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 <팡세>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83번.

by 이태연















39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 파스칼은 열두 살 때 유클리드 기하학의 32번 명제와 일치하는 원과 선을 그리며 놀 정도로 천재였다고 합니다. 「팡세」는 파스칼이 자신의 과학 논문, 기독교 호교론을 위한 수기 등을 모아, 인간의 언어로 신의 메시지를 담아낸 작품입니다.



<< 작가의 시선 >> - 파스칼은 평생을 걸쳐 기독교 호교론을 구상하지만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남기고 간 900여 개에 달하는 단장들은 인간의 공허, 비참, 숨은 신과 같은 중심적 주제들은 「팡세」안에서 미묘하게 교차되어가며, 다른 차원의 논리와 연계되어 재해석되어집니다. 1부 '신 없는 인간의 비참'은 인간성 그 자체에 대한 인간학의 고찰이고, 2부 '신 있는 인간의 복됨'은 인류 역사 가운데 나타난 구원의 진실에 대한 성서학적 고찰에 대한 방법론입니다.


* 어떤 일에 대해 타인의 판단을 물을 때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그래야만 상대방은 있는 그대로, 다시 말해 그 당시의 상태대로,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내지 않은 다른 상황들이 작용한 데 따라 판단할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덧붙인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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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상은 감정과 유사하면서도 반대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은 상반되는 이 둘을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은 자기 감정을 환상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사람은 자기의 환상을 감정이라고 말한다. 하나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 이성이 기준으로 자처하지만 이성은 어느 방향으로나 휘어진다. 그래서 기준이 없다.


* 일반적으로 사람은 타인의 머릿속에서 생겨난 이유보다 자신이 발견한 이유에 의해 더 잘 납득한다.


* 이성의 움직임은 완만하고 수많은 관점에서, 그리고 수많은 원리 위에서 이루어진다. (···)감정은 순식간에 발동하고 늘 움직일 태세가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의 믿음을 감정 안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비틀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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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상상력은 항상 현재를 생각하는 나머지 현재를 지나치게 확대시키고 또 영원을 생각하지 않는 탓으로 영원을 너무나도 축소시킨다. 그래서 영원을 허무로 만들고 허무를 영원으로 만든다.


* 다윗, 솔로몬 등은 <전공은 없다, 그러므로 신은 있다> 라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뒤이어 나타난 가장 지혜로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로웠음이 분명하다. 이들은 모두 자연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 자연은 모든 진리를 각기 그 자체 안에 두었다. 우리의 기교는 어떤 것들을 다른 것들 안에 포함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각각의 것은 그 자신의 자리를 간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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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을 알지도 않고 또 찾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들 자신이 스스로 돌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정하는 만큼 타인의 배려를 받기에도 합당치 않다.


* 종교는 존경할 만하다. 인간을 올바르게 이해하였으므로. 종교는 사랑할 만하다. 참된 행복을 약속하므로.


* 신이 있다는 것도 불가해하고, 신이 없다는 것도 불가해하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다는 것도, 우리에게 영혼이 없다는 것도 불가해하다. 세계가 창조된 것도, 창조되지 않은 것 등등도, 원죄가 있다는 것도,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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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것도 따로 있을 때는 웃기지 않은 닮은 두 얼굴이 함께 있으면 서로 닮은 것 때문에 웃긴다.


* 사람들은 지나가는 마을에서는 굳이 존경받으려고 마음 쓰지 않는다. 그러나 잠시라도 머물러야 할 때는 그렇게 되려고 마음을 쓴다. 얼마 동안이나? 헛되고 연약한 우리의 체류에 알맞는 한동안.


* 하찮은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하찮은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 정의와 진리는 매우 날카로운 끝과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도구들은 그것에 정확히 닿기에는 너무 무디다. 어쩌다 닿기라고 하면 끝을 으스러뜨리고 그 주변을 더듬으며 진실보다 허위를 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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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결코 현재에 매달리지 않는다. 우리는 마치 오는 것이 너무 더디기라도 한 듯, 그리고 그 걸음을 재촉하려는 듯 미래로 앞서나간다. (···)현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둔다. 그리고 현재가 즐거울 때는 사라져가는 것을 보고 아쉬워한다.


* 우리는 거의 현재를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와 현재는 우리의 수단이고 단지 미래만이 우리의 목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항상 행복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불가피하다.


