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45번.
지도에도 없는 작은 마을 마차오 사람들의 언어는 그들의 삶을 대변하는 동시에, 정의하고 규정지으며, 예언하는 역할을 해냅니다. 커커스리뷰는 "언어와 사상을 통제하려는 전체주의적인 시도가 얼마나 부질없는지 교묘하고도 효과적으로 비판한 작품"이라고 극찬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언어공동체인 마차오 사람들에게 언어는 신분, 지위, 권력 등이 투사된 강력한 힘으로 작용합니다. 어떤 말이든지 누가 발설했는지에 따라 경중이 나누어지며, 말발이 서지 않는 말은 말이 아닌 것으로 간주해버리고, 판단을 유보할 때는 애매모호한 화법을 사용합니다.
* 언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류가 자신에 대한 인식을 포기하고 스스로 무참한 패배를 시인하는 것이자 어떤 거대한 위험의 존재를 암시하기도 한다. 언어는 인간과 세상을 연결한다. 이런 연결이 끊어지거나 사라진다는 것은 세상에 대한 인간의 통제력 상실을 의미한다.
* 언어는 통제력 자체라고 말할 수 있다.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세상은 통제 불가능한 세상이다. 사회학자들이 '주변인(marginal man)'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주변인이란 주로 다른 문화권에 편입한 사람들, 예를 들어 도시에 간 시골 사람이나 모국을 떠난 이민자들을 뜻한다. 이런 이들이 부딪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바로 언어이다. 돈이나 권력을 지녔는지와 상관없이 만약 그들이 새로운 언어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새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뿌리가 없거나 의지할 곳이 없는 느낌 또는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세상에는 일은 있지만 말이 없거나, 말은 있는데 이에 관련된 일이 없는 등 무질서하고 불균형이 심한 상황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 은밀하게 끼어들어 있는 언어의 군더더기나 잔해에는 수많은 겸사나 치사가 있다. 결코 한꺼번에 정리되거나 매장될 수 없다. 오히려 특정 상황에서 그것들은 갑자기 대거 몸집이 불어나 인류의 미덕을 드러내는 '의미가 증폭된 언어'가 되거나 인류의 가혹함을 숨기는 '언어 성형'이 되기도 한다. 처세에 능한 사람들은 항상 이에 충분히 준비한다. (···)처세는 쓸모 없는 말을 운용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 작가들은 자꾸만 과거를 되돌아보며 과거의 일,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쓴다. 그러나 사실 그들의 글자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에는 모두 지금이 개입되어 현재의 사유와 감정으로 가득 차 있으며 끊임없이 '현'을 말한다. 작가들은 과거의 현재, 현재의 과거를 찾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영원히 시간의 오버랩 속에서 생활한다. 그들은 시간을 발견하려고 애쓰면서도 근본적으로 시간을 거절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드러낸다.
* 돼지나 소를 도살하는 피비린내 나는 일을 마차오 사람들은 '방전생(放轉生)'이라고 부른다. 도살이 깨끗하고 고상한 일인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말이다. 노인네들이 말하는 것처럼 짐승도 분명 생명이다. 그들은 전생의 업보로 인해 현세에 벌을 받느라 고생이 말이 아니다. 그러니 그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환생하도록, 하루라도 빨리 고난의 바다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따라서 짐승을 도살하는 일은 그들에게 크나큰 덕을 베푸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 이렇게 생각하면 도살을 맡은 사람은 당당하게 짐승을 죽일 수 있고, 식객들은 입에 온통 기름을 묻혀 가며 고기를 먹어도 마음이 편할 것이다. 언어는 사람의 느낌을 바꿀 수 있다. 언어 표현에 따라 도살장에서 짐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측은한 마음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고 때로는 아예 슬프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수도 있다. 피로 홍건한 도살 현장에서 멀뚱한 짐승들의 두 눈을 바라보면서도 전혀 슬픈 감정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 역사는 다만 언어의 전쟁을 벌인 것일까? (···)인류에게 언어가 생긴 이후 끊임없는 논쟁과 전쟁 등 인간들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으며 언어로 인한 피맺힌 사건이 계속해서 빚어진다. 나는 이를 언어의 마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감히 범할 수 없는 신의 자리에 진입한 언어들이 한순간에 본래 지녔던 사실 관계를 상실하고 전쟁을 주도하는 이들의 권위와 영예, 재산과 왕국의 판도를 위한 무의미한 포장이 되고 말았다다고 할 수 있다.
* 언어에 대한 광적인 도취는 일종의 문명병으로 언어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위험 지대이다. (···)일단 언어가 더 이상 진리를 추구하는 도구이기를 거부하고 진리 자체가 되거나 언어 사용자의 얼굴에 유아독존이 드러날 때, 타인에 대한 무정한 토벌을 의미하는 언어의 광적 도취 상태가 드러난다는 사실을 깊이 명심하고 경각심을 지니게 되었다는 뜻이다.
* 20세기에는 또한 무수한 전파 매체와 언어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텔레비전, 신문, 인터넷을 비롯해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도서가 출간되고 거의 매주 새로운 철학과 유행어를 양산한다. (···)이들 언어 중 일부가 또다시 새로운 전쟁을 촉발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단 말인가? 언어에 대한 집착과 광기는 문명병의 일종으로 언어의 가장 흔한 위험이다.
* 모든 언어는 그저 언어에 불과하다. 언어는 사실을 묘사하는 부호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모든 시계가 시간을 나타내는 부호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시계가 시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만들어 내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시계는 여전히 시간이 될 수 없다. 설사모든 시계가 부서진다 해도, 설사 시계를 만드는 모든 도구가 부서진다 해도 여전히 시간은 흐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언어가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모두 백화라고 말할 수 있으며, 언어의 작용 역시 지나치게 과장할 수 없다.
<페이지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