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와 친해지는 방법이 있을까?

순천에서의 한달을 살면서

by 강물





나는 우연한 기회로 순천에서 한 달 동안 지내고 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동네를 벗어나서 새로운 곳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아침 하루의 설렘으로 눈을 뜨고, 매일 저녁 아쉬운 마음을 한가득 안고선 눈을 감는다. 별다른 일을 하는 건 아니다. 날마다의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아침엔 운동을 하고 돌아와 아침을 먹고, 샤워를 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점심을 먹고, 동네 구경을 하고, 저녁을 먹는 식이다.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건 매 끼니를 꼬박꼬박 챙기는 것뿐이다. 그날의 일과는 대체로 그날 아침에 정하면서 지내고 있다.





내가 여기 온 이유는 일상이 너무 무료했기 때문이었다. 차고 넘치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일상에서 찾을 수 없는 재미를 위해 ott나 유튜브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기력한 하루의 반복을 끊어낼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에 나를 놓아보기로 했다. 그래서 순천에 왔다. 내 인생에서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무엇보다 내가 그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고, 나에 대해 알아가기 위해서.





내가 아는 나는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무기력함보다는 모든 직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센스 있는 농담을 잘하면서 조금 눈치가 없기도 한 사람이었다. 멍을 잘 때리지만 그렇다고 늘 머리가 멍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늘 활력 없이 멍한 눈을 한 사람이 아니었다. 작은 일상의 풍경들에서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었다.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지금 나의 모습 사이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고, 그렇게 뒤통수를 보이며 앞으로 가는데 나 혼자 한 곳에 가만히 정체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지나쳐 버리는 것들 중엔 과거의 나 자신도 있다고 느꼈다. 돌이켜보면, 시간은 모든 걸 바꾸게 하고, 그래서 나마저도 많이 바꾸어 놓았는데 내가 인식하는 나는 언제나 과거의 나였던 거 같다. 아마 그래서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말이 두려워졌던 거 같다. 나를 소개하는 모든 말들은 모두 과거의 나에 한정되어 있고, 그건 지금의 나와 너무 달라서, 나는 지금의 나를 전혀 모른 채 과거의 나를 한 없이 그리워만 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나를 소개한다는 건 결국 현재의 나를 말해야 하는 거기에. 나는 지금의 나를 설명할 그 어떤 말도 골라낼 수 없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까.





같은 풍경이라도 사람마다 시선을 멈추는 부분이 다르다. 나는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나는 이곳에서 거꾸로 가보기로 했다. 우리가 걸어온 모든 발자취들을 반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사람들이 걷기보다 뛰기를, 뛰기보단 자전거를, 자전거보단 버스를, 버스보단 자동차를 선택했던 그 순서 그대로, 딱 그 반대로 해보기로. 나는 자동차보단 버스를, 버스보단 자전거를, 자전거보단 뛰기를, 뛰기보단 걷기를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의도적인 느림과 불편을 선택하면 내가 대체 무엇을 보게 될지 알고 싶어서. 그렇게 내 눈에 담기는 풍경들을 살피다 보면 내 마음의 풍경도 알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그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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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알아낸 지금의 나는, 윤슬을 좋아한다. 하늘의 빛보다 땅의 빛을 좋아한다. 초록색을 좋아하기에 녹음과 어우러지는 반짝임을 좋아하는 것 같다. 나는 길가에 의미 없이 놓인 것들에서도 귀여움을 찾아낸다. 아마 차를 타고 지나갔거나 핸드폰을 보고 있었으면 못 봤을 모습들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나의 산책은 언제나 조금 긴 편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테다. 그리고 나는 파스텔톤보다 쨍한 색들의 조합을 좋아한다. 특히 노란색과 빨간색의 조합에 유독 시선이 가는 거 같다. 나는 각각의 개성 넘치는 건물들이 좁은 틈을 두고 나란히 있는 모습을 좋아한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연상돼서 그런 걸까? 그 이유까진 아직 잘 모르겠다. 항상 정형화된 것들보단 비정형적인 걸 좋아하는 나였으니까, 그래서 그런 거 일 수도 있겠다. 나는 높은 골목길을 좋아한다. 그 길을 사이에 두고 좁다랗게 붙어있는 집들을 보는 걸 좋아한다. 올라가긴 힘들지만 그렇게 뒤돌아보았을 때 내 시선 아래에 건물들의 정수리를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세끼를 다 챙겨 먹으면서 느낀 건데, 나는 생각보다 더 잘 먹는 사람이다. 소식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고기를 좋아하고, 야채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둔한 면도 있지만 예민한 면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날 아주 예민한 사람이라 보겠지만 누군가는 둔하고 물 흘러가듯 사는 사람이라 해석할 수 있을 거다. 나는 내 생각보단 덜 우울하고, 더 유쾌한 사람이다. 생각보다 더 외로움을 타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제 조금씩 지금의 나와 친해지고 있다. 이 중에서 이전의 나와 완전히 다른 면면들도 있지만 동시에 그늘에 가려져 안 보이던 부분도 있다. 남은 시간 동안 이곳, 순천에서 지내면서 나는 조금씩 더 지금의 나에 대해 소개할 말들을 알아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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