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42번.
뚜렷한 줄거리와 별다른 주인공이 없는 작품입니다. 호세 셀라는 스페인 내전 후 모든 사람들이 숨죽이고 살아가는 암울한 마드리드의 표정을 카메라로 담아내듯 그려냅니다. 인물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은 채, 두려움의 그림자만을 객관적으로 그려냅니다.
<< 작가의 시선 >> - 도냐 로사의 카페를 중심으로 고단한 노동자들, 거리의 악사, 일거리를 찾아 헤매는 실업자들, 창녀, 동성애자 등. 여러 인간군상이 다양한 모습으로 암울한 삶을 이어갑니다. 이들에게 오늘의 삶은 버겁기만 하고, 내일의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절대 잊어선 안 됩니다. 이제 이런 말을 하는 데 진력이 나긴 했지만,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으니 어쩌겠소." (···)도냐 로사는 일종의 자기 세상인 카페와 카페 주변과 그 나머지 부분으로 세상을 나누었다.
* 도냐 로사는 세상사 쓸데없는 일로 귀중한 돈을 낭비할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봄이 오든지 말든지 말이다. (···)그녀는 빙글빙글 웃으며 카페 손님들 사이를 오갔다.
* 카페 단골손님 대부분은 세상일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니 쓸데없이 고치려 노력할 까닭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었다. 도냐 로사의 카페에 오는 사람들은 담배를 피우며 그들 가슴 한편을 가득 채웠던, 혹은 삶을 깨끗한 백지로 만들어 버린 가난과 사랑, 그리고 가슴 깊이 간직한 추억에 깊이 빠져들곤 했다.
* 이미 희미해져 버린 과거의 추억에 빠져 꿈을 꾸듯 살아가는 몽상가처럼 침묵에 잠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정다감한, 혹은 뭔가 애원하듯이 축 늘어진 동물 같은 표정으로 기억을 더듬는 사람도 있었다. 평온을 되찾은 바다처럼 이마에 손을 대고 쓰디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 젊은 시인은 <숙명>이라는 긴 시를 쓰고 있었다. "숙명"이라는 제목을 놓고 "그 숙명"이라고 할까 고민을 한 적도 있었지만, 자기보다 더 많은 시를 발표한 다른 시인들과 상의한 끝에 그냥 간단하게 "숙명"으로 결정했다. (···)"그 숙명"이라고 하면 훨씬 더 제한적이어서, 상상의 나래를 펴고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훨훨 날아갈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 그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야만' 작품을 쓰는 시인이었다. 오늘 오후엔 정말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운(韻)을 맞추지 못했다. 그는 종이에 몇 가지 운을 적어 놓았다. (···)"나는 어리석음을 뒤집어쓰고 살아가네! 시장 바닥 천덕꾸러기들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작품이 사람을 죽이는 건지, 사람이 작품을 죽이는 건지 모르겠네."
* 카페에는 아련하게 사람의 가슴을 찔러 오는 묘한 슬픔이 감돌았다. 지나치게 확실한 과학에만 의존하는 탓에 우리는 도대체 사람의 가슴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도 모를 뿐더러, 죽는 순간까지도 계속될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잘 참아 낼 수 있다.
*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지나면 또다시 아침이 오는 법이다. 일 년에는 사계절이, 그러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다. 사람들에겐 육체가 진정으로 원하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그러니까 배가 고프다든가, 소변을 보고 싶다든가 하는 진실 말이다.
* 새벽 1시 30분에서 2시 무렵이면 밤은 도시의 야릇한 심장위에서 문을 걸어 잠근다. 수많은 남자들이 각자 자기 여자를 끼고 잠을 잔다. 불과 몇 시간만 지나면 거대한 산만 한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자신들을 기다릴, 거칠고 잔인한 다음 날은 잊은 채 말이다.
* 마르틴 마르코는 사가스타 거리에 있는 세면기 가게 진열장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삶은 다양해! 누군가 편하게 똥 누기 위해 쓰는 돈으로 일년은 먹고살 수 있는 사람도 있고 말이야! 참 웃기지! 편안하게 똥 누는 사람을 줄이고 나머지 사람들을 제대로 먹이기 위해 전쟁이라도 한판 일어나야 할 텐데."
* "가난한 사람과 돈 있는 사람으로 양분된다는 것 자체가 잘못이야. 우리 모두가 다 평등하면 좋을 텐데, 너무 가난하지도 않고 부자도 아닌 중간 정도로 말이야." (···)마르틴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 "난 무엇을 하려고 해도 시간이 모자라 못 한다고 생각하는데. 시간이 남는다면 그것은 시간이 너무 모자라 그 모자란 시간으로 어찌할 줄 몰라서 그렇다고 믿는데." (···)마르틴은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잠시, 씁쓸하고 슬픈 표정을 지었다.
* "우리가 어쩌겠어. 그들을 몰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저기 저 자리에 버티고 있는데!" (···)마르틴은 지적 가치를 엄격하게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리고 논리 정연한 두뇌를 가진 사람들 명단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다 똑같아! 모든 게 엉망이야."
* 거리에 있는 벤치는 모든 형태의 고통과 행복을 담아내는 문집이기도 했다. 천식을 달래는 노인, 기도서를 읽는 수사, 이를 잡는 거지, 부인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는 미장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폐병 환자, 악몽이라도 꿨는지 눈을 부릅뜨는 미친 사람, 무릎에 나팔을 올려놓은 거리 악사······.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은 각자 크고 작은 열망을 안고 살아간다. 비록 혈액순환의 신비 같은 것을 낱낱이 알진 못했지만, 육신에 쌓인 피로의 기운을 벤치 나무판자 위에 남겨 놓고 떠나는 것이다.
* 엘비라 양은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그런 여자였는데도, 그 작은 것조차 손에 넣어 본 일이 별로 없었다. (···)지금 그녀는 병원에 가지 않고 이 보잘것없는 여인숙에서라도 계속 살 수만 있다면 대만족이었다.
* 벤투라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운이라고요?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운은 없습니다. 운은 여자와 같아서 운을 좇는 사람에게 몸을 의탁하는 법입니다. 한 마디 말도 건네지 않고 운이 지나치는 걸 바라만 보는 사람에게는 운이 절대로 오지 않는 법이지요.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 홀리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인간의 머리는 완전한 기계는 못 돼! 만일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책으로 읽듯이 읽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대로가 더 좋을지도 몰라! 아무것도 읽을 수 없고, 말을 통해서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게 더 나은 것 같기도 해!'
* 아침은 천천히 벌레처럼 기어 도시 남녀의 가슴 위로 올라온다. (···)영원히 반복되는 저 아침은 장난삼아 도시의 얼굴과 무덤과, 그리고 손만 뻗어도 얻을 수 있는 저 삶과 벌집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꿔 놓는다.
* 마르틴은 교외에 나와 상큼한 공기를 마시는 게 도시에 갇혀 사는 것보다 인생이 훨씬 더 부드럽고 섬세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이 많을 것을 아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멋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았다.
* 마르틴은 신문을 툭툭 건드리며 웃었다. "바로 여기에 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 (···)호주머니에는 광고란과 공고란을 아직 읽지 않은 신문이 들어 있었다. 마드리드 외곽 지대의 식량 배급 기사도 아직 읽지 않은 채였다. "하! 하! 외곽 지대! 정말 웃기네! 외곽 지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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