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빛을 따라다니는구나-<필경사 바틀비>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450번.

by 이태연












「필경사 바틀비」는 소외된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한계를, 「선원 빌리 버드」는 법과 윤리의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심도 있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와 더불어 멜빌은 세계가 두려워하는 작가이다." D.H. 로렌스의 말입니다.

【 필경사 바틀비 】 - 윌스트리트의 변호사인 '내'가 새로 고용한 필경사 바틀비는,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라는 말로 모든 업무를 거부하며 오로지 필사에만 매달립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필사를 거부하고,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거부하고, 사무실에서 떠나기를 거부합니다. 결국 바틀비를 대신해 '내'가 사무실을 떠나고, 새 소유자에 의해 바틀비는 감옥에 가게 됩니다.

* 바틀비 군은 엄청난 양의 필사를 해냈습니다. 필사에 오랫동안 굶주렸던 듯 서류들을 마구마구 집어삼키는 것이었습니다. 소화를 위한 휴식 같은 것은 없었죠. (···)바틀비 군은 필사 작업을 하는 내내 말이 없었고, 창백했으며, 기계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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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담당하고 있던 작은 서류를 급하게 마감해야 해서 갑자기 바틀비 군을 불렀습니다.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아니 얼마나 경악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바틀비 군이 자기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않은 채 유난히 차분하고 확고한 목소리로 대답했던 것입니다. "전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 저는 바틀비 군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습니다. 식사를 하러 나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사실 그 어디에도 나가지 않았지요. 여태껏 사무실 바깥으로 나가는 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바틀비 군은 그 구석에 배치된 근무 교대 없는 보초였습니다.

* 꾸준함과 최고의 작업 효율성, 간단 없는 근면성, 더할 나위 없는 정숙성, 어떤 경우에도 한결같은 처신 등을 고려해 볼 때, 바틀비 군은 저로서는 꽤 유용한 직원이었죠. 가장 소중한 자질은 바로, 언제나 사무실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전 바틀비 군이 정직하다는 사실에 각별한 믿음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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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일요일 아침, 전 (···)잠시 사무실까지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열쇠가 제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열쇠를 꽂아 보니 안쪽에서 집어넣은 뭔가로 열쇠 구멍이 막혀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저는 안에 누가 있느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비죽이 열린 문을 잡고 서 있는 것은 바틀비 군의 유령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 바틀비군이 한동안 제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옷 갈아입어 왔다는 것을, 그것도 접시도, 침대도, 거울도 없이 그래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고립도 이런 고립이 있을 수 있나! 얼마나 외롭고 비참했을까! 가난도 가난이지만, 그 고독감이라니 얼마나 지독했을까!

* 저는 같은 인간이라는 유대감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우울함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브로드웨이 거리를 백조처럼 유유히 흘러가던 사람들, 창백한 필경사 바틀비 군과 이들의 모습을 나란히 떠올리고는 생각했죠. 아, 행복은 빛을 따라다니는구나.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이 즐겁다고 생각하는 거야. 불행은 저 먼 곳에 숨어 있어. 그래서 불행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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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정말이지 내가 저 미친놈을 없애 버려야겠어. 이미 나나 직원들의 말투를 바꿔 놓았잖아. 이러다간 우리 머리까지 돌아 버리게 할지도 몰라. (···)다음 날 바틀비 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막다른 벽 앞에서 명상에 잠겨 자기 창문 앞에 서 있기만 했습니다. 왜 필사 작업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이제 필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답했습니다. (···)전 고함을 질렀습니다. "필사를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더 이상 안 합니다."

* 바틀비 군은 절대 필사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저의 끈질긴 촉구에 대한 답으로, 자신은 영구히 필사를 그만둔다고 선언했습니다. (···)최대한 정중하게 저는 바틀비 군에게 엿새 안에는 무조건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고 통보했습니다. (···)엿새가 지났을 때 저는 칸막이 뒤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런! 바틀비 군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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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사무실의 건물주가 보낸 쪽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열어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경찰을 불렀으며, 바틀비는 부랑자로서 툼스에 수감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 피골이 상접한 바틀비 군이 모로 누워 있었습니다. (···)뭔가에 이끌려 저는 바틀비 군의 몸에 손을 갖다 댔습니다. 손을 잡아 본 순간 짜릿한 전율이 제 팔을 타고 올라와 등골을 타고 발끝까지 내려갔습니다. 이윽고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사식업자의 둥근 얼굴이 보였습니다. "저녁 식사가 준비됐습니다. 오늘도 드시지 않으실까요? 아니면 먹지도 않고 사는 분인가요?" "먹지도 않고 산답니다." 바틀비 군의 눈을 감겨 주며 제가 되뇌었습니다.

* 배달 불능 우편물이라니! 죽은 편지들이란 말 아닙니까! 죽은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희망 없이 죽어 간 사람들을 위한 희망, 재난에서 구제받지 못한 채 생명의 숨결이 꺼져 버린 사람들을 위한 희소식. 모두 생명을 전하러 나섰다가 이른 죽음을 맞이한 편지들입니다. 아 바틀비여! 아 인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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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원 빌리 버드 】 - 젊은 선원인 빌리 버드는 조각 같은 외모와 순수한 영혼으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말을 더듬는 약점이 있습니다. 빌리를 질투한 클라거트는 반란을 모색한다며 빌리를 모함합니다. 진실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빌리는 말을 더듬어 당황하여 클라거트를 때려 죽게 만들고, 빌리의 선량함과 순수함을 잘 아는 선장은 군기 확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빌리를 사형시킵니다.

* 빌리는 재갈을 물린 채 창에 꿰인 사람처럼 서 있었다. (···)"뭐라고 변명을 해 보란 말이야!" 함장의 다그침에도 빌리는 말을 못 하고 이상한 몸짓만 하면서 끅끅거리는 소리만 냈다. (···)빌리는 함장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더 빨리 말을 내뱉으려고 더 격렬하게 노력했다. 이런 힘겨운 노력은 곧 마비 증상을 잠시 더 고착시키고 빌리의 얼굴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람의 표정을 떠올리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다음 순간, (···)빌리의 오른팔이 뻗어 나갔고, 클래거트가 갑판 위로 쓰러졌다.

* 이 사건과 관련해서 근본적으로 누가 옳고 그른가 하는 문제는, 그 점이 명백해지면 명백해질수록 그 사건을 책임져야 하는 충성스러운 해군 지휘관은 그만큼 더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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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 버드의 인정 신문이 시작됐다. (···)"전 죽일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 혀가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면 그분을 때리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제 면전에서, 그리고 저의 함장님이 계신 곳에서 악의적인 거짓을 말씀하셨습니다. 전 뭐라 말을 해야 했는데, 그게 팔을 뻗는 것으로 나오게 된 겁니다. 하느님께 맹세합니다!"

* 마지막의 직전 그의 입에서 나온 최후의 말이자 유일한 말은 발음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비어 함장님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수치스러운 밧줄을 목에 두른 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전함에 있던 모든 사람이 목소리로 전달되는 전기에 감전되기라도 한 듯 자신도 모르게 빌리의 말을 받아 한목소리로 우렁차게 외쳤다. "비어 함장님께 하느님의 가호가 있기를!" 그렇게 외치는 순간에도 그들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빌리밖에 없었으며, 그들의 눈은 오직 빌리만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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