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기억의 지속>
이 그림을 볼 때마다 8월의 오후 3시가 생각납니다. 한여름의 견디기 힘든 더위는 시계를 늘어뜨려 놓았습니다. 황량함에 걸쳐진 시계는 각자의 시간에서 멈춰버렸습니다. 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든 그것은 모든 것을 무용하게 만들고 감정을 건조시켜 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더위가 내려앉은 흔적은 시계에게 체념으로 남습니다. 좌절이 공기로 떠다니는 황폐의 세계. 그곳을 방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지만, 초대장은 모두에게 전달됩니다. 달리의 세계로 들어 선 사람은 눈빛과 손짓이 말라버린 채 박제됩니다. 시계가 멈춘 곳에서 사람은 무력해집니다. 예고 없이 기습한 침체와 정체의 무게는 사람의 무능을 확인시켜 줍니다. 빠져나갈 수 있을 거란 긍정과 빠져나갈 길을 찾으리란 의욕은 조롱당합니다. 움직이지 않는 시계, 멈춰진 공간. 거기에 갇혀버렸습니다.
더위에 지친 사람은 움직이기를 포기합니다.
더위가 물러갈 거라는 기대를 접습니다.
더위와 싸우려는 투지는 사라졌고
더위를 즐기려는 호기는 수치를 당합니다.
더위는 시계를 멈춰버렸습니다.
시계가 움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생의 비극은 가끔 이런 식으로 엄습합니다. 당신이 멈춰 선 곳으로 일상이 몰려옵니다. 지속될 수 없는 벼랑 위로 삶이 얹혀집니다. 생의 무게는 당신을 고려하지 않고 쌓여갑니다. 멈춰진 곳에서 삶을 외면하다가, 미워하다가, 원망하다가, 슬퍼하다가, 결국 다시 마주합니다. 삶과 당신 사이에 감도는 비극적인 기류 사이로 지혜로운 인생이 말을 건냅니다. 마음을 울리는 웅장한 말도, 가슴을 뛰게 하는 설레는 말도 아닙니다. 그저 삶의 무게를 적당히 덜어내는 정도의 평범한 말들, 당신을 일으켜 세울 정도의 보통의 말들입니다.
시계가 멈췄습니다. 하지만
시계가 멈춘 것은, 시간이 멈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시계가 멈춘 것은, 삶이 멈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시계가 멈춘 것은, 당신이 멈춘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시간은 시계를 따라 흐르지 않습니다. 시계가 시간을 따라가다 잠시 멈춘 것뿐입니다.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질 만큼 처절한 현실과 부딪히더라도 삶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다만 당신을 에워싼 그 처절한 여운이 다소 아프게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여운도 가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좋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늘 나쁘지만도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모든 것이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그러니 시계가 멈췄다고, 그대까지 멈출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시간은 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정확히 같은 속도로요. 이것이 사실입니다. 시간은 멈춘 적이 없죠. 시간만큼 정직한 것이 없습니다. 더위도 추위도 기쁨도 슬픔도 시간을 멈출 수 없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시간은 멈추거나 건너뛰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떨지라도 시간은 현재를 과거로 만들어 냅니다. 이것이 시간의 능력입니다.
8월의 오후 3시도 지나갑니다.
1월의 저녁 6시도 지나갑니다.
바보 같은 나도 지나갑니다.
나빴던 너도 지나갑니다.
아픈 말도 지나갑니다.
초점 없는 무관심도 지나갑니다.
차가운 눈빛도 지나갑니다.
이 상황도 지나갑니다.
모두 지나갑니다.
현실이 가혹해도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마음을 다해 말씀드립니다.
오늘이 힘들었던 당신께,
유난히도 내가 싫은 요즘을 보내고 계시는 당신께,
곁에 머무르는 일련의 상황들로 고달팠던 모두에게,
이 냉철한 사실을 위로로 드립니다.
가끔은 너무 당연해서 지나쳤던 익숙한 사실들이 우리를 붙잡아줄 수도 있는 겁니다. 감상적인 단어들이 채우지 못했던 왜소해진 마음에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모든 위로가 마음에 감동을 주는 따뜻한 언어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 우리에게 곁을 내어주는 다정함은 명료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대여, 때로는 너무 익숙해서 쉽게 지나치는 작은 말들을 붙잡아 봐도 좋습니다. 진부함은 종종 지혜를 동반하기도 한답니다. 시계가 고장 난 듯 제자리를 돌고 있어도, 속지 마십시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지 않은 날들 속에서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계신 당신께 이 평범하고 익숙한 사실을 말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