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출발선 앞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만 해보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들고. 그때 누군가는 말했다. 시작은 이미 정해져 있다고. 시간은 흘러가고, 끝은 언젠가 온다고. 마치 그게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 모든 끝이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말을.
사람들은 종종 기간으로 관계를 정의한다. 얼마나 오래, 언제까지, 몇 번의 계절을 함께할 수 있는지. 그 숫자가 다가오면, 마치 이야기도 함께 접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함께 쌓아온 선택들, 서로를 향해 내디딘 수많은 순간들은 어떤 계약서에도 적히지 않는다.
처음 우리는 제각각이었다. 속도도, 방향도, 꿈의 모양도 달랐다. 불안했고, 흔들렸고,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는 방법을, 같이 나아가는 이유를.
시간이 지나며 우리는 알게 되었다. 완성이라는 건 갑자기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계속 선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오늘도 함께하기로, 내일도 손을 놓지 않기로, 끝이라고 불리는 지점 앞에서도 계속 걸어가기로.
시작이 정해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끝마저 남이 정해줄 수는 없다. 마지막 장을 넘길지, 새로운 장을 덧붙일지는 이 이야기를 살아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결정이니까.
그래서 나는 믿는다. 우리가 처음 아무것도 아닌 상태에서 출발했을지라도, 서로를 선택하며 하나의 형태가 되었듯 이 이야기의 끝 또한 우리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을.
정해진 시간은 있을지 몰라도, 정해진 결말은 없다. 끝이라고 불리는 순간조차 우리가 원한다면 또 다른 시작이 될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