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혼자 어둠 속에 있었다.

by 아무

아이들이 클수록 외출도 조금씩 수월해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외출 한번 하는 게 일이었고, 나가서도 아이들을 보느라 신경이 곤두서곤 했었는데 이제는 같이 주위를 살펴보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도 늘어났다. 아이들과의 외출이 할 만하다고 느껴지는 요즘이다.


어렸을 땐 키즈카페에 가서도 아이들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곤 했는데 일곱 살 정도 되니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놀다가 목이 마르거나 배가 고프거나 엄마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자리로 달려온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놀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날도 나는 자리에 앉아 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를 부르며 달려왔다. 빨개진 볼을 보고는 목이 마른 거라 생각했다.

-엄마, 나 화장실에 갇혔었어.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말을 끝내자 아이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이를 얼른 무릎에 앉히고 팔로 꼭 안아 주었다. 겁먹은 아이의 얼굴과 머리에 땀이 흥건했다. 아이의 등에서 후끈한 열기가 올랐다 내렸다 했다. 얼마나 놀랐을까. 아이 얼굴에 묻은 땀을 닦아내며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에 마음이 아팠다. 그 키즈카페의 화장실은 자동센서로 불이 켜지고 꺼지는 곳이었다. 아이가 들어갈 땐 불이 켜져 있었는데, 갑자기 불이 꺼졌다고 하는 걸 보니 아마도 아이가 작아서 센서가 제대로 감지를 못한 모양이다. 다른 사람이 들어와 불이 켜질 때까지 아이는 불 꺼진 화장실에서, 그 어둠을 혼자서 견딘 것이다.


몇 초 혹은 몇 분의 시간이었겠지만, 아이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아이를 품에 안고 그 가늠이 안 되는 어둠 속에서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을 생각했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이가 혼자서 어둠 속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단 사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가슴에 안겨 우는 아이를 안고 머리를 쓸어주면서 내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세상에, 많이 놀랐지, 많이 무서웠지, 고생했다 혼자서, 이제 꼭 엄마랑 같이 가자....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동안 계속했던 것 같다. 아이가 이 일로 잘 놀지 못하면 어쩌나, 밤에 잘 못 자면 어쩌나, 밖에서 화장실 가는 걸 무서워하면 어쩌나. 하는 등 숱한 생각들도 동시에 스쳐갔다.


하지만 아이는 강하다는 말이 맞는 말인가 보다. 다행히 아이는 진정이 되었고, 다시 놀러 가고 싶다고 말했다. 눈물을 닦은 아이의 얼굴에 연한 웃음이 번졌다. 감사했고 안심이 되었다. 이제 무섭지 않냐고 물으니 아이는 기특하게도 고개를 힘 있게 끄덕여 주었다. 아이는 곧장 손을 흔들고는 나에게 달려왔던 그 길로 다시 달려가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터널 같은 어둠을 얼마나 많이 통과하게 될까. 아이들의 시간 속에서 나는 점점 빠지게 될 것이고, 아이들은 때때로 만만치 않은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길을 찾을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고 느낄 때가 분명히 올 것이다. 생각만으로도 가슴 시린 장면이지만 그날을 계기로 난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 걸까?


아이가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너른 품, 넓은 가슴으로 아이를 힘껏 안아주는 포옹, 아이의 땀을 닦아주는 손, 고생했다고 말하는 입술. 나는 언제든지 아이들이 달려올 수 있는 엄마라는 자리를 지키며 아이의 모든 아픔과 슬픔과 어려움을 안아줄 것이다. 아이가 겪었을 그 어둠에 대해 고생했다고, 견뎌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며 이마에 젖은 땀을 닦아줄 것이다. 아이가 울고 싶을 만큼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아이의 눈물받이가 되어줄 것이다. 아이가 느꼈을 두려움과 막막함이 조금은 씻겨질 수 있도록 그래서 다시 세상으로 달려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줄 것이다. 아이에게 엄마라는 세상만은 믿을 만하고 안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줄 것이다.


살면서 필요한 것이 그리 대단한 것들이 아니기에 감사하다.

나를 지지해 주는 한 사람, 나를 사랑해주는 한 사람,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 넓은 가슴을 내어줄 수 있는 한 사람, 어둠을 견딜만한 곳으로 느끼게 해 줄 한 사람. 이 한 사람이 있다면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 된다. 나는 내 아이들의 그 ‘한 사람’이 되어줘야겠다.

세상은 쉽지 않다. 그러나 해볼 만한 곳이다. 아이들이 세상을 이렇게 볼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