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사랑할 수 없다 - <내가 죽어 누워 있을때>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81번.

by 이태연







죽은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관을 끌고 더운 여름날 머나먼 길을 떠나는 여정을 담아낸 이야기입니다. 등장인물 15명의 독백만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각각의 인물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삶과 죽음, 선과 악, 운명과 욕망에 대한 무거운 성찰을 그려냅니다. 다음은 이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입니다. "이 소설은 나를 일으켜 세우거나 거꾸러뜨릴 것이다."



<< 앤스 번드런의 시선 >> - 애디의 무능한 남편입니다. 아내의 유언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꾸역꾸역 시신 운구에 나섭니다. 그러나 자식들의 돈을 갈취해 의치를 해 넣고, 아내를 땅에 묻자마자 새 여자를 데리고 와 새엄마라고 소개합니다.


* 내 자신은 이빨도 제대로 없는 처지다. (···) 3달러를 벌기 위해 아이들이 떠난 것에 대해서도 내가 그 대가는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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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평화다. (···) 내 삶이 남들이 내세우는 삶보다 더 훌륭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 나쁘지도 않다. 하느님은 최소한 들판에 떨어지는 참새만큼은 날 염려하실 것이다.


*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가 마차를 타고 함께 가기를 아내는 원했다. 툴의 집 근처까지 왔을 때 달이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널판지를 깔아놓은 자리에 캐시와 함께 앉아, 발끝에는 죽은 엄마의 시신이 있는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 그런 이상한 행동 때문에 사람들이 비웃는 거라고 내가 몇 번이나 타일렀는지 모른다.


* 땀 흘려 일한 땅 8마일이 물에 떠내려갔다. 하느님이 그곳에서 일하라고 명하시곤, 다시 빼앗아 가시다니, 정직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늘 손해만 보는 죄 많은 세상이다. (···) 하느님은, 이승에서 가진 사람들의 소유를 빼앗아 저승에서는 없는 사람들에게 내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오래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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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의 시선 >> - 앤스와 애디의 둘째 아들입니다.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괴로워하다 결국 홀로 정신 병원에 가게 됩니다.


* 엄마는 더 이상 바랄 게 없겠지. 죽어 누워 있기에 캐시의 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이 관은 엄마를 편안하게 해줄 것이다.


* "엄마, 엄마." 손을 약간 쳐들고 열흘 동안 해왔던 부채질을 멈추지 않은 채 듀이 델은 (···) 어머니의 말라빠진, 한 줌의 뼈만 남은 무릎 위로 몸을 던져, 어머니를 붙잡고 침대 전체가 삐걱거릴 정도로, 격정적으로 몸부림쳤다. (···) 아버지는 지는 해를 등지고 침대에 기대앉는다. 등이 휘어진 채 웅크리고 있는 그의 그림자는 불평 불만 가득찬 털북숭이 올빼미 같은 모습이다. 그 올빼미 몸속에는 번득이는 지혜가 들어 있는 듯한데, 너무 심오한 탓인지, 아니면 너무나 우매한 탓인지 헤아리기 어렵다.


* 주얼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왜냐하면, 존재하는지 안 하는지 스스로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 내가 비워질 수 없다면, 난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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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엄마가 없기 때문에 엄마를 사랑할 수 없다.


* 우리들 사이에 가로놓인 공간은 마치 시간인 듯 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 말이다. 시간은 우리들 앞으로 똑바로 달리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둥그런 고리처럼 우리들과 평행으로 함께 달리는 듯하다. 그러면 시간의 차이는 없어지고, 과거와 현재, 미래는 모두 한데 포개지게 된다.


* 캐시는 기울어진 마차에 몸을 기대고 팔로 엄마의 관과 연장을 꼭 붙들고 있다.


* 불꽃이 사방으로 흩뿌리는 가운데, 관은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흩어지는 불꽃이 다른 불꽃에 닿자마자 또 다른 불똥이 튀어나오는 듯하다. 관이 무게중심을 옮겨 다시 앞으로 쓰러지자 그 뒤로 주얼이 보인다. 폭풍이 휘몰아치듯 불꽃이 그의 몸 위로 쏟아져 내린다. 그는 마치 불로 만들어진 얇은 휘장 속에 갇혀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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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더만의 시선 >> - 앤스와 애디의 막내 아들입니다.


* 저 관이 완성되면 엄마를 그 안에 넣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 말을 할 수 없었다. 난 어둠이 벌떡 일어서서 소용돌이치며 가버리는 것을 보았다. "캐시, 엄마를 그 안에 넣고 못질할 거야?" 내가 아기였을 때 방 안에 갇힌 적이 있었다. 새로 만든 문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내가 열 수 없었고 별 수 없이 그 안에 갇히게 되었다. 쥐들이 방 안의 공기를 써버려 난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캐시, 관을 못질해서 잠가버릴 거야? 못질, 못질해 버릴 거냐고."


* 엄마는 가버렸다. "엄마는 읍내로 멀리 가버린 걸까?" "읍내보다도 훨씬 멀리 떠난 거야." "토끼나 주머니쥐들도 죽으면 읍내보다 훨씬 멀리 가버리는 거야?" 토끼와 주머니쥐를 만든 것은 하느님이다. 하느님은 기차도 만들었다. 엄마도 토끼와 다르지 않다면, 왜 저마다 다른 장소로 가야 하는 것일까.


* 엄마를 어깨에 짊어지고 집 건물을 돌아, 달빛이 가득한 뜰을 지나간다. 그들은 엄마를 헛간에 내려놓고, 달빛이 나지막하고 조용하게 엄마의 관을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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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디의 시선 >> - 앤스의 아내이자 다섯 남매의 엄마로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의 '나'입니다. 애정 없는 부부생활에서 아이들을 생산하는 역할을 해내다 죽어갑니다.


* 난 앤스를 받아들였다. 캐시를 임신했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사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실감했고, 임신이 바로 그 증거임을 알게 되었다.


* 그도 단어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 그는 이것을 사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오랫동안 단어들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랑이란 단어 역시 다른 말과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저 빈 곳을 메우기 위한 형태일뿐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 사랑이란 말도 전혀 쓸모없게 될 것을 말이다.


* 앤스 혹은 사랑,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의 고독은 이미 깨졌고, 깨졌기에 고독은 다시 완전하게 되었다. 앤스 혹은 사랑, 어떤 것이든 나의 완결된 고독의 테두리 바깥에 존재했다.


* 보복하기로 했다. 내가 보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에게 숨기는 것이 바로 보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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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스가 말했다. "아직 아이들이 둘밖에 없는데, 자식들도 다 낳지 않고 무슨 소리요." 그는 내게 있어 이미 죽은 존재였다. 그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 난 앤스에게 아이들을 주었다. 그들을 내게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가 줄 수 있는 것조차도 난 요구한 적이 없다. 절대로 앤스에게 요구한 적이 없다. 청하지 않는 것이 내 의무였고, 난 그 의무에 충실했다. 나는 나일뿐이다. 그는 앤스라는 이름을 가진 모양과 소리일뿐이다.


* 아이들은 모두 나만의 자식들이다. 나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로부터 나왔다. 누구의 자식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두의 자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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