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것이 나를 가난하게 하는구나-<변신이야기1>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번.

by 이태연


















원제인 「메타모르포시스」는 사물이 비롯되는 정황을 설명하는 개념입니다. 방대한 그리스 신화와 당시 소 아시아의 설화, 트로이아 전사, 로마의 건국신화까지 한 줄에 꿰어 놓은 「메타모르포시스」는, 우리가 즐겨 읽는 토마스 벌핀치의 「그리스 · 로마 신화」의 길잡이가 되어줍니다.



<< 작가의 시선 >> - 카오스 이론을 시작으로 파에톤, 유피테르, 나르키소스와 에코, 메두사, 플루토, 미네르바 여신, 이아손과 메데이아 등 신과 영웅, 인간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펼쳐집니다.


【 모든 것은 카오스에서 시작되었다 】 - 바다도 없고 땅도 없고 만물을 덮는 하늘도 없었을 즈음 자연은, 온 우주를 둘러보아도 그저 막막하게 퍼진 듯한 펑퍼짐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 막막하게 퍼진 것을 카오스라고 하는데, 이 카오스는 형상도 질서도 없는 하나의 덩어리에 지나지 못했다.







20250115_150020.jpg 크로노스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의 속성)








* 대지와 바다와 공기를 이루는 요소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땅 위로는 걸을 수가 없었고, 바다에서는 헤엄칠 수가 없었으며 대기에는 빛도 없었다. (···)만물은 서로 반목하고 서로 방해만 했을 뿐이었다. 한 가지 질료 안에 있으면서도 추위는 더위와, 습기는 건기와, 부드러움은 딱딱함과, 무거움은 가벼움과 싸우고 있었다.


* 이 같은 반목에 종지부를 찍은 이는, 이런 요소들보다는 훨씬 빼어난 자연이라는 신이었다. 신에 다름아닌 이 자연은 하늘로부터는 땅을, 땅으로부터는 물을, 무주룩한 대기로부터는 맑은 하늘을 떼어놓았다. 자연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지경에서 이들을 떼어내고는 서로 다른 자리를 주어 평화와 우애를 누리게 했다.


* 이 조물주가 어떤 신이었든, 좌우지간 이 신은 혼돈을 이루고 있던 물질의 덩어리를 정리하고 구분하고 각각 그 있을 곳에다 배치한 뒤 우선 대지를, 어느 쪽에서 보아도 그 모양이 똑같도록 거대한 공꼴로 만들었다.







20250115_150714.jpg 은하수의 기원(루벤스)







* 신은, (···)다섯 권역의 하늘로 덮인 땅덩어리 역시 같은 권역으로 나누었다. 이로써 땅에도 다섯 지대가 생긴 셈이었다. 가운데에 위치한 지대는 너무 더워 산 것이 살 수가 없었고 양쪽 끝의 두 지대는 아주 눈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신은 그 사이에다 남은 두 지대를 두고 더위와 추위가 번차례로 들게 하여 산 것이 살기에 적당한 기후를 베풀었다.


* 모든 것들이 제 몫의 거처에 자리를 잡자, 오랫동안 혼돈의 덩어리 안에 갇혀 있던 별들이 하늘 하나 가득 찬연히 빛나기 시작했다. 빈 곳이 있으면 거기에 사는 것이 마땅한 법이다. 그래서 신들과 별들이 천상에 자리를 잡았다.


* 인류가, 인간이 창조된 것은 이즈음이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이 머리를 늘어뜨린 채 늘 시선을 땅에다 박고 다니는 데 비해 머리가 하늘로 솟아 있어서 별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도 있었다. 이로써, 모양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흙덩어리였던 대지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품안에 거느리게 된 것이다.







20250115_150649.jpg 나무로 변하는 다프네








* 처음은 황금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는 관리도 없었고 법률도 없었다.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알아서 서로를 믿었고 서로에게 정의로웠다. 이 시대 사람들은 형벌을 알지 못했고 무서운 눈총에 시달리지 않아도 좋았다. (···)마지막으로 온 시대는 철의 시대다. 이 천박한 금속의 시대가 오자 인간들 사이에서는 악행이 꼬리를 물고 자행되기 시작했다.