* 인간의 헛됨을 완전히 알고 싶은 사람은 사랑의 원인과 결과를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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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을 걱정하지 않고 행복을 즐기는 비결을 발견한 <사람>은 요점을 찾은 셈이다. 그것은 계속적인 움직임이다. 지나치게 자유로운 것은 좋지 않다. 필요한 모든 것을 갖는 것은 좋지 않다.


* 우리의 본성은 움직임에 있다. 전적인 휴식은 죽음이다.


* 사람은 제각기 자신에게 하나의 전체이다. 그가 죽으면 그에게서는 모든 것이 죽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모든 사람에 대해 전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자연을 우리의 기준에서가 아니라 자연 자체로서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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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될 수 있는 한 침묵해야 하고 또 우리가 진리 되심을 아는 신과 대화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이를 스스로에게 확신시킨다.


* 내가 나의 존엄성을 찾아야 하는 것은 공간에서가 아니라 나의 사유의 규제에서이다. 많은 땅을 소유한다고 해서 내가 더 많이 갖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공간으로써 우주는 한 점처럼 나를 감싸고 삼켜버린다. 사유로써 나는 우주를 감싼다.


* 우리는 인간의 정신을 매우 위대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멸시당하거나 정신이 존중받지 못하면 참지 못한다. 인간의 모든 행복은 이 존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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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죽을 때 혼자일 것이다. 그러므로 혼자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면 호화스러운 집들을 짓겠는가. 그는 주저없이 진리를 추구할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진리의 추구보다 사람들의 존경을 더 중히 여긴다는 것을 나타낸다.


* 인간이 먼저 자신을 탐구하면 그는 그 이상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지를 알게 될 것이다. 어떻게 부분이 전체를 알 수 있다는 것인가. (···)사물들의 그 자체로서의 혹은 신 안에서의 영원성은 우리의 짧은 인생을 다시 놀라게 할 것이다.


* 모든 물체를 합친다 해도 사람은 그것으로 작은 생각 한 토막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다른 질서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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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 그리스도는 비천함(이 세상에서 칭하는 비천함의 의미로) 속에 있는 나머지 국가의 중대사만을 기록하는 역사가들이 거의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 것 외에 다른 일을 하지 않았다. 즉, 너희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였다. 너희들은 노예, 눈먼 자, 병자, 불행한 자, 죄인이었으며, 나는 너희들을 해방시키고 눈뜨게 하고 축복하고 치유해야만 했다. 이것은 너희들이 자신을 증오하고 또 십자가의 비참과 죽음을 통해 나를 따름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신인지 시험해 봄으로써 그가 사람임을 보여주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그가 사람임을 보여주는 데 있어, 그가 하느님임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어려움을 겪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들은 똑같이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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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성실한 인간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고 그 외의 모든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인간은 그 외에 어떤 것을 안다고 해도 성실한 인간이 되는 것만큼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배우지 않은 단 하나의 것만을 앎으로써 자랑스러워한다.


* 사람은 매일 먹고 잠자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굶주림과 잠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싫증날 것이다. 이렇듯, 영적인 것에 대한 굶주림이 없으면 사람은 그것에 대해 싫증을 느낀다. (···)세속적 도덕 안에서는 인간은 사랑 받으면서 동시에 행복할 수 없다.


* 신을 아는 것에서부터 신을 사랑하기까지는 얼마나 먼가! (···)사람은 오직 신의 사랑에서 멀어짐으로써 자기에게서 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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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일 때나 남이 보는 앞에서나 나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신의 시선을 간직한다. 신이야말로 이것들을 심판하실 분이고 나는 이 모든 행동을 그에게 바쳤던 것이다.


* 너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나와 비교하라. (···)나는 모든 것 안에서 신이다.


* 거짓 기적이 전혀 없다면 모든 것이 확실해질 것이다. 기적을 식별할 기준이 전혀 없다면 기적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믿을 이유도 전혀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인간적으로는 인간적인 확실성은 없다. 다만 이성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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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을 다소 풀어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큰 방종으로의 길도 연다. 그러니 그 한계를 정해야 한다. 사물에는 어떤 한계도 없다. 규범은 한계를 정하려고 하고 정신은 이것을 용인하지 못한다. (···)그릇된 정신의 소유자들이 많다.


* 인간은 욕구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은 그 모든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만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나의 모든 욕구에 전반적으로 응할 수 있는 교양인이다.


* 우리는 지성을 해치는 것처럼 감성도 해친다. 지성과 감성은 대화에 의해 길러진다. 또 지성과 감성은 대화에 의해 망가진다. 이렇듯 좋은 대화나 나쁜 대화는 지성과 감성을 기르거나 망가뜨린다. 이것들을 기르고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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