다이버만이 바닷속 깊은 곳에 뛰어들어 탐색을 마친 후 다시 물위로 올라올 수 있다네.
* 조금씩 길이 보일걸세. 삶이나 사상에 있어서의 길이라고 하는 그런 넓은 의미의 길 말일세. 처음에는 오르막길을 자전거로 오르는 셈이 될지도 몰라. 무넌 군의 예를 보라고. 정상에 오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나 도달했거든.
쿠스코의 정경
<< 스티븐 디덜러스의 말 >> - 자아 의식이 강한 소년으로 주인공입니다. 바이런이 대표적인 시인이라고 주장했다가 이단으로 몰려 동료 학생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합니다. 열여섯 나이에 작문 시험에서 받은 상금으로 사창가를 찾게 되고 죄의식에 시달리다 고해를 통해 회개하게 됩니다. 이후 모범 학생이 되어 사제가 될 것을 권유받기에 이르지만, 예술가의 길을 찾아 가기로 결심합니다.
* 아퀴나스는 '보기에 즐거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 아퀴나스는 '선은 욕구가 미치는 것 속에 있다.'라고도 했습니다. 불이 따뜻함에 대한 동물적 욕구를 충족하는 한, 불은 선하지요. 그러나 지옥에서는 불이 악으로 됩니다.
* 현재 저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아퀴나스의 한두가지 사상에 비추어서 연구할 수가 있습니다. (···) 제가 활용하고 지침으로 삼기 위해서만 그 사상이 제게 필요하답니다. 만약에 그 등잔에서 연기나 냄새가 난다면 저는 그 심지를 다듬겠습니다. 또 그 등잔이 충분히 밝혀주지 않는다면 저는 그것을 팔고 다른 등잔을 사겠습니다.
* 욕망이나 혐오를 자극하는 예술은, 그것이 외설적이냐 교훈적이냐를 막론하고, 모두 부적절한 예술이지. (···) 우리가 이해하게 된 아름다움의 이미지를 천천히, 겸허하게, 꾸준히 표현하고 다시 짜내려고 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야.
쿠스코의 정원
*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그것은 전일성( wholeness ), 조화(harmony), 빛(claritas)이다.' 라고 번역하겠어.
* 예술가의 개성은 서술 그 자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마치 생명력 있는 바닷물처럼 인물과 행동의 주위를 돌고 돌며 흐르게 되지. (···) 예술가는 창조의 신(神)처럼 자기가 만드는 작품의 내면이나 이면 혹은 그 위나 초월적인 곳에 남아서 남의 눈에 띄지 않은 채 스스로를 순화하여 사라지게 한 후 초연히 손톱이나 깎고 있는 거야.
* 내가 믿지 않게 된 것은, 그것이 나의 가정이든 나의 조국이든 나의 교회든, 결코 섬기지 않겠어. 그리고 나는 어떤 삶이나 예술 양식을 빌려 내 자신을 가능한 한 자유로이, 가능한 한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며,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내가 스스로에게 허용할 수 있는 무기인 침묵, 유배 및 간계를 이용하도록 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