* 인간은 순결, 정직, 성실성 같은 덕목을 기피하고 오로지 기만과 부실과 배반과 폭력과 탐욕만을 좇았다. (···)금속이 나돌자 사사로운 싸움은 곧 전쟁으로 번졌다. 전쟁이 터지자 사람들은 피 묻은 손으로 무기를 휘둘렀다. 약탈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도 생겨났다.


* 유피테르는 천상의 옥좌에서 이 꼴을 내려다보고는 탄식하여 마지않았다. (···)"나는, 인간이 모두 한통속으로 결탁하여 죄업을 쌓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오만 그대들도 내 의견에 동의할 테지요? 나는 지금 당장, 죄값을 받아 마땅한 이들을 칠 것이오."







20250115_150124.jpg 포르투나(fortune)








* 유피테르는 물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피테르는 그 많던 사내들 중에서 오직 하나, 그 많던 여자들 가운데서 오직 하나만 살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이 둘에게는 지은 죄가 없다는 사실을, 이 둘이야말로 직심스럽게 신들을 섬겨온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 세상은 원래 모습을 되찿았다. 데우칼리온은 적막에 잠긴 이 황폐한 땅, 공허한 땅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는 아내 퓌라에게 말했다. (···)"이제 인류의 운명은 우리 둘에게 달려 있다. 이것이 신들의 뜻. 우리는 인류의 본으로 남은 것이다."


* "여신의 뜻이 이르시는 어머니는 곧 대지일 것이요, 어머니의 뼈는 곧 돌이 아닐는지" (···)돌은 금방 그 딱딱한 본성을 누그러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에는 말랑말랑해지기 시작했다. (···)지아비가 던진 돌은 남자의 형상을 얻었고 지어미가 던진 돌은 여자의 형상을 얻었다.







20250115_150159.jpg 유피테르와 에우로파







【 미소년 나르키소스와 에코 】


* 리리오페는, 강보에 싸여 있는데도 보는 사람의 얼을 뺴놓을 만큼 잘생긴 이 아기, 그래서 망연자실, 그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라보게 하는 이 아기를 <나르키소스(망연자실)>라고 이름했다. (···)테이레시아스는 이렇게 말했다. "천수를 누릴 게요. 이 아기가 저 자신을 알지 못한다면 말이오."


* 에코는 동무들과 헤어져 인적 없는 숲속으로 혼자 들어온 이 나르키소스를 보고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에코는 먼저 말을 걸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제 목소리로 마지막 한마디를 되울릴 준비나 하고 기다렸다.


* 에코는 숲속에서 뛰어나와 나르키소스의 목을 껴안았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늘 그래왔듯이 이 요정에게서 도망치며 소리를 질렀다. "이 손 치워! 차라리 죽지, 너 같은 것의 품에 안겨?" "안겨······" 에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게 말하고는, 나르키소스로부터 당한 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숲속으로 들어가 나뭇잎으로 얼굴을 가렸다.







20250115_150232.jpg 에코와 나르키소스







* 에코는 하루가 다르게 여위어갔다. 나날이 수척해지면서 온몸에 주름살이 생겨나기까지 했다. (···)에코의 아름답던 몸은 그만 한줌의 재로 변하여 바람에 날려가고 말았다. 남은 것은 뼈뿐이었으나 곧 이 뼈도 가루가 되어 날아가 버리자 마지막으로는 소리만 남았다. (···)에코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나 목소리를 들었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 나르키소스는 이로써 에코의 사랑을 농락한 셈이었다. 물의 요정, 숲의 요정, 그리고 수많은 동남동녀들을 그렇게 했듯이 나르키소스는 이 에코까지 박대한 것이었다. 나르키소스로부터 박대받은 이들 중 하나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벌리고 이렇게 기도했다. "저희가 그를 사랑했듯이, 그 역시 누군가를 사랑하게 하소서. 하시되 이 사랑을 이룰 수 없게 하소서. 이로써 사랑의 아픔을 알게 하소서."







