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44번.
'사전'이라는 명칭이 붙은 소설이지만 마차오의 방언을 모은 사전이기도 합니다. 마차오의 어휘 115개를 중심으로 구성된 짧은 단편들은, '해석'이 아닌 '서사'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역사 속에서 살았지만 한 번도 역사가 된 적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 작가의 시선 >> - 마차오는 변방에서도 한참 외떨어진,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벽촌입니다. 고립된 공간을 살아가는 마차오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으로 여기고 주변을 오랑캐로 간주합니다. 때문에 이들이 사용하는 사투리는 같은 글자여도 표준어와 전혀 다른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 마차오의 물길은 뤄장강으로 흘러든다. (···)홍수가 지면 누런 강물이 온통 세상을 뒤엎을 듯 넘실거려 (···)강가는 더욱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상류에서 떠내려오는 죽은 닭이나 돼지, 부서진 탁자나 낡은 나무 대야 또는 끈 떨어진 대쪽을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건져 집으로 가져가면서 '홍수 횡재'를 했다며 흥겨워한다.
* 마차오 사람들의 맛 표현은 매우 단순하다. 맛있는 음식을 말할 때면 무조건 '달다'라고 표현한다. (···)'달다'라는 표현은 음식에 대한 마차오 사람들의 무감각, 이에 대해 그들이 지닌 지식과 한계를 말해 준다. 세심하게 살펴 보면 사실 누구나 무딘 부분이 여러 가지 있기는 하다. (···)인간의 미약한 의식의 등불이 세상의 모든 구석을 환하게 밝힐 수는 없다.
* 마차오 사람들에게는 동족, 종친, 동포 같은 개념이 없다. 동포 형제도 그들은 '한솥밥을 먹는' 형제라고 부른다. 남자가 재혼하면 전처를 '헌 솥 마누라'라고 부르며, 아내가 죽은 후 새로 장가를 들어서 얻은 여자를 '새 솥 마누라'라고 부른다. 이런 표현으로 볼 때 그들이 한솥밥을 먹는 것, 즉 밥을 먹는 문제를 혈연관계보다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일곱 명이 한집에 살면서 한솥밥을 먹었다. 일곱 사람이 각기 성씨가 다르고 혈연관계가 전혀 없어도 마차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한솥밥'이 그들이 여러가지 중요한 일을 처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
* 마차오 사람들이 볼 때 깨어남이란 우둔함이며, 잠을 잔다는 것은 총명함을 의미한다. 처음 마차오에 온 외지인의 귀에는 이렇게 의미가 뒤바뀐 단어가 자꾸만 귀에 거슬린다. 총명함과 우둔함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고 기준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차오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에서 출발해 '깨다'라는 말과 '자다'라는 단어를 이용해 독특한 은유를 할 언어적 권리가 있다는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 역사가 하나씩 막을 내린 후 수많은 사람들의 수없이 많은 지혜와 재주가 결국 황당한 것이 되어 버리고, (···)수많은 정열이 결과적으로 죄악이 되고 말았을 때, 마밍처럼 멀찌감치 떨어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방관자는 오히려 청결한 몸을 지닌, 적어도 두 손에 피를 묻힌 적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 된다. (···)그렇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인가, 아니면 영리한 사람인가? 도대체 그는 '깬' 사람인가, 아니면 '자는' 사람인가?
* 숨이 끊어지다, 만사를 끝내다 등은 '흩어지다'의 동의어이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단순하고 천박한 느낌이 들어 '흩어지다'처럼 정확하고 생동감 있으며 세심하게 죽음의 과정을 보여 주지 못한다. 생명이 끝났다는 것, 이는 생명을 구성하는 모든 원소가 분해되고 흩어진다는 의미이다.
* 계절은 순환하고 시곗바늘 역시 계속해서 돌아가지만 오직 모든 생명의 흩어짐만은 되돌릴 수 없는 직선으로 시간의 절대성을 일깨워 준다. (···)말이 모여 사상을 이루고, 매일매일이 모여 역사를 이룬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가족, 정당 또는 제국을 이룬다. 일단 취합의 역량이 약화되면 그것은 바로 죽음의 시작이다.
* "매일 텔레비전을 보면 마음이 커져서 흩어져 버리는 것 아냐?" (···)모든 흩어짐을 대하는 그들의 모습, 예를 들어 텔레비전 앞에서 분방해지는 사람들의 상태, 더 큰 세계와 어우러지는 상태에 대해 마차오 사람들이 갖는 고집스러운 경각심을 느낄 수 있다.
* 예전에 나는 시간이란 (···)평균에 따라 할당된 네모반듯한 투명 액체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사실 그건 우리 육체가 느끼는 시간일 뿐이었다. 예를 들면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죽는 것은 차례차례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사람은 나무가 아니며 더더구나 돌이 아니다. 아마도 물질적 시간 외에 사람에게 더욱 의미 있는 것은 마음의 시간일 것이다.
* 시간이 (···)오히려 세월이 갈수록 더욱 짧아지고 갈수록 더욱 수축되면서 결국 거의 '영'의 상태가 되어 눈 깜짝할 사이에 그림자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거울 속 노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두려움으로 두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 인간의 시간은 오직 감각과 인지 속에서만 존재한다. (···)병상에 누워 있는 식물인간에게 진정한 의미의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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