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세계는 나의 세계예요 - <필립과 다른 사람들>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94번.

by 이태연




방랑 소설의 대표작입니다. 소설 속 '다른 사람들'은 세스 노터봄의 다양한 분신들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심과,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여행길에 나선 주인공 필립은 청년 시절의 작가의 모습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 필립이 찾아다니는 중국인 소녀는 '이야기의 화신'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제임스 조이스를 인용한 작가의 고백입니다. "어느 작가든지 일생을 통해 단 한권의 책을 남기게 되는데, 다른 작품들은 바로 그 한 권의 책의 변형에 불과하다."



<< 필립 엠마누엘 반데를레이의 시선 >> - 주인공으로 소설의 화자입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때 묻지 않은 순박한 청소년이지만, 인생이 해피엔드가 아님을 일찍이 간파한 조숙하고 이지적인 성격의 소유자입니다. 중국인 소녀를 찾아 떠난 여행길에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만나게 됩니다.


* 그녀가 설명했다. (···) "넌 더는 경험할 일이 하나도 없어. 한갓 회상할 일만 남았을 뿐이지. 넌 더 만나야 할 사람도 없어. 이별을 나누기 위한 예외적인 만남을 제외하곤."


* 진정한 세계는 나의 세계예요. 그건 일차적이고 가시적인 현실 즉 실제로 만져 볼 수 있고 또 움직이는 삶의 이면에 자리한 삶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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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은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서로 헤어져야만 하는 이별의 장이다.


* 그런데 도대체 왜? 왜 나는 남들처럼 사무실에 앉아 있지 못하는 걸까? 남들이 일하고 있을 때 나는 왜 비 내리는 도로변에서 서성대는 걸까? 길, 나는 그동안 수많은 길들을 봤고 몸소 밟아 봤기에, 이젠 그 길이라는 게 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 중국인 소녀를 찾아 곳곳을 헤맸지만 그녀를 놓쳐 버린 나, 그녀를 찾아 헤매지 않았지만 대신 나를 만나고 맞이해 준 그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고 있었고, 나는 유유자적한 삶을 살며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 깊이 사유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세속을 너무나 많이 겪어 버렸다. 내가 인생을 잘못 이해하고 그것을 낭비했기에 거리는 불안과 동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인생, 결과는 매한가지이다. (···) 나는 한 소녀를 찾는다. 그녀는 필경 여기 어딘가에 있다. 어쩌면 로마에, 어쩌면 스톡홀름에, 아니면 그라나다에, 아무튼 어딘가 가까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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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뭔가를 찾고 있다.


* 난 고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전혀 없다. 비록 인간들이 흔히 일컫는 고독이란 진정한 의미의 고독이 될 수 없다고 믿고 있긴 하지만, (···)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은 오직 본연 그대로의 고독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 "인생이 짧다고 생각해?" 그의 물음에 내가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그는 확신컨대 인생은 짧은 게 아니라 오히려 한없이 길다고 말했다.


* 당신들은 마땅히 놓아줘야 할 것을 왜 계속 붙들고 있는 겁니까?


* 나는 끊임없이 걷고 또 걸을 겁니다. (···) 계속 그렇게 걷다가 언젠가 벤치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거기에 가 다른 사람과 함께 앉게 된다면, 그럴 경우 나는 나 자신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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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거 아니?" 그녀가 물었다. "삶이란 사랑을 위해 마련된 기회라는 걸? (···) 내가 볼 때 넌 앞으로도 끊임없이 최소한의 확실성을 추구해 나갈 거야. 끊임없이 어떤 사람들에게 정을 주고 어떤 장소들에 애착을 느끼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넌 끊임없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사고방식을 고수할 거야. 왜냐하면 넌 이제껏 늘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 난 상념에 잠겼다. (···) 그녀를 사랑한다는 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졌다. 일찍이 누구를 사랑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 그녀가 말했다. "내가 혼자 있어야만 한다는 걸 넌 알고 있잖아. 난 다른 사람들 곁에 있을 수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도 없다는 걸 말이야. (···) 난 혼자 있고 싶어. 그리고 너도 그걸 알고 있잖아."


* "빈손으로 왔어?" "네, 삼촌." 내가 말했다. "삼촌 드리려고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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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토닌 알렉산더의 말 >> - 필립의 삼촌으로 세상의 아웃 사이더로 살아갑니다.


* 난 나 스스로하고 결혼한 셈이지. 원래 그대로의 나 자신이 아니라, 나로 변신해 버린 추억하고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니?


* 인간이 존재하는 단 한 가지 의미가있다면 그건 바로 그 이상향으로의 귀환이지. (···) 그런데도 누군가가 그 존재하지 않는 낙원에 접근할라치면 타인들이 그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방어하려 들지. 왜냐하면 낯선 건 모름지기 사람들의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거든.


* 나는 자꾸 왜소해지고, 그래서 세간의 저들에게는 난 더욱 낯설고 이상한 인물로 변해 가는 것이고, (···) 섬이란 작을수록 그 독보적 가치가 상승하는 법이거든. 하지만 가장 작은 섬은 결국 바다나 진배없지. 그리고 그 바다란 우리 주변의 뭇사람들이 아니야. 그건 우리가 추구하는 이상, 우리가 우리 자신인 양 치부하는, 우리의 이름을 지닌 거룩한 신이 바로 바다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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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시스의 말 >> - 수사가 되고 싶어 수도원에 들어가지만 강직성 경련이라는 병 때문에, 수사 임명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필립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구든지 우리 생에 가운데 가장 행복하다고 손꼽을 만한 어느 한 시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몰라. 그러나 (···)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가급적이면 미래보다는 과거에 놓으려고 하지. 그렇게 하면 만사가 한결 단순해 보이거든


* 이제야 깨닫게 된 것 같아. 내가 왜 그때 행복했는지를. (···) 바로 '우리들'때문에 나는 행복했던 거야. 그 가운데 내가 일원으로 속해 있었으니까. 그런데 난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속해 있지 않아. 사실 아무 데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해야지. 그나마 추위에 떨고 있는 다른 이들의 틈에서조차 끼어 있지 않다고. 그건 그들이 모두 나름대로의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워하고 있기 때문이야. 각자 따로따로 자기들만의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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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말 >> - 공원에서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들입니다.


* 유일한 사랑은 발견되는 게 아닙니다. 유일한 사랑은 생겨나는 겁니다. 사랑은 행위로써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사랑은 스스로 말하고 우리가 들은 그 말로 구성되지요. 사랑은 스스로가 마련한 계기를 통해, 그리고 그 사랑이 계기를 갖도록 우리가 사랑에게 마련해 준 기회를 이용하여 그 형상을 이뤄 나갑니다.


* 당신은 단지 당신 스스로 무기력한 상태에 빠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을 잃지 않습니다.


* 요컨대 인간은 궁극적으로는 살아 있지 않다는 겁니다. 인간은 지금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겁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육체의 팽팽한 생동감을 통해, 그리고 그 위를 어루만지는 손의 섬세함을 통해, 지금 이 순간, 입에서 흘러나오는 신비스러운 언어와 입에서 토해 내는 염원을 통해.






















<페이지생략><주인장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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