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글귀로 세계문학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28번.
쿠오 바디스(Quo Vadis Domine?)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의미입니다. 도피 중이던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던졌던 이 질문은, 혼돈의 시대를 향해 던지는 영원한 화두로 자리 잡게 됩니다. 라틴어로 씌어진 고전 읽기가 취미였던 작가는 L. 윌러스의 「벤허」에서 영향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합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 이 소설은 영화로도 3회나 제작됩니다.
<< 작가의 시선 >> - 로마의 귀족 청년 비니키우스는 인질로 잡혀온 그리스도교도인 리기아에게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삼촌의 도움으로 리기아를 집으로 데려 오려다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리기아를 빼앗기게 되자, 그녀를 되찿으러 갔다가 부상을 당합니다. 그곳에서 그리스도교도들의 간호를 받으며 리기아를 다시 만나게 된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속으로 스며들어갑니다.
* 어차피 이 세상은 '기만'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져 있고, 인생이란 한낱 환상에 불과한 것. (···)하지만 우리는 이로운 환상과 해로운 환상을 구별할 만한 이성을 가져야 한다.
* 그녀에게 그곳은 불가사의한 세계였다. 그 화려함은 눈을 즐겁게 해주었으나 그곳에 감춰진 갖가지 모순된 진실들은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어린 처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노을이나, 멀리 아득하게 줄지어 서 있는 끝없는 원주의 행렬에서, 또한 조각상들을 닮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언뜻 거대한 평화의 기운이 느껴졌다.
* "저 사람들도 내일이면 당장 사형 선고를 받게 될지도 모르는 운명이죠. (···)겉으로는 월계관을 쓰고 한가하게 신선놀음하는 것 같지만, 실은 공포와 탐욕과 질투가 그 마음을 할퀴고 있을지도 모른답니다." 리기아는 너무 놀라서 악테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휘황찬란한 세계는 점점 더 강하게 그녀의 눈길을 끌었지만, 마음은 겁게 질려 질식할 것만 같았다.
* "그리스도에게 영광!" (···)어디선가 리기아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만 같아, 비니키우스의 가슴은 설레었다. 리기아와 닮은 자태, 비슷한 몸짓이 어둠 속에서 자꾸만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오로지 리기아만을 생각하고 있는 비니키우스에게는 그녀와 같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가장 위대한 사도로부터 설교를 듣기 위해 이처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모여드는 것이 도무지 불가사의하게만 여겨졌다.
* 비니키우스는 노인이 들여준 삶, 진리, 사랑, 신에 관한 모든 내용을 처음부터 찬찬히 되새겨 보았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부신 광채를 쳐다본 사람처럼 그의 사고는 그 찬란한 빛을 받고 혼란에 빠졌다. 삶 전체가 송두리째 한 가지 열정에 얽매여 버린 인간들이 흔히 그렇듯이 오직 리기아에 대한 사랑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판단하던 비니키우스는 이 번갯불과도 같은 빛줄기 속에서 한 가지 사실만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 비니키우스는 리기아가 믿고 있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종교가 자기와 리기아 사이에 파놓은 넘을 수 없는 심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비니키우스는 이제야 리기아를 다른 여자들과 다르게 보이게 했던 것이 바로 그녀의 종교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리기아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그 사랑 때문에 신앙을 버리지는 않으리라.
*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 리기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녀는 슬픔과 연민이 가득한 얼굴로 거기에 서 있었다. 비니키우스는 그녀의 모습을 자신의 눈동자에 담아두려는 듯 하염없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비니키우스는 자기가 영원히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 "당신은 행복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이상, 불행해지지는 않는답니다." 비니키우스는 인간의 이성을 초월한 어려운 이야기를 들은 듯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 비니키우스의 마음속에는 어느덧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어쨌든 리기아가 믿고 있는 종교였기에, 오직 그 이유만으로 (···)비니키우스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탄생과, 그가 부활했다는 얘기, 그 밖의 온갖 기적에 대해서도 의심하지 않았다.
* 그는 결국 자기와 리기아를 갈라놓고 있는 원흉은 바로 이 종교라고 결론지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는 마음속 깊이 그리스도교를 증오했다. 그러나 이 종교야말로 비니키우스로 하여금 리기아를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볼 수 있게 해 준 원천이 아니던가. 이 종교 덕에 리기아를 향한 비니키우스의 마음에는 어느덧 애정보다는 존경이, 욕망보다는 찬미의 마음이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다시 그리스도를 경애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기도 했다.
* 그리스도를 사랑하든지, 아니면 미워하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서 비니키우스의 이성과 감정은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리기아의 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비니키우스는 때때로 바오로를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오로의 설교는 그의 마음에 호기심과 경외심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바오로의 가르침에 대한 반론을 세워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 비니키우스는 머리로 뜨거운 피가 솟구쳐 올랐다. (···)"저는 향연과 술, 노래, 악기연주와 화환에 싫증이 나고, 황제의 궁궐과 나체의 여인들, 그 밖에 모든 죄악에 구역질이 납니다. 리기아가 높은 산봉우리에 쌓인 깨끗한 눈처럼 순결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욱더 그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저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미친 사람'이라 욕하는 말도 들었습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 퍼뜨리려는 건 대체 무엇인지 가르쳐주십시오. (···)저를 뒤덮고 있는 이 암흑의 장막을 부디 걷어내 주십시오."
* "우리 모두가 인간의 무수한 언어로 말을 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한낱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바 없습니다." 늙은 사도는 조롱에 갇힌 새처럼 넓은 창공과 태양을 갈망하며 괴로워하는 젊은 영혼을 보고 가슴속 깊이 감동했다. 그는 비니키우스에게 두 손을 내밀며 말했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 베드로의 가슴에는 기쁨이 넘쳐흘렀다. 그가 뿌린 새로운 씨앗이 새 밭에 떨어져 새싹을 틔웠고, 그가 던진 그물로 또 하나의 영혼을 건졌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니키우스는 환하게 밝아진 얼굴로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이제 알겠습니다. 제가 지금 이렇게 행복하니 여러분에게도 행복의 기운이 고스란히 전해지나 봅니다. (···)이젠 저도 깨달았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지낸 순간처럼 행복한 시간은 제 인생에서 아직까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페이지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