20250115_150335.jpg 다나이스(로댕







* 마른 목을 축이려고 샘물을 마시던 나르키소스는 또 하나의 참으로 이상한 갈증을 느꼈다. 물에 비친 아름다운 영상이 기이한 그리움을 지어낸 것이었다. 그는 물에 비친 그림자를 실체로 그릇 알고 그 그림자에 반해버린 것이었다.


* 그가 사랑하는 대상은 물론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좇는 동시에 좇기고 있었다. 그는 격정으로 타오르는 동시에 태우고 있었다. (···)그대가 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돌아서보라. 그러면 그대가 사랑하던 영상 또한 사라진다. 그대가 보고 있는 것은 그대의 모습이 비춰낸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다.


* 배고픔도 졸음도 나르키소스를 거기에서 떼어놓지 못했다. 그는 그저 샘가 풀밭에 배를 깔고 엎드려 실상이 아닌 그 그림자의,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는 눈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몸을 일으킨 그가 손을 내밀어 주위의 숲을 가리키며 외쳤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보는 내 사랑이, 나는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마침내 닿지 못하는구나. 이를 어쩌면 좋은가? 내 사랑이 나를 피하는구나. (···)내가 지금껏 보아오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이었구나."







20250115_150521.jpg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앵그르)







*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었구나.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의 불길에 타고 있었구나. 나를 태우던 불길, 내가 견디어야 했던 그 불····· 그 불을 지른 자는 바로 나였구나. (···)사랑을 구하여야 하나? 사랑받기를 기다려야 하나. 사랑을 구하여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 구하는 것이 내게 있는데······ 내게 넉넉한 것이 나를 가난하게 하는구나." (···)희디흰 살갗도 그 빛을 잃어갔고, 젊음의 혈기도 그에게서 빠져나갔다. 제 눈으로 그렇게 정신없이 바라보던 저 자신의 아름다움도 그의 몸을 떠났다.


* 곧 죽음이 찾아와 아름답던 그의 눈을 감기었다. 사자들의 나라로 간 뒤에도 그는 계속해서 스튁스 강에 비치는 제 모습을 바라보았다. (···)관이 준비되고 화장단이 마련되고, 불을 붙일 횃불까지 만들어졌지만, 나르키소스의 시신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요정들은 그의 시신 대신 흰 꽃잎이 노란 암술을 싸고 있는 꽃(수선화) 한 송이를 찾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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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을 나는 다이달로스와 이카로스 】


* 다이달로스는 (···)아들 몫의 날개도 만들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카로스, 내 아들아. 내 단단히 일러두거니와 하늘과 땅의 한 중간을 겨냥하여 반드시 그 사이로만 날아야 한다. 너무 올라가면 태양의 열기에 깃이 타버릴 것이요,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에 젖어 깃이 무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꼭 하늘과 바다 한 중간을 날도록 하여라." (···)손으로는 날개를 조종하고 시선은 뒤따라오는 아들에게 둔 채 비행 기술을, 오래지 않아 아들의 목숨을 앗아가게 될 비행 기술을 가르쳤다.


* 빈 하늘을 날고 싶다는 욕심에 사로잡힌 그는 아버지 곁을 떠나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얼마나 높이 솟았는가 하면, 태양의 열기에 날개에 붙인 밀랍이 말랑말랑해지리 때까지 솟아올랐다. 그러자 밀랍이 녹았다. 밀랍이 녹았는데 깃이 붙어 있을 리 없었다. 이카로스는 맨팔 맨다리를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깃 없이 사지만 허우적거려봐야 아무 소용도 없었다. 이카로스는 아버지를 부르며 바다로 내리박혔다. (···)아버지가 자식을 불렀다. "이카로스, 이카로스, 어디에 있느냐? 내가 어디서 너를 찾아야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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