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아 있었군요?-<이반 데니소비치,수용소의 하루>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3번.

by 이태연
















솔제니친은 반소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8년 동안 수용소에서 보내게 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수용소의 '하루'를 절제된 필치로 그려내며, 지배 권력에 의해 죄없이 고통당하는 힘없는 약자에 대한 애정을 담아니다.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하면서 도덕과 정의의 힘을 갖춘 작가다."라고 언급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평범한 농부였던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는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반역죄라는 죄목으로 억울하게 수용소에 갇히게 됩니다. 열이 나도 작업을 해야 하고, 빵조각을 옷 속에 숨겨가며 아껴 먹어야 하는 하루였지만, 나름대로 만족감을 느끼며 잠이 듭니다.


* 슈호프는 항상 기상 신호 소리와 동시에 일어나곤 했는데, 오늘은 왠일인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는 어제부터 왠지, 몸이 좋지 않았다. 몸이 으슬으슬하고 오한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뼈마디가 쑤셔오는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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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한이 온몸을 움츠리게 한다. 살을 에는 차가운 공기가 슈호프를 엄습해서 기침이 나올 기경이었다. 기온은 영하 이십칠도였고, 슈호프는 열이 삼십칠 점 이 도였다. (···)파블로가 고개를 든다. "이반 데니소비치 아닙니까? 아니, 아직 살아 있었군요?" 이렇게 묻고 나서, 슈호프의 몫으로 책상 위에 남겨놓았던 빵을 내밀었다.


* 죄수들은 생각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그 생각이라는 것이 언제나 제자리에서 뱅뱅 돌기 마련이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감옥과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내일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년에 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계획을 세운다든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한다든가 하는 버릇이 아주 없어지고 말았다. 그를 위해서 모든 문제를 간수들이 대신 해결해 주는 것이다. 그는 오히려 이런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아직도 형기를 마치려면 겨울을 두 번, 여름을 두 번, 그러니까 이 년은 더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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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호프는 수용소에 들어온 이후로 전에 고향 마을에 있을 때 배불리 먹던 일을 자주 회상하고는 한다. (···)그렇게 먹어대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를 해본다. 음식은 그 맛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이 빵조각을 먹듯이 먹어야 하는 법이다. 입 안에 조금씩 넣고, 혀 끝으로 이리저리 굴리면서, 침이 묻어나도록 한 다음에 씹는다. 그러면, 아직 설익은 빵이라도 얼마나 향기로운지 모른다. (···)이렇게 이백 그램짜리 빵 한 덩어리에 온 정신이 팔려 있는 슈호프 옆에는 제104반 전원이 모두 똑같이 이 빵에 넋을 잃고 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


* 슈호프는 고개를 들어 문득, 하늘을 쳐다보았다. (···)일을 하고 있노라면, 시간이 어이없이 빨리 지나가고는 한다. 수용소에서의 하루하루가 빨리 지나간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닌 슈호프지만, 형기는 왜 그리 더디게 지나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전혀 줄어들 기미가 없다.


* "형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지 않던가." (···)사람들이 슈호프를 가리키면서, 저 녀석은 출소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때면, 그다지 기분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슈호프 자신은 어쩐지 그다지 믿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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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호프는 난로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북방에서 지낸 칠 년간의 세월이 아련히 떠오른다. (···)따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뱃속으로 들어가자, 오장육부가 요동을 치며 반긴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바로 이 한순간을 위해서 죄수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슈호프는 모든 불평불만을 잊어버린다. 기나긴 형기에 대해서나, 기나긴 하루의 작업에 대해서나, 이번 주 일요일을 다시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나, 아무 불평이 없는 것이다. 그래, 한번 견뎌보자. 하느님이 언젠가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테지!


* 오늘 하루는 왠지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도 들떠서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가 않다. 취침 준비라고 해봐야 그다지 복잡할 것도 없다. 때 묻은 담요를 들추고, 그 속에 들어가 누우면 끝나는 것이다. (···)오, 하느님. 오늘도 영창에 가지 않게 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라면 그런 대로 어떻게 잠들 수 있습니다. 슈호프는 머리를 창문 쪽으로 향하고 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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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데니소비치! (···)당신이 진실한 믿음을 갖게 된다면, 그리고 그 믿음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그때는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산이라도 능히 옮길 수 있답니다." 슈호프는 코웃음을 쳤다.

* 알료쉬카는 성경을 들고 슈호프 가까이 바싹 다가앉으며, 다정하게 얼굴을 바라보며 열띤 어조로 말하기 시작한다. (···)"뭣 때문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 거죠? 만일 자유의 몸이 된다면, 당신의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감옥에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셔야 해요! 그래도 이곳에선 자신의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젠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 다음에는 형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슈호프가 자유를 그리워한 것은 오직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단 한 가지 희망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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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슈호프는 소시지를 깨문다. 지근지근 씹어먹는다. 향긋한 고기 냄새가 난다. 고깃물! 진짜 고깃물이 입 안에 녹아든다. 아, 그리고 그것이 목구멍을 지나 뱃속으로 들어간다. 어느새, 소시지를 다 먹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내일 아침 작업장에 나가기 전에 먹기로 결정한다. (···)슈호프는 아주 흡족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오늘 하루는 그에게 아주 운이 좋은 날이었다. 영창에 들어가지도 않았고, 사회주의 생활단지로 작업을 나가지도 않았으며, 점심 때는 죽 한 그릇을 속여 더 먹었다.


* 찌부드드하던 몸도 이젠 씻은 듯이 나았다. 눈앞이 캄캄한 그런 날이 아니었고, 거의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날이었다. 이렇게 슈호프는 그의 형기가 시작되어 끝나는 날까지 무려 십 년을, 그러니까 날수로 계산하면 삼천육백오십삼 일을 보냈다. 사흘을 더 수용소에서 보낸 것은 그 사이에 윤년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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