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건만 저들은 모두다 - <지하로부터의 수기>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39번.

by 이태연





음습한 지하방에서 '지하 인간'이 광적인 독백을 던집니다. '지하 인간'은 자신이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사회는 물론 자기 자신마저 경멸하는 지식인입니다. '지하 인간'은 20대 때 하급 관리로 일했으나 유산을 받게 되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20년 동안 지하에 틀어박힌 채 살아갑니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전혀 인간관계가 없지만, 이런 상황에 만족하고 오히려 모든 이들을 혐오합니다. 니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이 작품을 "피 속에서부터 진실을 토해 내는 소설"이라고 평합니다.



<< 도스토예프스키의 시선 >> - 나는 쓴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나는 아픈 인간이다······. 나는 심술 궃은 인간이다.


* 이성은 오직 이성일 뿐이어서 오직 인간의 이성적 판단력만을 만족시킬 뿐이지만, 욕망은 삶 전체, 즉 이성과 온갖 긁적임을 포함하는, 인간의 삶 전체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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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4 하나만이 통용된다면 그 상황에서 무슨 의지가 있을 수 있겠소? 2×2는 나의 의지가 없어도 4가 될 텐데. 자기 의지라는 것이 이런 것이란 말이오!


* 인간은 희극적으로 생겨 먹었다. 또 이 모든 것에는 명백히 말장난이 들어 있다. 하지만 2×2=4는 어쨌거나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 2×2=4가 훌륭한 녀석이라는 점에는 나도 동의하지만, 이것저것 다 칭찬할 바엔 2×2=5도 이따금씩은 정말 귀여운 녀석이 아닌가. (···) 실상 인간이 안락 하나만을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혹시 고통도 딱 그만큼 사랑하는 건 아닐까? 혹시 고통이라는 것도 딱 안락만큼이나 그에게 이로운 건 아닐까?


* 의식은 예컨대 2×2보다는 무한히 더 높은 것이다. 2×2 이후엔 할 일이 전혀 없어질 뿐만 아니라 알아내야 할 것도 전혀 없어질 것이다. 그때 가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자신의 오감을 틀어막고 명상에 잠기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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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정말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서도 겁을 집어먹은 까닭에 최후의 한 마디를 감추는데, 이는 당신이 그걸 입 밖에 낼 결단력은 없고 오직 겁을 집어먹은 채 시건방지게 굴 줄만 알기 때문이오. (···) 당신의 머리는 작동하고 있으되 당신의 마음은 방탕으로 인해 어둠침침해졌기 때문이오. 깨끗한 마음이 없으면 완전하고 올바른 의식도 없는 법이라오.


* 그 당시 나를 괴롭힌 정황이 하나 더 있다. 다름 아니라, 아무도 나를 닮지 않았고 나도 아무와도 닮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혼자건만 저들은 모두.'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 잠기곤 했다.


* 집에 있을 때 나는, 첫째 책을 제일 많이 읽었다. 나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끓어오르는 모든 것을 외적 감각으로 억누르고 싶었던 것이다. 외적인 감각 중 그나마 나한테 가능했던 것은 오직 독서 하나뿐이었다. (···) 독서 말고는 달리 갈 데도 없었으니, 즉 그 무렵 내가 내 주위에서 존경할 수 있고 어떤 끌림을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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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이란 자기 괴로움을 세는 것만 좋아하지. 자기 행복은 아예 세질 않아. 만약 제대로만 센다면 누구나 자기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될 텐데.


* "당신은 왠지······ 꼭 책을 따라하는 것 같아요." (···) 그녀의 지적에 나는 바늘에라도 찔린 듯 통증을 느꼈다.


* 나는 거의 앞뒤를 잃고 소리쳤다. (···) " 나는 어느 회식에서 심한 모욕을 당했어. (···) 누구한테든 분풀이를 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했던 참에 마침 네가 나타났고 너한테 내 분을 다 퍼붓고 너를 갖고 놀았던 거야. 나를 이렇게들 깔아뭉개 놓았으니까 나도 누굴 깔아뭉개고 싶었던 거지. 나를 갈기갈기 찢어 걸레로 만들어 놨으니까 나도 권력을 과시하고 싶었단 말이야. (···) 나한테 필요한 게 뭔지 알아? 너 같은 것들이 몽땅 어디론가 꺼져 버리는 것, 바로 그거야! 나는 안정이 필요했어. 사람들이 나를 귀찮게 하지만 않는다면, 그걸 위해서라면 지금이라도 온 세상을 단돈 1코페이카에 팔아넘기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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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얼른 사라져 주었으면 싶었다. '안정'을 나는 바랐고, 지하에 혼자 남길 바랐다. '살아 있는 삶'이 너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이제는 그것이 숨이 막힐 만큼 나를 짓눌러 왔다.


* 값싼 행복과 숭고한 고뇌 중 무엇이 더 나을까? 과연 무엇이 더 낫겠는가?


* 나는 이 소설을 쓰는 내내 부끄러웠다. 다시 말해 이것은 문학이 아니라 (···) 이 모든 것이 불쾌한 느낌을 준다는 점인데, 이는 우리 모두 삶으로부터 유리된 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너나할 것 없이 다 절뚝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나 많이 유리되었는지 진짜 '살아 있는 삶'에 대해서는 때때로 어떤 혐오감마저 느끼고, (···) '살아 있는 삶'을 노동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거의 업무로 생각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다들 속으론 책에 따라 사는 것이 차라리 더 낫다는 쪽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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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나한테 화를 내고 고함을 지르면서 두 발을 쾅쾅 구를 것이다 (···) "당신의 비참한 지하 생활 얘기만 할 것이지, 감히 우리 모두라고 둘러대진 말라." 라면서.


* 나는 실상 여러분이 감히 절반도 밀고 나가지 못한 것을 내 삶에서 극단까지 밀고 나갔을 뿐인데, 여러분은 자신의 비겁함을 분별이라 생각하고 이로써 스스로를 기만하면서까지 위안을 얻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여러분보다는 훨씬 더 '생기로운' 셈이다. (···) 우리를 단 한 권의 책도 없이 홀로 남겨 둬 보라. 그럼 우리는 당장에 갈팡질팡하고 어리둥절해질 것이며, 어디에 합류해야 하고 무엇에 따라야 할지,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통 모를 것이다.


















<페이지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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