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든 청춘을 바쳐야만 했네-<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책속 글귀로 명작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66번.

by 이태연














지성과 감성, 종교와 예술로 대립되는 세계에 속한 두 인물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진정한 본성에 이르는 과정을 담아낸 작품으로, <지(知)와 사랑>이 소설의 제목처럼 통용되기도 합니다. 헤르만 헤세는 자신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이 작품에 대해 '내 영혼의 자서전'이라 칭합니다.



<< 작가의 시선 >> - 수도사 나르치스와 학생인 골드문트는 상반된 모습에 이끌려 친구가 됩니다. 수도원을 떠난 골드문트는 도덕적 속박에서 벗어나 여자들과 관계를 맺고, 살인을 저지르고, 죽음을 목격합니다. 우연히 본 조각상에 감명받아 예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간통을 저지르다 사형 위기에 처합니다. 나르치스 덕분에 목숨을 구한 골드문트는 마리아 상을 완성해냅니다.


* 외로운 존재였던 나르치스는 골드문트가 모든 면에서 자기와 상반된 존재인 듯하면서도 닮은 데게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나르치스가 사변가요 분석가였다면 골드문트는 몽상가로서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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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생각에는 길가에 피어있는 꽃 한 송이나 기어다니는 작은 벌레 한 마리가 도서관을 가득 채운 모든 책들보다도 더 많은 것을 말하고 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지 않을까 ?" (···)골드문트의 마음속에서는 그 무엇도 삶 자체만큼 생생한 현실성을 갖지 못했다. 그에게는 심장의 불안한 고동, 가슴 아픈 그리움, 꿈속의 기쁨과 불안들이 곧 삶이었다. 그는 그런 세계에 속해 있었고 그 세계에 자신을 바치고 있었다.


* 어떻든 산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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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때로 골드문트는 얼마 전부터 자신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아해하곤 했다. (···)"세상은 죽음으로 가득 차 있어. 온통 죽음뿐이야. 울타리마다 죽음이 걸터 앉아 있고, 나무마다 그 뒤엔 죽음이 도사리고 있지."


* 그는 생각했다. 어쩌면 모든 예술의 뿌리는, 또한 어쩌면 모든 정신의 뿌리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일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덧없이 사라져가는 것 앞에서 몸서리를 치며, (···)우리 역시 덧없이 스러져갈 것이며 조만간 시들 것이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것이다.


* 명인이 창조한 아름다운 마돈나 상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여성은 아마도 벌써 시들었거나 죽었을 것이며, 예술가 자신도 조만간 죽음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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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드문트의 영혼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결코 온전히 그의 것이 되지 못한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그는 언젠가는 예술가로서 그 얼굴을 포착하여 표현하기를 소망해 마지 않았지만, 그 얼굴은 자꾸만 그에게서 달아나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 골드문트는 자기가 가고 있는 길이 어머니에게로, 쾌락과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피의 직감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 인간들은 돼지나 다름없었다. 아니, 차라리 돼지만도 못하고 돼지보다 더 조악했다! 그런데 골드문트 자신도 너무나 자주 그런 인간들 틈에서 놀았으며, 그들과 같은 부류의 인간이라는 데서 희열까지 느끼곤 했다. (···)그러고는 고독과 번민에 빠져들고, 떠돌이가 되고, 고통과 죽음을 관찰하고, 모든 활동의 덧없음을 관찰하고, 심연을 응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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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진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어째서 전혀 마음에 들지 않고 어지간히 아름다운데도 불구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고 혐오스럽기까지 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런 작품들에는 중요한 것이 빠져 있었다. 꿈과 최고의 예술 작품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그것은 다름 아닌 신비였다. 골드문트는 생각을 계속했다. 내가 사랑하고 또 찾고자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신비이다.


* 그가 예술가라는 사실은 그의 삶을 풍요롭고도 고단하게 만들었다.


* 모든 사람의 삶은 (···)삶이 분열되지 않을 때에만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예술을 창작하면서도 인생을 그 대가로 지불하지 않아야 한다! 인생을 즐기면서도 숭고한 창조 정신을 단념하지 않아야 한다! 그게 대체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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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치스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예술이 자네한테 뭘 가져다주고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 "무상감을 극복하게 해주었네. (···)예술 작품 역시 언젠가는 사라지겠지. 불타거나 망가지거나 파괴되겠지. 그래도 예술 작품은 인간의 일생보다 훨씬 오래 남고, 덧없는 순간을 넘어 성스러운 형상이 충만한 조용한 왕국을 이룬단 말일세. (···)그것은 덧없이 사라지는 것에 영원의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 골드문트가 말했다. "이 마리아 상은 아주 잘 만들어졌어. 그렇지만 들어보게, 나르치스. 이 작품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청춘을 바쳐야만 했네. 청춘의 방황과 사랑, 뭇 여성에 대한 구애가 필요했지. 그 청춘의 추억이야말로 나의 창작의 원천일세. 이제 곧 그 샘물도 말라버릴걸세. 가슴도 메말라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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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과 기도에만 몰입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골드문트의 삶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인간이란 존재는 정말 정해진 규칙대로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것일까? 인간의 시간과 운명이 예배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일까? (···)나르치스는 또 간혹 골드문트의 방을 열어보기도 했다. 거기에는 마리아 상이 보관되어 있었다. (···)그 삶이 작품을 남긴 결과는 얼마나 고결하고 명징하게 서 있는가!


* "내가 죽음에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오로지 내가 여전히 어머니를 찾아가고 있다는 믿음 혹은 꿈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세. 나는 죽음이 (···)사랑이 처음으로 충족될 때처럼 커다란 행운이 되었으면 하네. 감각이 죽는 대신 어머니가 다시 나를 데리고 아무것도 없고 순진무구한 상태로 이끌어갈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네." (···)말을 하느라 지친 골드문트의 목소리는 점점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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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르치스의 말 >> - 학문에 정진하는 것이 신의 섭리에 충실한 소명이라 여기는 이성적인 수도사입니다. 감성형인 골드문트의 방황을 이해하며 사랑과 인내심으로 끝까지 지켜봅니다.


* 자네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그냥 지나쳐 보지 않고 거기에 자신을 바친단 말일세. 그렇게 스스로를 바침으로써 덧없는 것이 최고의 존재로, 영원을 닮은 존재로 숭고해진다네.


* 우리 같은 사상가들은 하느님의 존재에서 세속적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지. 그런데 자네는 하느님의 피조물을 사랑하고 재창조함으로써 하느님에게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일세. 물론 두 가지 모두 사람이 하는 일이니 불완전하게 마련이지만, 그래도 예술이 더 순수하다고 할 수 있지.

*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평화는 (···)끊임없이 싸워서 얻어지는 평화, 나날이 새롭게 쟁취해야만 하는 그런 평화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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