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279번.
그동안 '무기여 잘 있거라'로 번역되었던 이 작품은 현행 맞춤법에 맞게 '무기여 잘 있어라'로 표기됩니다. 헤밍웨이는 죽음을 '대리석 조각만큼 완전히 정지된 상태'로 표현하며,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묵직하게 담아냅니다.
<< 작가의 시선 >> - 미국인 프레더릭은 이탈리아에서 유학 중, 1차 대전이 일어나자 이탈리아군에 참전합니다. 부상으로 입원한 병원에서 간호사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치료가 끝난 후 복귀명령을 받게 되고, 임신한 캐서린을 떠나 전선으로 향합니다. 퇴각 중 총살당할 위기에서 살아난 프레더릭은 캐서린과 재회하게 됩니다. 법적으로 결혼을 하진 못하지만, 산 속 농가에서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프레더릭 앞에 두 죽음이 다가옵니다.
* 그는 내가 모르는 것, 일단 배워도 늘 잊어버리는 것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그것을 깨달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 나는 내가 전사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이 전쟁에서는 말이다. 이 전쟁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에게 이 전쟁은 영화 속의 전쟁만큼이나 위험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이 전쟁이 어서 끝나기를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 나는 움직이려고 했지만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손을 뻗어 보니 무릎이 정강이 아래에 있었다. (···)나는 내 다리를 보고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아, 하느님, 제발 이곳에서 저를 구해 주옵소서.
* 리날디가 말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얻지 못해. 지금 가진 것은 태어날 때 이미 갖고 태어난 것일 뿐, 뭐 하나 배워서 알게 되는 건 없어. 새로 무언가를 얻는 일은 절대 없다고. 우린 처음부터 완전한 상태로 출발하는 거야. 자네는 라틴계 민족으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고." "라틴계 민족이란 건 없어. 그거야말로 '라틴적인' 사고방식일 뿐이지."
* "당신은 좋은 사람이에요. 나를 정말 사랑하는 거죠?" (···)나는 어느 누구와도 사랑에 빠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하느님께 맹세코 분명히 나는 사랑에 빠졌고, (···)기분은 하늘을 나는 것처럼 신바람이 났다.
* 나는 정식으로 결혼하고 싶었지만, 캐서린은 그랬다간 자신이 병원에서 쫓겨날 것이며, 또 정식으로 결혼 수속을 밟기만 해도 병원이 감시를 하고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이미 결혼한 사람들처럼 지냈고 크게 걱정하지도 않았다.
* "덫에 걸린 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나요?" (···)인간이라면 언제나 생리적으로 덫에 걸려 있다는 느낌이 들지." (···)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었다. "아기는 어디서 낳을 거야?" "모르겠어요. 가능한 한 제일 좋은 곳에서 낳으려고요."
*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내려도 억수같이 내렸다. (···)내 사랑 캐서린이 비가 되어 내린다면 얼마나 좋을까. 바람아, 다시 한 번 그녀를 내게 데려다 주렴. 그렇지, 우리는 모두 그 바람 속에 있었다. 모두 그 속에 갇혀 있었고, 이슬비로는 바람을 잠재울 수 없을 것이다.
* 나는 총살하는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총소리는 들었다. (···)나는 심문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탈출할 것인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누가 봐도 나는 이탈리아 군복을 입고 있는 독일군이었다.
* 지금까지 심문받은 사람은 하나도 빠짐없이 총살을 당했다. (···)나는 몸을 홱 낮추어 두 군인을 밀어젖히고 머리를 숙이고는 강을 향해 돌진했다. 강가에서 발이 걸려 꼬꾸라지면서 나는 그대로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었다. (···)나무토막을 물살을 따라 움직였고 나는 한 손으로 그것을 꼭 붙잡고 있었다.
* 캐서린이 떠올랐다. 그러나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를 생각한다는 것은 미칠 것 같은 일이었다. (···)분노는 모든 의무와 함께 강 속에서 씻겨 내려갔다. 의무는 헌병이 내 멱살을 잡을 때 사라졌지만 말이다. (···)피아니는 내가 헌병에게 총살되었다고 보고할 것이다.
* 세상은 부러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만다. 아주 선량한 사람들이든, 아주 부드러운 사람들이든, 아주 용감한 사람들이든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죽인다. 당신이 그 어디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은 당신 역시 틀림없이 죽이고 말겠지만, 특별히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이 세상은 아주 즐거워. 나는 영원히 살고 싶소. 살 만큼 살았는데도 말이야." 그는 미소를 지었다. (···)"노인이 지혜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건 엄청난 착각이야. 지혜로워지는 게 아냐. 다만 신중해질 뿐이지."
* 그해 가을은 눈이 무척 늦게 내렸다. 우리는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산중턱의 갈색 목조 가옥에서 살았다. (···)"우리 같은 순간에 같이 잠들기로 해요." "좋았어."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 초산은 원래 시간을 오래 끈다잖아. (···)죽을 리 없어. 하지만 만에 하나 죽게 되면 어떻게 하지? 이봐,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냔 말이야? 캐서린이 죽는다면 어떻게 하냐고?
* 나는 캐서린에게 키스를 했다. 몹시 창백한 얼굴의 그녀는 쇠약하고 지쳐 보였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갓난아기에게 세례를 받게 해 줘야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기가 전혀 숨을 쉬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아기는 전혀 숨을 쉬지 않았다. 한 번도 살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오직 캐서린의 배 속에서만 살아 있었을 뿐이다.
* 이제 캐서린은 죽겠지. 내가 바로 그렇게 만든 거야. 인간은 죽는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어. 그것에 대해 배울 시간이 없었던 거야. (···)언젠가 캠프를 할 때 나는 모닥불 위에 통나무 하나를 얹어 놓은 적이 있다. 통나무에는 개미가 잔뜩 붙어 있었다. 통나무에 불이 붙기 시작하자 개미들이 우글우글 기어 나와 처음에는 불이 있는 한가운데로 기어갔다. 그러다가 나무 끄트머리쪽으로 돌아갔다. 개미 떼는 끄트머리 쪽에 잔뜩 모여 있다가 불 속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중 몇 마리는 기어 나왔지만 몸이 불에 타서 납작해진 채로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무작정 달아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미들은 불 쪽으로 갔다가 나무 끄트머리 쪽으로 돌아가서 뜨겁지 않은 곳에 모여 있다가 결국은 불 속으로 떨어졌다. 나는 그때 바로 이것이야말로 세계의 종말이라고 생각했다. 구세주가 되어 통나무를 불 속에서 끄집어내어 개미들이 땅바닥으로 달아날 수 있는 곳으로 던져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하느님, 제발 그녀가 죽지 않게 해 주소서. 만약 그녀를 죽지 않게 해 주신다면, 당신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지 다 하겠습니다. 당신은 갓난아기를 데려가셨습니다. 하지만 그녀만은 제발 죽지 않게 해 주소서.
* "나는 죽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 기다리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정말 죽기 싫어요." (···)그녀는 줄곧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오래지 않아 숨을 거두었다. 나는 병실 밖 복도에서 의사에게 말했다. "오늘 밤 제가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 "아직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간호사 한 사람이 말했다. (···)"당신이나 나가요. 다른 분도요."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간호사들을 내보내고 문을 닫고 전등을 꺼도 소용이 없었다. 마치 조상(彫像)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잠시 뒤 나는 병실 밖으로 나와 병원을 뒤로 한 채 비를 맞으며 호텔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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