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뭘 기다리는 건지 - <버스 정류장>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71번.

by 이태연





가오징젠은 프랑스로 망명한 중국 작가로 200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중국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자신이 써온 원고들을 불태워야 했던 가오싱젠은 그때의 상황을 "스스로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과 같은 쓰라린 고통." 이었다고 표현합니다. 다음은 작가에 대한 뉴욕 타임즈의 기사입니다. "가오싱젠은 조국에 대한 분노와 상실의 고통을 매혹적인 작품으로 형상화했다."



버스 정류장 】 - 다양한 사람들이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들의 모습은 '항상 무언가를 기다리는 우리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기다린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다성부(多聲部)를 활용한 연극으로 강약의 조화를 이루며 연주되는 교향악과 비슷하게 이야기가 진행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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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주임의 말 >> - 공급판매 합작사 직원입니다. 저녁 약속으로 시내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립니다. 소나기가 쏟아지자,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이 갖고 있던 방수 천을 펼쳐 비를 피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끈끈한 유대관계가 생겨 힘을 합해 시내로 걸어나가려는 사람들의 행렬에 동참하게 됩니다.


* 뒷거래한다고 나더러 뭐라 하시면 안 되죠. (···) 어떤 사람들은 살 수 있고, 어떤 사람들은 못 사는 거지, 모두 살 수 있다면 모순이란 없는 거 아니겠어요?


* 세상엔 참 별별 사람이 다 있어. 장기 한 판을 위해 일 년을 기다리다니.


* 기다리고 싶으면 기다리시오. 내가 급할 게 뭐람? (···) 당신들 대신 걱정을 한 것뿐이야. 기다려, 제기랄. 기다리자고.


* 기다리는 건 상관없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줄을 서서, 도대체 뭘 기다리는 건지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거지. 만약 당신이 줄을 서서 반생을 혹은 일생을 쓸데없이 기다리기만 했다면, 그건 정말 웃기는 일 아니겠어요?





20231104_184030.jpg 다성부(多聲部)를 활용한 대사 - <버스 정류장>





<< 아이 엄마의 말 >> - 자신이 없으면 생활이 거의 되지 않는 남편과 아이 걱정뿐입니다.


*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정류장에서 일 년 동안 기다렸다는 거예요?


* 우리 식구들은 갈아입을 옷도 없을 텐데. 그이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 바지가 찢어져도 꿰맬 줄도 모르거든요. 우리 배이배이는 날 찾으며 울고불고 난리였겠네.


* 길 떠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알았으면, 이렇게 큰 짐 보따리는 가져오지 않는건데.


* 누가 우릴 여자로 만들었을까? 우린 운명적으로 기다려야, 한도 끝도 없이 기다려야 하나 봐. 우선 한 남자가 찾아와 주길 기다리고, 어렵사리 시집을 가서는 애가 세상에 나오길 기다리고, 또 그애가 성인이 되기를 기다리고, 그러다 우린 늙어버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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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잡이의 말 >> - 마지막 기회인 대학입시를 위해 영어 단어를 외우며 버스를 기다립니다.


* 만약 우리가 떠나자마자 차가 오면 어쩌지? 차가 와도 또 서지 않으면? 이성적으로 내가 가는 게 옳을 것 같은데, 또 알 수 없단 말야. 만일? 일만은 겁나지 않는데, 이 만일은 겁난단 말야. 어쨌든 결정해야 해! (···) 사람은 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가지 않고 운명이 시키는 대로 따라야 하지? 거 참, 운명이란 게 뭐지?


* 넌 고통이란 것도 모르지. 그래서 넌 목석 같고 인정이 없어 삶은 우리를 내몰아쳤어. 세상은 우릴 잊었고. 생명이란 것은 네 코앞에서 허무하게 흘러가 버렸고. 이해하겠어? 넌 이해 못해. 넌 이렇게 아무렇게나 살 수 있지만 난 못해······.


* 차는 오지 않을 거야. 가자, 그 사람처럼. 정류장에서 바보처럼 기다리는 시간에 어떤 이는 벌써 시내에 들어갔을 뿐 아니라, 멋진 일까지 한바탕 해냈을 거야. 더 기다릴 것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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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의 말 >> - 시내로 장기를 두러 가기위해 간절하게 버스를 기다립니다.


* 이 장기 한 판을 위해 기다리고, 기다리고, 내 한평생을 기다렸는데.


* 난 기다리다 기다리다 등이 다 굽었네.


* 다들 앞서 가요. 나 때문에 처지지 말고, 나야 어디서 쓰러지든, 여러분 귀찮겠지만 땅에다 파묻어나 주어. 잊지 말고 비석도 하나 세워줘. 비석에는 ":여기 죽어도 후회할 줄 모르는 장기광이, 다른 재주는 하나도 없이 그저 한평생 장기만 두었다. 늘 시내 문화센터에 들어가 한번 우쭐댈 기회를 찾았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늙어서, 시내 들어가는 길에 스러졌다. " 라고 적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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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백 】 - 관객 앞에서 연기하는 것이 두려운 한 배우가, 자신 있게 연기하고자 관객과 자신 사이에 투명한 벽을 쌓습니다. 그러나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임을 깨닫게 되면서 다시 벽을 무너뜨립니다. 모놀로그 연극으로, 희곡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 야인 】 - 산골 아이 세모와 야인의 순수한 우정과, 파괴되어가는 자연의 보호에 힘쓰는 생태학자의 이야기입니다. 털북숭이 야인은 "자연이자 인간 본래의 모습"을 의미하며, 인간과 자연의 화합을 추구하는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중국의 민간 전통 문화가 적절히 섞여 있는 작품입니다.


<< 양대장의 말 >> - 목재 판매상이지만, 나무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합니다.


* 나무는 병아리 까듯 열흘이나 보름이면 자라서 보금자리를 떠나는 게 아니지요. 또 사람 머리카락처럼 빡빡 깎으면 며칠 되지 않아 다시 자라는 것도 아니죠. 또 부추처럼 한 줌 베어내면 또 한 줌 자라는 것도 아니에요. 나무 한 그루는 사람 한 명과 같아요. (···) 십여 년의 시간을 들였어도, 지금 당신들이 마주 대하고 있는 저 -- 이전에 모조리 다 베어낸-- 산에 어디 보기 좋게 자란 나무 한 그루나 있습니까?

















<페이지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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