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all of the wild』Jack London
▶ 벅은 설매꾼의 신호에 맞춰 달리거나 멈춘다. 그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그의 자부심이자 기쁨이었다. 우리도 초록색과 빨간색 신호에 맞춰서 나아가거나 멈춘다. 정해진 층에 멈추고 정해진 곳에 가길 반복하며 되풀이되는 단조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그 반복 속에서 안락과 행복을 찾느라 분투한다. 그러면서도 막힘없이 흘러가는 구름을 동경한다.
구름은 거대한 산을 미끄럼틀 타듯 오르락내리락하며 들판을 매섭게 달리는 짐승들을 보고 생명의 약동을 느끼고, 그들이 부르는 노래를 감상한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싼 높은 건물들과 매섭게 돌진해 대는 고철 덩어리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불협화음을 자아내는 소음 속에서는 고립감을 느낀다. 그들은 안개가 되어 인간을 방해할 뿐이다. 문명은 우리를 연결하고 조화시키면서도 무언가로부터 고립시킨다.
벅은 꼭두각시처럼 자기를 조종하던 길들여진 습성이라는 줄을 끊어내고, 생존의 약점이 되는 도덕적 본성까지 져버린다. 그리고선 들끓는 피에 이끌려 고달프지만, 공포와 신비가 공존하는 야성의 부름에 응한다. 우리의 삶 역시 생존이라면, 태초의 조상들과 달리 우리는 존재하는 것들 속에서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들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 결과 공포와 신비 옆에 나란히 서게 되었고, 그것을 잃어버린 것인지 극복해 낸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옛것과는 다른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삶의 의미가 단지 삶과 죽음에 있다면, 수명이 다해 교체되는 건전지와 다름없고, 물질에 대한 소유에 있다면 죽음을 초월한 허영심에 불과하고, 그 모든 과정에 있다면 그의 말처럼 밝게 타오르는 화려한 유성이 되고 싶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들
"방랑을 향한 오랜 동경이 약동하며,
관습의 사슬에 분노하자,
야성의 피는
다시 동면에서 깨어난다."
공명정대한 싸움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일단 쓰러지면 그것으로 삶은 끝이다. 그렇다면 결코 쓰러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
더욱이 생존을 위한 무자비한 투쟁에서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뿐더러 약점이 될 수 있는 그의 도덕적 본성이 약화되었거나 소멸되었음을 나타냈다.
경험으로만 배우는 것이 다가 아니라 오랫동안 그의 몸속에 잠자던 본능이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길들여진 습성이 그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리하여 삶이 얼마나 꼭두각시와 같은가를 증명이나 하듯, 원시의 노래가 벅의 몸속으로 파도처럼 흘러들었고 그는 다시 자신의 본성을 되찾았다.
북극광이 머리 위에서 차갑게 타오르거나 별들이 차가운 하늘에서 깜빡이며 춤을 출 때, 대지가 하얀 눈의 장막에 덮여 감각을 잃고 꽁꽁 얼었을 때, 허스키들이 불러대는 이 노래는 삶에 대한 도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길게 이어지는 울부짖음과 흐느낌이 섞인 단조음의 그 노래는 삶에 대한 탄원이자 생존의 고달픔의 표현이었다. 그것은 태곳적부터 내려온 종족의 옛 노래였다 그 노래는 노래로 슬픔을 표현했던 원시 시대에 최초로 불렀던 노래들 중 하나였다. 그 노래 속에는 무수한 세대를 거치면서 내려온 유구한 역사의 비애가 깃들었고 이상하게도 그 비애는 벅을 흥분시켰다. 벅이 울부짖고 흐느껴 울 때, 그것은 야생의 옛 선조들이 경험한 삶의 고통이 소생하는 것이고, 옛 선조들이 느낀 추위와 어둠에 대한 공포와 신비가 소생하는 것이었다. 벅이 이 노래에 흥분하는 것은 그가 불과 집에 있는 문명 세계에서 벗어나 야생 동물들이 울부짖는 원시 시대에 태어난 야생 개로 되돌아간 것임을 의미했다.
삶의 정점을 이루는 황홀경이 있다. 그리고 삶은 그 황홀경 너머로 오를 수는 없다. 그런 점은 일종의 생존의 역설이다. 이 황홀경은 가장 생기 있게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다는 것을 완전히 망각했을 때 찾아온다. 이 황홀경, 생존에 대한 망각은 예술가가 창작열에 사로잡혀, 불타는 격정 속에 자신을 상실할 때 오는 것이고, 전장에서 광기에 사로잡힌 채 항복을 거부하는 병사에게 오는 것이다.
그들의 신경질은 그들의 비참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그것은 비참함과 함께 증대되었고, 그 증대된 비참함에 다라 배가 되더니 어느 순간에는 비참함보다 훨씬 더 커졌다.
그는 과거를 현재와 연결했다. 아득히 먼 과거에서 현재가지 무한한 세월이 힘찬 리듬에 맞춰 그의 몸속에서 고동쳤으며, 조수와 계절이 그 리듬에 맞추어 움직이듯이 그는 리듬에 맞추어 움직였다.
죽음이란 활동의 정지 상태이며 살아 있는 생명에게서 멀리 사라지는 것임을 벅은 알고 있었다. (...) 그 사실은 커다란 공허감, 배고픔과도 같았지만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쓰린 공허감을 남겼다.
나는 먼지가 되느니 차라리 재가 되리라!
내 생명의 불꽃이 메마른 부패로 꺼지게 하느니
찬란한 빛으로 타오르게 하리라.
죽은 듯이 영구히 사는 별이 되느니
내 모든 원자가 밝게 타오르는 화려한 유성이 되리라.
인간의 진정한 소임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하는 것이다.
나는 삶을 낭비하면서까지 내 삶을 연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할 것이다.
*『야성의 부름』, Jack London, 임종기, 문예출판사, 2010, The call of the wi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