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은 잘 모릅니다. 잘 그리지도 못하죠. 그림을 많이 좋아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저를 멈춰 세우는 그림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그림들을 좋아합니다. 제가 말을 걸고 싶은 그림도 있고,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도 있죠.
그럴 때면 잠깐 그림에 의식을 맡기고 삶을, 나를, 사람들을, 당연한 것들과 비범한 것들을, 잊어버린 것과 존재하는 것들과 있어야 할 것들을 생각합니다. 물론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시선으로 말이죠.
그림은 많은 이야기와 풍부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림 앞에 서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즐겁습니다. 내면에 있던 것을 수면으로 끌어올려주는 그림의 이야기를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다소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 기록을 시작합니다. 그림을 볼 줄 몰라, 그림에 대한 깊이와 이해는 없습니다. 다만 그림과 저의 진솔하고 무겁지 않은 대화를 적어 내려 갑니다. 그림이 주는 여러 이야기를 만나며 내가 만나고 있는 오늘을 조금 더 고민하고, 나에게 더 친절해지며, 사람을 향해 더 따뜻해지길 바라면서요.
익숙한 그림이죠. 고흐의 밤은 언제 봐도 참 매력적입니다. 밤은 거칠고 무겁게 흘러갑니다. 밤결에 스치우는 별이 번지듯 빛을 발하며 자리를 지킵니다. 밤은 하늘을 흔들어 놓지만 별은 자리를 이탈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이 밤이 모두 빠져나가도 별은 남겠죠. 그리고 계속 빛날 겁니다. 고흐가 그려놓은 밤이 멈춰있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밤은 흘러갑니다. 별은 빛납니다. 그래서 밤은 견딜만한 것이 됩니다. 확실히 저 밤은 취하기에 괜찮아 보입니다.
그런 날이 있어요. 고요가 삼킨 듯한 곳에 홀로 있고 싶어지는 날. 모든 것이 삭제된 곳에서 나 역시 지워지기 직전에, 차가운 바람 한번 쐬어보고 싶은 그런 날 말이죠. 그럴 때 나는 고흐의 밤을 한잔 삼킵니다. 그러면 시원한 밤공기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죠. 일렁이는 밤하늘의 별이 나의 눈에 박힙니다. 밤은 바람으로 흘러가고 별은 빛으로 눈동자에 담깁니다. 별빛에 잠긴 눈은 밤을 보내며 삭제된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되살립니다. 지나가는 밤의 끝에는 여명이 걸려 있습니다. 별이 던져놓은 그 희미한 빛덩어리는 아득함의 산고를 이겨내고 오늘을 탄생시킵니다.
모든 어둠에는 틈이 있습니다. 아무리 두껍게 쌓여있는 어둠이라도 빛은 그 미세한 틈을 비집고 들어와 어둠을 깨뜨립니다. 밤은 별을 등장시키고, 별이 빛날 기회를 주고, 별이 존재함을 증명합니다. 장엄한 풍경은 밤의 부서짐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모진 삶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고 근근이 혹은 겨우, 어쩔 땐 간신히 이어가는 날들에 나는 어쩌면 밤에 사선을 그리며 등장하는 별을 본지도 모르겠습니다. 완전한 밤은 없습니다. 살아갈 이유가 생겼습니다.
밤
태양이 비켜선 자리에서
별이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별이 주는 거짓말 같은 위로이든, 밤이 내뱉는 자조적인 고백이든, 밤에 취한 혼잣말이든 나는 사라지지 않을 오늘을, 기억되어야 할 나를 살아내야 합니다. 그 절박한 심정으로 나를 찾아올 모든 밤에게 별을 요구할 겁니다. 인생에 있을 모든 밤과 마주하며, 밤이 아닌 별을 기록할 겁니다.
밤은 나를 스치며 별을 남기고 지나갑니다. 물론 작별 인사는 없습니다. 밤은 늘 다음을 기약하죠. 하지만 괜찮습니다. 다시 밤이어도 저는 별을 찾을 준비가 되어있으니까요. 스치는 밤을 맞으며 별을 삼킵니다. 고흐의 밤은 정말 취하기에 적절한 풍경이니까요. 그 밤을 눈으로 마시고 마음으로 내려보냅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죠. 이 밤이 가고 나면, 나는 별이 빛나는 삶을 그려낼 겁니다.
그런 날이 있어요. 고요가 삼킨 듯한 곳에 홀로 있고 싶어지는 날. 모든 것이 삭제된 곳에서 나 역시 지워지기 직전에, 차가운 바람 한번 쐬어보고 싶은 그런 날 말이죠. 그럴 때 나는 고흐의 밤을 한잔 삼킵니다. 시원한 밤공기가 나를 스치고 지나가면 조금은 괜찮아지거든요.
혹시 당신에게도 오늘이 그런 날이라면
어때요, 같이 밤 한잔 하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