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듀어런스』 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극적으로 살아남은 인듀어런스호의 선원들은 세상 어느 누구보다 위대해 보였다. 그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그저 생존을 위해 분투하였을 뿐이다. 거대한 자연에게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투쟁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유독 위대해 보이는가. 그들은 온 힘을 다해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면 나는 단 한 번도 온 힘을 다한적이 없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태함과 게으름 때문인가, 아니면 온 힘을 다할 목적이 없기 때문인가.
그들은 거대한 자연에게 도전했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은 실패했다. 간신히 목숨만 건져냈다. 그런데 그들은 영웅이었다. 사람들은 아직까지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열광한다. 그들은 실패했지만 승리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부터 승리하였는가. 바로 두려움과 고통으로부터 승리했다. 만약 그들이 남극 대륙 횡단에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그 위대한 도전은 분명 열광받았겠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을까? 우리가 진정으로 열광해야 하는 것은 외적인 성공인가, 내적인 성공인가.
그들은 고향을 떠나 남극으로 향했다. 그들이 도전할 수 없는 곳은 지구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배의 나무가 철이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의 한계는 점점 넓어져갔다. 이제는 지구를 넘어 우주 저 멀리까지 항해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배는 나무로 만든 구멍 뚫린 나룻배에 불과했다. 나는 지구의 작은 곳에 나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다. 그 안에서 조차 나는 울타리 속에 숨어있었다. 학교라는 울타리, 직장이라는 울타리, 가족이라는 울타리. 보이지도 않는 작은 그곳에서 그곳의 주인공이라며 만족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만족해도 되는 것일까. 이들을 보며 그런 속박감에 가득 차게 되었다. 나는 그런 속박에서 자유를 얻기로 했다.
자유를 얻기 위해 먼저 나의 울타리를 허물기로 했다. 나를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을 허물기로 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울타리는 그 이름과는 다르게 추상적인 것이었다. 그것들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었다. 편안하고자 하는 나의 욕심, 막연하게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나의 욕심,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심들이 모여 단단한 울타리를 이뤘다. 가장 먼저 그런 욕심들을 허물어야 했다.
인듀어런스호의 선원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들이 모여 배의 추진력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단지 서로의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인듀어런스호는 추진력에 힘 업어 파도를 헤치며 넓은 바다로 나아갔다. 그런데 파도는 그들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게 선미를 강타한다. 하지만 파도는 그들을 막아설만한 힘이 부족했다. 파도는 어쩔 수 없이 부빙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부빙이 파도의 요청을 듣고 그들을 막아선다. 크고 작은 부빙들이 모여 그들을 괴롭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이제 부빙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막아서기 시작했다. 부빙들은 서로의 손을 움켜잡고 그들을 둘러쌌다. 그러고는 기온의 도움을 받아 강력하게 얼어붙었다. 그렇게 서서히 그들을 압박하여 마침내 그들을 막아서는 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파도와 부빙의 노력이 허무하게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가 다음을 기약했다.
한 사람이 맨몸으로 바다에 들어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아무리 헤엄을 쳐도 그 작은 파도조차 헤처 나가기 힘들 것이다. 우리를 나아게해줄 배 역시 혼자서 만들어 내기 어렵다. 우리가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들의 직접적인 도움은 없을지라도 우리는 그들의 결과물의 혜택을 받아야만 한다. 그들의 도움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 더 넓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인간의 나약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도와야 한다. 서로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인듀어런스 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들의 연대감에 감동하게 된다. 몇몇의 뛰어난 선행으로 그 연대감은 더 단단해진다. 그것들은 그들의 능력이라기보다는 우리 인간의 능력이다. 우리는 남극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의 연대감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외부요인에 둘러싸여서 특출 나게 압축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혼자 헤처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위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사람으로 인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타인의 혜택을 받는 만큼 타인에게 기여해야 한다. 그렇게 서로를 도우며 나아가야 한다. 서로에게 기여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더 빠르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나는 그저 돈을 벌고 싶은 것일까. 왜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것일까? 그저 새로운 경험이라는 호기심 때문에? 남들에게 부러움을 사기 위해서? 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목적지 없이 항해하기에는 세상은 넓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 짧다. 항해 중에는 달과 태양 그리고 별이라는 이정표가 있다. 우리가 이정표를 따라 목적지로 향한다면, 우리의 배는 거침없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목적지가 없다면, 그 위대한 이정표들은 그저 아름다운 환경일 뿐이다. 그렇게 부유하다 보면 속도를 잃게 되고 끊임없는 자기 존재 의문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까지 '나는 누구인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도저히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소위 그것이 삶의 목적지고 그것을 알아야 나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언제까지 답을 알 수 없는 일을 기다릴 수는 없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항해하는 데 있어서 목적지 없이 부유하면서도, 목적지로 거침없이 나아가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목적지로 나아가면서 목적지를 상상해 볼 수 있다면, 그런 목적지를 만들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인듀어런스호의 모든 선원들의 삶의 목적지는 남극 횡단이었을까? 그렇다면 그것에 성공했다면 삶을 이룬 것인가? 그다음의 삶은 무엇인가.
*『인듀어런스』, Caroline Alexander, 김세중, 뜨인돌출판사, 2003, The ENDUR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