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여,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쿠오 바디스2>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29번.

by 이태연



















작가는 화가 시에미라츠키가 기독교 신자들의 박해와 네로 시대를 소재로 그린 유화에서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됩니다. 비니키우스와 리기아의 낭만적 사랑은, 역사적 사건(로마 대화재. 그리스도교 학살)과 어우러져, '진리의 힘은 불멸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 작가의 시선 >> - 로마에 대화재가 발생하자, 비니키우스는 감옥에 갇혀 있는 리기아를 구해내려 애써보지만 실패합니다. 수천 명의 기독교도들이 경기장 안에서 무참히 죽어가고, 들소의 뿔에 매달린 채 죽음의 위기에 처했던 리기아는 우르수스의 도움으로 죽음을 면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로마에 불을 질렀다고 밀고했던 킬로는, 기독교도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가책을 느껴, 진실을 말한 후 죽게 됩니다. 광포함의 극치에 다다랐던 네로는 자신의 목을 칼로 찌릅니다.

* 어찌하여 하느님께서는 악마들에게 이런 큰 힘을 허락하셨을까? 왜 악마에게 세상을 맡기시어 마음대로 주무르게 하실까? (···)"주여! 제가 무엇부터 시작하면 좋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 도시의 악을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하는 베드로의 은백색 머리가 떨리고 있었다.






20250312_174836.jpg








*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사자 밥으로!" 라는 고함 소리는 로마의 모든 지역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이제는 아무도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방화범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출입문이 열리자 관람객들이 경기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사람 냄새를 맡은 맹수들이 울부짖는 소리가 더욱 커졌다.

* 수십 마리의 개가 마치 성벽의 갈라진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듯 한꺼번에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돌진했다. 관중은 그 놀라운 광경에 정신이 팔려 입을 다물었다. 들개들이 사납게 날뛰는 중에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라는 남녀노소의 애절한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 경기장에는 이제 사람과 개가 몸뚱이가 한 덩어리가 되어 곳곳에 뒤엉켜 있었다. 갈기갈기 찢겨진 몸에서 피가 냇물처럼 흘러나왔다. 피투성이가 된 인간의 팔다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개들끼리 다투기도 했다. 개들의 이빨에 물어뜯긴 오장육부의 냄새와 피비린내가 아라비아 산 향유보다 더 강하게 경기장 전체를 메웠다.








20250312_174908.jpg









* 들소가 머리 위에 여자의 나신을 얹고 모래밭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 나왔다. "아아, 리기아! 리기아!" 비니키우스는 관자놀이 부근의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쥐어뜯으며, 날카로운 창에 찔린 사람처럼 몸을 활처럼 구부리고는 (···)쇳소리를 내면서 울부짖었다. "믿습니다! 믿습니다! 그리스도여, 기적을 베풀어주십시오."

* 경기장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리기 족 사나이는 버둥거리는 들소의 뿔을 꽉 붙잡고 있었다. 두 발은 복사뼈까지 모래밭 속에 파고들었고, 잔등은 팽팽한 활처럼 둥글게 휘어져 있었다. 머리는 두 어깨 사이에 파묻히고, 두 팔에는 힘줄과 근육이 불거져 나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거인은 그 자리에 계속 버티고 서서 들소를 꼼짝 못하게 누르고 있었다.

* 사람과 들소가 꼼짝도 하지 않자, 관중은 마치 돌에 새긴 헤라클레스와 테세우스의 씨름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20250312_174846.jpg








* 별안간 모래밭에서 신음과 같은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관중은 놀라서 비명을 질렀으나 (···)

들소의 목뼈가 우두둑 하며 으스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야수는 목이 부러진 채로 모래밭에 고꾸라졌다. 거인은 순식간에 들소의 뿔에 묶여 있던 여자를 풀어 두 팔에 안고 가쁜 숨을 연거푸 몰아쉬었다.

* 잠시 넋이 빠진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우르수스는 이윽고 눈을 들어 관객을 둘러보았다.

