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임진왜란 제10부
사적 제272호 ‘남원 만인의총’을 찾아간다. 삼일절 10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날 12시, 우리 3형제는 남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남원은 대구에 사는 동생, 순천에 사는 동생 등과 만나기에 적당한 지점이다. 기왕에 가는 길이니 조금 일찍 가서 만인의총을 보고 싶었다. 만인의총은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군 1천 명, 남원 주민 7천 명, 명군 3천 명 등 1만 1천 명의 시신을 합장한 무덤이다. 그런데 어떤 자료에서는 1만 2천 명, 또 다른 자료에서는 1만 4천 명이라고 한다.
11시경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에 위치한 남원 만인의총에 도착했다. 특이하게도 입구 마당에 키 큰 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그 나무 사이로 표지석이 눈에 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워진 자연석의 표지석에는 ‘萬人義塚’ 이런 글자가 새겨져 있다. 萬(일만 만) 人(사람 인) 義(옳을 의) 塚(무덤 총)으로 ‘만인의총’이다. 남원성을 지키려다 순국한 영혼을 기리려는 표지석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널찍한 부지가 마음을 편하게 한다. 저 멀리 정면으로 의총이 보이고, 그곳으로 향하는 곧은길이 있다. 그 길의 중간 지점 왼쪽에 높은 탑이 보인다.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 ‘만인의사 순의탑’이다.
홍살문 앞에 섰다. 앞쪽으로 세 채의 건물이 일직선으로 서 있다. 몇 걸음 걸어가서 계단을 올랐다. 첫 번째 일주문인 ‘충의문’이다. 또 몇 걸음 걸어가서 계단을 올랐다. 두 번째 일주문인 ‘성인문’이다. 이들 일주문에는 출입문이 세 개씩 있다. 가운데는 양쪽 여닫이문으로 닫혀 있고, 좌우 양쪽의 문은 외짝 여닫이문으로 오른쪽은 들어가는 문이고, 왼쪽은 나가는 문이다.
세 번째로 보이는 건물을 향해 걸어간다. 건물 가운데 ‘충렬사’란 현판이 걸려 있다.
충렬사 문 앞에는 향로가 놓여 있고 거기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충렬사 안을 들여다보았다. 좌우로 길게 제단(祭壇)이 있고, 그 위에 위패가 놓여있다. 중앙에 조금 크고 하얀 색깔의 위패가 있고, 그 좌측에 28 우측에 28 모두 56개의 조금 작고 까만 색깔의 위패가 질서 정연하게 놓여 있다.
충렬사는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정기원, 이복남, 임현, 김경로, 신호, 이덕회, 이원춘 등 일곱 충신을 배향하고, 1836년(헌종2년)에 사헌부 지평 오흥업을 추배하여 여덟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배향(配享)은 문묘나 사원에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모시는 일이고, 추배는 나중에 신주를 추가로 모시는 일이다.
충렬사는 1612년(광해군 4년) 건립하였고, 1653(효종 4년)에는 충렬사란 이름의 편액(扁額)을 사액(賜額)하였고, 1675년(숙종 원년)에 남원역 뒤 동충동으로 이전하였고, 1871년(고종 8년)에 제단을 설치하고 춘추로 향사하여 왔었다. 그러나 일제가 제단을 파괴하고 재산을 압수하고 제사도 금지시켰다. 이게 나라를 빼앗긴 백성의 서러움이다.
임진왜란 때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에도 조선의 대신들은 반성하지 않았다. 남의 탓만 하다가 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 1945년 일본의 압박에서 벗어났고, 이후 8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반성하고 있는가? 나라의 힘을 기르자고 지혜를 모으고 있는가? 한심하고 실망스럽다.
충렬사를 오른쪽으로 감고 돌아 올라갔다. 거기에 커다란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무덤 앞에 상석이 반듯하고, 그 앞에 향단도 있다. 의총 옆에 ‘만인의총 비문’이란 제목의 비석도 있다. 그 내용은 생략한다.
만인의총은 시신이 없는 허묘이다. 시신을 수습했던 북문 근처는 일제강점기에 남원역이 세워졌고, 증기 기관차에서 나온 석탄 찌꺼기 따위를 합장한 곳에 버렸다. 이장 당시에 유골을 발굴하려고 했으나 폐탄 찌꺼기만 나왔다. 시신조차 찾지 못하게 방해했다. 주권을 빼앗긴 민족은 이렇게 서럽다.
1963년, 만인의총을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구 남원역의 허술한 묘역을 보고 ‘이장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1964년에 현 위치로 이전했다. 1981년에는 사적으로 재지정되고, 2016년 5월 10일에는 관리 주체가 전라북도에서 문화재청으로 이관되었다.
만인의총에 묻힌 영혼은 1만 명이다. 저들은 원자폭탄과 같은 다량 살상 무기에 의하여 희생된 것이 아니다. 칼이나 창, 조총과 같은 재래식 무기에 의하여 희생되었다. 그런데 그 희생자가 무려 1만 명이다.
당시의 참상을 일본 승려 쿄넨의 ‘조선 일기’ 8월 16일자 에 이렇게 표현했다.
“성안 사람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죽여서 생포한 자는 없었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이다. 알 수 없는 이 세상살이, 모두 죽어서 사라지는구나.”
당시 일본군은 만복사의 사천왕상을 가져와 남원성 주변을 돌며 무력시위를 했다. 그 만복사는 일본군의 방화로 소실된 채 현재의 신정동 남원역 남동쪽에 터만 남아 있다.
그날 일본이 우리에게 남긴 상처는 4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전혀 아물지 않은 채 남아있다. 어떻게 하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만인의총의 원혼을 달랠 수 있을까? 전쟁을 일으켜서라도 혼내주고 싶다. 그럴 수도 없다. 이를 갈며 저주를 퍼부어도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뜻밖에 놀라운 소식이 들린다. 오늘의 일본을 한글이 점령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1446년 세종대왕께서 반포한 훈민정음이, 저들이 말살하려 했던 한글이, 오늘의 일본을 점령하고 있다. 만세다! 한글 만세! 세종대왕 만만세!