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왜' 보다는 '어떻게'에 마음을 열고-<표범>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56번.

by 이태연


















문학이 어떻게 역사적, 사회적 변화를 탐구해낼 수 있는지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디 람페두사는 몰락해가는 귀족 계급을 '표범'으로, 신흥 부르주아 계급은 자칼이나 하이에나로 그려냅니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모든게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모든 것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해줍니다.


<< 작가의 시선 >> - 귀족인 영주 돈 파브리초는 새로운 계급이 권력을 차지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이 속한 계급의 몰락을 예감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변화는 형식에서 일어날 뿐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격변의 시대를 객관적으로 지켜봅니다. 그 결과 부유한 집안의 안젤리카와 결혼하려는 조카 탄크레디를 돕느라, 탄크레디를 사랑하던 자신의 딸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 어머니에게는 자부심과 지성을, 아버지로부터는 호색가의 기질과 경솔함을 물려받은 파브리초 영주는 (···)자신이 속한 계급이 몰락하고 가문의 재산이 사라지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볼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대응책을 강구할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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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랑의 불길과 불꽃은 1년이면 꺼져 버리고 이후 30년은 그 재로 살아간다······. 어쨌든 탄크레디 앞에는 그런 여자들이 줄을 설 것이다. 갑자기 한기가 느껴졌다. (···)딸 하나가 결혼하고 싶어 한다 해서 이렇게 우울해지다니,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 지난밤 탄크레디의 편지를 받았다. (···)탄크레디는 팔코네리 집안과 세다라 집안이 결합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해, 아니 필요성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이러한 결혼은 오래된 가문에 새 피를 수혈하고 계급 평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장려할 만하다는 내용이었다.


* 이 놀라운 편지를 처음 읽었을 때 돈 파브리초는 약간 현기증이 났다. 그는 상황이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에 다시 한번 주목했다. (···)"탄크레디에게는 돈이 절실히 필요하오. 탄크레디는 귀족이고 야심이 있고 낭비벽도 있어. 탄크레디가 콘체타에게 언약을 한 것도 아니잖소. (···)그애는 배신자가 아니야. 시류를 따르고 있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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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주는 우울했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지속되게 놔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늘 지속되겠지. (···)100년, 200년······ 그후에는 달라지겠지. 하지만 더 나빠질 게 분명해. 우리는 표범, 사자였다. 우리를 대신할 사람들은 자칼, 하이에나가 될 것이다. 이들 모두, 그러니까 표범, 자칼, 양은 계속해서 자신들이 세상의 소금이라고 믿을 것이다.'


* 돈 파브리초는 '겉도는' 사람으로 통했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다. 그의 무거운 눈꺼풀 사이에서 엿보이는 차가운 푸른 눈동자에 상대방은 화가 났다. 그는 자신이 믿은 바와 달리 존경심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자신이 고립된다는 사실을 종종 알아차렸다.


* 자신의 생명을 지탱하는 체액, 존재하려는 힘, 인생 자체가 천천히 그러나 끊임없이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이 끊임없는 사라짐의 느낌은 (···)침묵이나 성찰을 하는 아주 짧은 기회가 생기면 무심하게 다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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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파브리초는 옷장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자기 자신보다는 자기가 입은 옷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 큰 키가 더 껑충해 보였고 뺨은 푹 꺼졌으며 사흘이나 깎지 못한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라 있었다. (···)꼴이 아주 엉망이 된 표범이었다.


* 하느님은 왜 아무도 제 얼굴로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까? 모두가 이렇게 된다. 사람은 죽을 때 얼굴에 가면을 쓴다. (···)그는 제 모습을 잃도록 변장을 강요하는 이 불합리한 규칙을 힘닿는 데까지 어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힘을 낼 수 없음을 느꼈다.


* 그는 자신이 실제로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계산해 보려고 했다. (···)"나는 일흔세 살이고, 통틀어 그만큼 살았지만, 실제로 산 해는 전부 2년······ 기껏해야 3년이다." 그런데 고통, 지루함, 이것들은 얼마나 긴 세월 지속되었던가? 힘들게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그 나머지인 70년이었다. (···)바다의 포효가 완전히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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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 파브리초의 말 >> - 시칠리아의 귀족 가문의 영주입니다. 괴팍하고 권위적이지만 천문학과 사냥을 좋아하고, 사색과 성찰을 통해 인간의 심리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 시칠리아인은 우리의 종교가 다르고 우리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통치자들에게 오랜 세월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지나치리만큼 신중하게 행동하는 게 습관이 되었어요.


* 우리 시칠리아 사람들은 늙었어요. (···)외부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어 들어온 눈부시고 이질적인 문명을 우리 어깨에 짊어지고 산 지가 2500년은 되었어요. 우리에게서 싹트지 않았고 우리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문명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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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칠리아인이 원하는 것은 잠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깨우는 사람들을 항상 증오할 겁니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가져다준다 해도 말입니다. (···)특정 시칠리아 사람들, 반쯤 잠에서 깬 사람들이 지나칠 정도로 강한 권력을 갖게 되는 까닭도 이 때문입니다.


* 우리는 새로운 것들이 죽었다고 느낄 때만, 삶의 흐름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만 매료됩니다.


* 우리 세대는 구석으로 물러나서 젊은이들이 이 화려하게 장식된 관대(棺臺)주변에서 재주넘고 공중제비하는 모습이나 구경해야 합니다. 이제는 '왜'보다는 '어떻게'에 마음을 열고 (···)양자를 조화시키는 일에 능숙한, 민첩한 젊은이들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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