(···)주위를 둘러본 다음, 황제가 앉아 있는 귀빈석 앞으로 다가가 두 팔에 안고 있는 여자의 몸뚱이를 흔들어 보이면서 간절한 애원의 눈길을 보냈다.

* 군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그 함성 속에서 간간이 "붉은 수염! 제 어미를 죽인 놈! 방화범!" 하는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네로는 깜짝 놀랐다. 경기장에서는 관중이 전권을 쥐고 있었다. (···)결국 네로는 마지못해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 구명의 신호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우레와 같은 갈채가 관람석의 위쪽에서 아래쪽으로 울려 퍼져 온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관중은 비로소 죄수들의 생명을 건졌다는것을 확신하고 만족스러워했다.






20250312_174858.jpg









* 비니키우스와 리기아는 베드로 사도의 머리가 전보다 더 하얗게 세고, 등이 굽어 있는 것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네로의 광기와 분노로 인해 수많은 희생자들이 당한 그 모든 핍박과 수난을 자기도 직접 겪은 듯 사도의 얼굴에는 깊은 비애와 고통의 빛이 새겨져 있었다.

* '주여, 제가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제가 무슨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늙고 힘없는 제가 주께서 지배와 정복을 허용하신 저 무지막지한 악마를 상대로 과연 싸울 수 있겠습니까?' 베드로는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의 밑바닥에서 이렇게 부르짖으며 하느님에게 호소했다.

* 베드로는 갈등했다. 살아 있는 진리는 사라질 리 없으며, 반드시 승리할 것임을 그는 믿고 있었다. 한편 사도는 그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을 뿐, 심판의 날에 네로와는 견줄 수도 없는 강력한 힘을 지니시고 영광에 싸여 주님께서 지상에 강림하실 때 그리스도 왕국은 틀림없이 실현되리라는 것도 확신하고 있었다. (···)베드로의 두 뺨에 눈눌이 흘러내렸다.






20250312_174750.jpg








* 베드로 사도의 손에서 지팡이가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서 입을 벌린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환희, 그리고 황홀한 빛이 떠올랐다. (···)"오, 그리스도여! 그리스도여!" 마치 누군가의 발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사도는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렸다. 오랫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늙은 사도가 흐느끼는 소리로 말했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

* 베드로는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집어 들고 말없이 일곱 언덕이 우뚝 서 있는 로마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자 소년은 사도를 향해 베드로가 방금 전에 한 말을 메아리처럼 되풀이했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 "로마로!" 사도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 베드로는 황제도, 그의 군단도 살아 있는 진리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만다는 것, 그리고 피도 눈물도 그 진리를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는 비로소 주님이 왜 자기를 다시 로마로 돌려보내셨는지 알 수 있었다. 오만과 죄악, 타락과 폭력의 소굴이었던 로마가 서서히 그리스도의 도성으로 변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20250312_174926.jpg









* 로마는 여전히 광란에 들떠 있었다. 세계를 정복한 대도시의 아성도 올바른 지도자가 없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네로는 자기를 파묻을 구덩이를 파라고 명령했다. 자기 몸에 맞는 크기로 구멍을 파게 하기 위해 네로는 땅바닥에 직접 드러눕기도 했다. 그러나 곡괭이질을 할 때마다 흙이 튀자 갑자기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네로는 비장하게 단도를 꺼내 들고 떨리는 손으로 자기 목을 찔렀으나 살짝 스치기만 했을 뿐이었다. 차마 칼을 목에 찔러 넣을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기색이 엿보이자 곁에 있던 에파프로디투스가 네로의 손을 잡고 가차없이 단도를 깊이 찔러 넣었다.

* 네로는 돌풍처럼, 천둥처럼, 불길처럼, 전쟁처럼, 그리고 역병처럼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갔다. 그러나 베드로의 대성당은 지금도 바티카누스 언덕에서 로마와 온 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예전의 카페나 성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것에는 조그만 성당이 하나 서 있다. 성당 입구에는 닳아서 희미해지기는 했지만,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쿠오 바디스 도미네."























<페이지생략>

32463718895.20230509164824.jpg?type=w300


이전 01화두드려라, 그러면 열리리라 - <쿠오바디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